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헤르만 헤세 컬렉션 (열림원)
헤르만 헤세 지음, 정성원 옮김 / 열림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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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성 프란치스코[프란체스코]를 궁금해 왔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고 무슨 활동을 하였는가. 분명히 기독교의 성인 중 한 명임은 틀림없을 텐데 별도의 관련 책도 있고, 리스트나 오네게르 같은 음악가 들이 그를 다루는 작품을 썼는지. 마침 도서관 서가를 지나치다 친숙한 헤르만 헤세가 그에 관한 글을 남긴 사실을 알게 되어 입문서 삼아 읽는다.

 

이 책은 작가의 머리말과 간략한 전기, 그리고 작가가 선별한 다섯 편의 성인담과 마지막으로 맺음말로 구성된 얄팍한 글이다. 부록으로 그림과 서평, 단편을 추가로 곁들였다. 이 글의 본문은 1904년에 발표되었다. 이때는 헤세가 그의 저명한 작품들을 발표하여 이름을 처음으로 알리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십대와 이십대 초의 열정의 시기에 무려 10여 년이라는 시간을 헤세는 프란치스코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하는데 무슨 연유였는지 머리말을 통해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의 주인인 로마 교회는 인류의 평화에 매진하기보다는 군비 확충, 동맹과 외교, 금지와 처벌에 더 기를 썼다. 두려움에 휩싸인 민중에게는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 (P.10)

 

세계가 자신의 욕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가녀린 평화를 사정없이 깨뜨릴 때 고초를 겪는 것은 무수한 힘없는 평민들이다. 헤세는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절 임박한 어둠과 고난의 시절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평화를 지향하고 애호하던 한 인물에 주목했는지도.

 

순수하고 고귀한 사람의 삶은 늘 거룩하고 신비롭다. 그 삶은 엄청난 힘을 발산하고 저 먼 곳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 점은 그 옛날의 다른 영웅과 위대한 인물 들 대부분보다 아시시의 가난한 사람의 삶에서 훨씬 더 또렷이 드러난다. (P.65)

 

프란치스코는 극적인 삶의 방식을 살아간 사람이다. 한없는 방탕함에서 세상 누구보다 낮고 가난함으로. 세속의 명예를 추구하기 위한 출전에서 문득 계시를 받고 이후로는 세속의 영광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심지어는 혈연관계마저도. 그의 온 몸과 마음은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는데 헌신한다.

 

프란치스코를 예수 바로 아래 위치시킨 오상(五傷)에 대해 헤세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 성자 프란치스코를 찬미할 뿐, 이성의 관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의 힘에 기대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 성인으로서의 프란치스코를 알고자 한다면 헤세의 글쓰기에 다소 불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다.

 

헤세가 바라본 프란치스코의 진면모는 그가 우월한 지위에서 민중을 경시하거나 훈도하지 않고 항상 낮은 곳을 지향하며, 동굴에 틀어박혀 세속과 단절되어 깨달음과 구원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는 수행과 순례를 등가로 보았다.

 

프란치스코는 결코 우울한 빛을 띠며 참회하거나 세상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웃음 가득한 말과 기분을 북돋우는 유쾌한 말을 즐겼고, 아무리 고단하고 힘겨운 날이 닥쳐도 그 누구에게도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P.45)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 똑같이 순수하고 고귀했던 다른 성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기억될 뿐이다. 프란치스코는 천진난만한 시인, 사랑의 위대한 스승, 모든 피조물의 겸손한 친구이자 형제였다. 사람들이 그를 잊는다면 돌과 샘, 꽃과 새 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다. (P.33)

 

프란치스코가 마세오 형제의 질문에 답하는 성인담에서 그의 한없는 겸허함을 알 수 있으며, 새들에게 설교하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장면이다. 헤세는 프란치스코를 훗날 르네상스를 이끌어낸 선구자로 찬양한다. 그의 소박한 인간미와 온화한 품성을 예술로 재현하려는 정신이 교회의 경직된 틀을 탈피할 수 있는 영감과 활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매우 참신한 논거라고 하겠다.

 

프란치스코의 성인담은 풍부하게 남아있는데 비해 헤세는 <태양의 노래>를 포함한 여섯 편만을 선별하여 싣고 있다. 그의 창작의도가 프란치스코의 이적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서평은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꽃다발> 독일어판에 대한 것이며, 단편은 프란치스코의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를 상상하여 그려낸 것이다. 한편 중간에 포함된 조토의 프란치스코 연작화는 프란치스코의 일생의 주요 대목을 프레스코화로 재현해 낸 것으로 13세기 당대에 성인 프란치스코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에 대한 헤세의 종합적 평가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하늘의 천사가 씨앗을 뿌리듯 민중에게 근원적인 힘과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말과 영원에 대한 생각과 태곳적 인류의 그리움을 뿌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아름답게 꾸민 글과 예술이 아니라 오로지 순수하고 고귀한 존재로 수 세기에 걸쳐 사랑과 찬미를 받고, 지고지순한 곳에서 우리를 비추는 복된 별로 서 있으며,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인류를 위해 미소 짓는 찬란하고 온유한 길잡이와 통솔자인 사람 또한 드물다.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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