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티에 환상 단편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테오필 고티에 지음, 노영란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상은 자유롭다. 환상, 공상, 몽상, 망상 혹은 백일몽과 같이 각기 다른 이름을 지니지만 자유로움의 본질은 동일하다. 상상은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상념의 무한한 추구가 가능하다. 그러하기에 개인의 은밀한 욕망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고티에의 환상 단편들처럼.

 

학창 시절, 소위 책받침 미인들의 추억을 다분히들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현실에 되살아나서 자신의 연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소망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역사 속의 인물, 명화 속의 여인, 사진 속의 모델 등에 대한 찰나의 욕망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진 죽은 여인은 이전에 <세계의 환상 소설><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프랑스>에서 이미 읽은 기억이 있다.

 

1. 커피포트 아가씨

2. 옹팔

3. 사랑에 빠진 죽은 여인

4. 아리아 마르첼라

 

아무래도 씌어진 시기상 뒤로 갈수록 보다 세련미와 원숙미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는데, 새삼 사랑에 빠진 죽은 여인이 뛰어난 작품임을 비교해보니 알 수 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우선 남성 주인공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여성을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가 남성이기에 이러한 설정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고 이성의 유혹에 약한 것은 상대적으로 남성에 더 많다.

 

환상 속의 여성을 이끌어내는 소재는 다양하다. 커피포트, 태피스트리, 죽은 여인, 폼페이의 유물 등. 터무니없지만 전혀 황당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매우 사실적인 까닭이다. 우리는 사실과 환상을 명확히 구별한다. 정통 소설 자체도 그럴듯한 허구를 그리는 것이지 누구나 알아차릴만한 비현실은 완전히 다른 장르다.

 

고티에는 현실과 상상을 한데 뒤섞어 놓는다. 작중 인물은 환상을 일상처럼 당연시 받아들인다. 그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대화도 주고받는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깨닫는 순간 두 세계 사이에 넘나들 수 없는 벽이 생긴다. ‘옹팔에서 주인공의 삼촌은 태피스트리 속의 여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그는 후작부인이 얌전히 있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조카를 유혹한 것에 분개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아스라한 가운데 현실이 환상과 교차된다. ‘커피포트 아가씨에서 화자는 심야에 침실이 되살아나는 광경을 목도한다. ‘옹팔에서 태피스트리 속의 후작부인은 방안으로 훌쩍 뛰어내린다. 현실과 환상이 서서히 맞물리는 장면을 더없이 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아마도 아리아 마르첼라일 것이다.

 

오랜 환상을 품을 수 있는 때는 대개 밤 시간이나 꿈속에서다. 밤은 은밀하다. 햇빛은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달빛과 별빛은 깊은 음영을 강조할 뿐 실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황홀한 순간을 보내지만 시간의 흐름과 신체의 주기는 속절없다. 현실과 환상은 낮과 밤의 관념마저 뒤흔든다. 호접몽은 장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 안에 두 명의 인간이 살고 있었는데, 서로 상대방을 알지 못했네. 때로는 밤마다 자신이 멋진 귀족이 되는 꿈을 꾸는 사제였고, 때로는 자신이 사제인 꿈을 꾸는 귀족이 되었네. 나는 더 이상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네.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지 못했다네. (‘사랑에 빠진 죽은 여인’, P.85)

 

환상은 찰나에 불과하며, 우리는 현실을 벗어나 살 수 없다. 단편들의 결말이 항상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순간의 일탈과 상상 속 욕망충족은 결코 현실화될 수 없으므로 탐닉은 오히려 심신에 피폐케 할 뿐이므로.

 

내 안에 있는 두 명의 존재 중에서 나머지 하나를 위해 또 다른 하나를 죽여 버리거나, 아니면 둘 다 죽여 버릴 결심을 했네. 왜냐하면 그런 삶을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으니까. (‘사랑에 빠진 죽은 여인’, P.94)

 

커피포트는 깨지고, 태피스트리는 떼어져 다락방으로 치워진다. 클라리몽드는 사제의 성수로 무덤 속에서 한줌 잿더미로 사라진다. 아리아는 어차피 잿더미 속의 유골이었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행복하지 않았나요? 내 무덤을 파헤치고 나의 주검을 발가벗길 만큼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잘못했나요? 이제 우리의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교감은 모두 끝났어요. (‘사랑에 빠진 죽은 여인’, P.97)

 

그럼에도 한가닥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특히 클라리몽드와 아리아의 경우가 그러하다. 로뮈알드는 클라리몽드와 있던 시절이 분명 더 행복하였다. 그의 괴로움은 신분이 사제였기에 그러할 뿐 범상한 청년이었다면 그리고 뱀파이어임에도 그의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클라리몽드의 마음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녀와의 삶에서 사랑의 행복을 찾았을 것이다. 아리아는 추악하고 방탕한 여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반박처럼 판단 기준을 기독교적 엄격주의가 아닌 폼페이 당대의 개방적 현세적 사고관에 둔다면 자유로운 행복을 추구하는 그녀를 비난하기 어렵다.

 

제가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는 그 우중충한 종교를 들먹이면서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저는 인생과 젊음, 아름다움, 쾌락을 사랑했던 우리의 신들을 믿어요. 차가운 죽음 속으로 나를 다시 밀어 넣지 마세요. 사랑이 나에게 돌려준 이 삶을 즐길 수 있게 내버려 두세요. (‘아리아 마르첼라’, P.151~152)

 

비현실적이라 치부하면서도 상상과 환상에 열광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비이성적 속성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자가 아니기에 한계상황에 이르면 이성은 지배력을 상실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도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속속들이 파헤치지 못하고 있다는 현상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감성의 존재이므로 사물과 영혼, 영혼과 영혼은 시공을 초월하여 상호 연계되어 있다고 믿는다. 수많은 사찰과 교회에서 사람들이 간구하는 것이 욕망을 떠나 오로지 영혼의 구원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은연 중 우리는 비과학적, 비이성적 측면을 인정한다.

 

당신의 마음이 강렬한 힘을 가지고 나를 향했을 때, 무지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떠돌고 있던 나의 영혼이 그것을 느꼈어요. 믿음이 신을 만들고, 사랑이 여자를 만든답니다.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때, 진짜로 죽은 것이지요. 당신의 사랑이 나에게 생명을 돌려주었어요. 당신의 강한 염원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없애 버렸어요. (‘아리아 마르첼라’, P.148)

 

작품해설은 고티에의 글쓰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티에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사실적인 느낌을 주는 묘사들은 실제로는 독자들이 환상의 세계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P.170)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을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고, 이국적인 것, 역사 속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를 동경하는 것은 낭만주의 환상 문학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