혹성 탈출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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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서운 책을 읽었다. 맞다, 저 유명한 영화 혹성 탈출의 원작 소설이다. 두 편의 영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로서는 원작이니깐 한번 읽어보지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소설속 세계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겨우 온전히 숨을 쉴 수 있었으나 영화보다 강렬한 결말은 뇌리에 뚜렷이 각인되고 말았다. 원작은 영화와 달리 배경이 미국이 아닌 프랑스라는 점을 제외하면 대체로 비슷하다. 다만 혹성 탈출 사연이 기록된 유리병을 발견한 두 인물은 작중 내용에 당황한 독자에게 쐐기를 박는 작가의 고약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당혹감은 유인원이 지극히 인간다운 반면 인간은 동물과 전적으로 흡사하다는데 있다. 이것이 소로르 행성에서는 명백한 법칙이다. 인간과 유인원의 현재 지위를 바꿔놓으면 모든 게 자연스럽다. 유인원은 언어를 사용하는데 인간은 말을 하지 못한다. 고릴라들의 인간 사냥은 인간들의 동물 사냥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인류의 이익을 위한 동물 실험이 유감스럽지만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유인원의 인간 실험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과거 법정의 변호사와 검사에게서 유인원을 연상하고, 소로르 증권거래소의 유인원에게서 인간을 떠올리는 것은 양자가 본질에서 동일함을 가리킨다. 윌리스는 자신의 벌거숭이 차림에 당황스럽지만 다른 인간도, 유인원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인간이 나체 상태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개나 고양이가 자연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윌리스가 유인원 과학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라에게 구애 행위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동물적인 동시에 인간스럽다.

 

그렇다.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나는 노바의 주위를 둥글게 돌기 시작했다. 수백만 년에 걸쳐 가장 우월한 존재로 진화한 나는......탐욕스럽게 나를 관찰하는 이 모든 유인원들 앞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바 주위를 동물처럼 맴돌며 구애하기 시작했다. (P.103)

 

인간 윌리스는 유인원 사회에 간신히 용납된다.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언어와 지성을 갖춘 존재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지성적 인간 개체는 불편하고 낯설지만 어쨌든 무해하며 인간 연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가 점점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들은 유인원 사회에 잠재적 위협 세력이다. 역지사지하면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돌연변이 종을 박멸하는 것. 윌리스와 임신한 노라가 소로르를 탈출해야 하는 절박한 사연이다.

 

소로르 행성에서 인간과 유인원의 지위 역전 현상은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안락과 게으름, 무기력에 허우적대며 두뇌를 쓰지 않는 인류의 미래. 의연하고 굳세게 진화를 거듭하는 유인원과 종의 진화를 거꾸로 한 것처럼 퇴행하는 인류의 대비.

 

이렇게 쉽게 체념하는 무기력한 인류가 이제 주인으로서의 임기를 끝내고 더 뛰어난 다른 종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P.220)

 

인간과 유인원을 현시점에 맞게 인간과 로봇으로 대체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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