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 노동과 미학 시민 교양 신서 6
윌리엄 모리스 지음, 서의윤 옮김 / 좁쌀한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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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1. 예술과 노동

2. 사회주의의 이상: 예술

3. 이 세상의 예술과 아름다움

4. 윌리엄 모리스의 디자인

 

전자 세 편은 모리스가 예술과 노동 내지 사회주의를 주제로 한 강연록에 해당한다. 마지막 부분은 디자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모리스의 다양한 디자인의 실례를 소개하고 있다. 앞서 <에코토피아 뉴스>로 윌리엄 모리스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풍부한 작품해설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모리스와 사회사상가로서 모리스라는 양면성에 큰 호기심을 품었다. 이는 마치 존 러스킨과 흡사한 양상인데, 모리스가 러스킨에게서 감화를 받았다고 하니 새삼 우연은 아니다.

 

모리스는 러스킨보다 한층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다. 러스킨이 이론가에 가깝다면 모리스는 이론가인 동시에 행동가적 면모가 강하다. 그는 특히 노동자 대중을 상대로 사회주의를 설파하는 강연을 많이 행하였으며, 사회주의 시각에서 예술의 역사와 의미를 설파한다.

 

모리스에게 있어 예술은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의 예술관은 퍽이나 독자적인데, 인간의 노동을 기반으로 하여 삶의 기쁨을 창출하는 것을 예술로 간주한다. 전문 인력에 의한 극도로 세밀하게 다듬고 가공한 것도 예술이지만, 상업적 관심 없이 실제 사용을 위해 건전한 정신과 노동을 통해 만든 수공예를 더욱 예술의 본질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

 

예술이란 훨씬 더 큰 범위로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의 노동에서 나온 아름다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주변 환경을 포함한 인간의 삶 속에서 그 사람이 취하는 관심의 표현, 즉 삶의 기쁨이 내가 말하는 예술인 것입니다. (<예술과 노동>, P.9)

 

모리스는 예술 행위에 있어 주체성을 중시한다. 자의에 의하지 않은 노동, 상업적 관심에 치중한 용도, 기계에 의한 생산의 대량성. 이 모든 것들은 삶의 아름다움을 빼앗는 요소로서 참다운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다.

 

모리스의 관점에서 당대의 노동과 예술은 모두 왜곡되어 있다. 한마디로 병들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 생계를 꾸리기 위해 삶의 의지를 저당 잡힌 개인이 넘쳐나는 곳이 당대의 영국, 그리고 런던이다. 사유재산과 상업적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심하게 창궐하던 현실을 목도한 모리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사유의 귀결이라고 하겠다. 그의 글에서 현저하게 드러나는 당대에 대한 날선 표현은 위기감과 답답함의 발로이리라.

 

노동자는 자신의 일에서 기쁨을 가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유-노동자가 되었고, 그래서 그에게서 이윤을 뽑아 내는 주인의 고갯짓과 부름에 따르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예술과 노동>, P.37)

 

최소한 아름다움과 고상한 삶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사유 재산은 공공의 강탈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상>, P.59)

 

병든 예술을 고치는 길은 왜곡된 노동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있다. 무위도식하면서 부를 독점하는 불평등 체제를 깨뜨리고 모두가 평등한 노동을 통해 분배의 공정을 보장받는 사회. 빈부격차가 사라지는 이상사회 속에서 진정한 예술이 재탄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날의 노동에서 삶의 온전한 기쁨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이상향의 가시적 모습을 모리스는 <에코토피아 뉴스>에 재현해 놓고 있다. 작품을 읽었을 때의 어정쩡한 당혹감의 실체는 바로 적나라한 사상성에 있었던 것이다.

 

모리스가 지향한 삶의 모습은 중세 유럽을 닮아 있다. <예술과 노동>에서 그는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리스 로마 시대에 비하면 암흑기로 인식되는 중세가 부의 분배와 삶의 기쁨의 분배에서 보다 공평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혹자는 모리스의 사상을 과거회귀로 오독하는데, 모리스 자신은 중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한 것은 중세의 상대적인 자유로움과 평등성이다. 그 속에서 수공예 정신이 싹텄다고 본다.

 

물건을 만드는 데는 그 물품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든, 수작업을 돕는 기계로 만들어졌든, 완전히 기계가 대체해 만들어졌든 수공업자의 정신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수공업자의 정신에서 본질적인 부분은 바로 물건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그 물건의 본질적인 쓰임을 자신이 하는 일의 목표로 삼는 본능이다. (<사회주의의 이상>, P.66)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정신을 되새겨볼 때 모리스가 지향한 예술은 부유한 소수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 즉 민중 예술임은 자명하다. 그가 다양한 디자인에 관심을 쏟은 연유가 여기서 나타난다. 예술은 생활 속에서 민중과 함께 살아 숨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지 않는다면 예술은 자라나고 번영하고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로써는 그래야 한다고 바라지 않습니다......예술을 받아들인다면 예술은 일상의 일부가, 그 일상은 모두의 일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예술은 우리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을 것이고 예술이 없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예술과 아름다움>, P.97)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위 장식 미술이라고 불리는 저 소예술을 대예술에서 분리해 낼 수 없었다. (<해제>, P.211)

 

이 책은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 및 사회사상을 소개함과 동시에 디자이너로서의 모리스를 알 수 있게끔 진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즉 책 후반부의 1/3 가량에 걸쳐 그의 디자인-타이포그래피, , 일러스트레이션 및 패턴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데 무척 이채로운 동시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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