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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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과 모비 딕의 모티프가 그의 오랜 화두(원죄,구원 등)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안전장치를 확보한 일기/기도로서의 자기고백적 글쓰기의 (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고뇌로, 다시 말해 메타소설적 요소로 읽힌다. 웅숭깊은 사유가 꾹꾹 담긴 문장들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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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想 넷. (2022년 2월 17일)



  화요일에 교보문고에서 주관한 황정은 작가의 랜선 팬사인회가 있었다. 《백의 그림자》가 복간되어 나왔을 때(4년 동안 절판된 상태였다는 것도 몰랐었다) 이미 알라딘으로 주문하고 굿즈로 머그컵까지 받았으나, 사인본에 눈이 먼 나는 사인회를 보면서 수강신청을 하듯 도전하여 또 구입을 하고 말았으니… 그리고 오늘 책이 도착했고, 교보문고의 책 포장 상태에 나는 잠시 놀랐다.


(포장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상자에 달라붙어 있음)


  거의 대부분의 책을 알라딘에서 구입하는 사람으로서 열에 한 번은 책이 약간의 손상을 입는 것을 보았기에 이와 같은 포장은 충격이었다. 어떤 상황이어도 파손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고 할까. 그만큼 포장재가 많이 쓰이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이 책을 오랫동안 주문해 온 사람에게는 배려처럼 보인다(일해라 알라딘!). 그나저나 이미 구입한 한 권은 어찌해야 하나...






  이로서 내가 가진 《백의 그림자》는 총 세 권이 되었다. 민음사에서 최초로 나온 판본, 교보문고에서 한때 리커버로 내놓았던 판본(링크), 그리고 창비의 복간본.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고 이는 나 자신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생각해보면 읽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백의 그림자》를 읽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변화를 겪었다. 치기 어린 10대와 20대 초반을 지나고 읽은 탓도 있겠으나(그래봤자 스물네다섯이다), 마음을 어떻게든 건드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항상 신간을 기다리고 꾸준히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쓰는 후기'에서 이야기하듯 "세상의 폭력은 더 노골적인 쪽으로 / 그걸 감추는 힘은 더 교묘하게 감추는 쪽으로" 움직여왔지만,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은 필체처럼 한결같은 소설들이 있었기에 과거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한다. "전야前夜"를 생각하는 것이 단념되는 일이 없기를 희구하며, 언제나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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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7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 정도예요? 저 백의 그림자 안읽었는 데.... 아무님이 이렇게까지 사랑하신다면 봐야겠어요. 역시 황정은 관련 페이퍼가 예사롭지 않았는 데, 이웃님... 황정은에 진심이셨구나.

아무 2022-02-17 22:04   좋아요 1 | URL
어쩌다 보니 백의 그림자가 유독 리커버가 자주 나와서 저렇게 되었네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황정은의 최고작이 백의 그림자가 아닌 게 함정.. ㅋㅋ 당시에는 바뀌었다는 걸 자각하진 못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때를 기점으로 알라딘서재에도 자주 들락거리게 되고 활동도 차츰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참고로 제가 처음으로 읽은 황정은의 소설은 백의 그림자가 아니고 계속해보겠습니다입니다..😅

- 2022-02-17 22:58   좋아요 1 | URL
황정은 리뷰 맛집 아무님이 생각하는 황정은 최고작이 궁금합니다! 저는 참고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쭈욱 <계속해보겠습니다> 입니다. ㅎㅎㅎ

아무 2022-02-18 09:06   좋아요 1 | URL
저는 <야만적인 앨리스씨>였는데, 요즘엔 <아무도 아닌>과 고민하고 있어요 ㅎㅎ 그래도 아직까진 앨리스씨인 걸로..😊
 

13.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주장하는 것은, 인류가 다른 영장류들과 달리 문명을 건설하고 지구 위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가 '협력''친화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자연선택은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122)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의 요지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인류의 추악한 면, 혐오에서 제노사이드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의 난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자기가축화를 통해 친화력이 강화되면서, 우리 집단 구성원을 위협하는 외부자에 대한 공격성도 강화시켰다고. 그리고 진화과정에서 외부자들에 한정하여 마음이론(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신경망을 둔화시키는 능력, 즉 비인간화하는 능력을 뇌가 획득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학자들의 한 윤리적 딜레마 실험은 외부자에 대한 우리의 행동에 옥시토신이 어떤 극적인 효과를 일으키는지 잘 보여준다. 실험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먼저 피험자들에게 6인조 바닷가 동굴 탐험대의 구성원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대원 1명이 동굴 입구의 작은 구멍에 빠진 상황을 제시한다. 그 대원을 빼내지 않으면 밀물 때 동굴이 물에 잠겨 모두가 익사할 것이며, 구멍에 빠져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대원만 살아남을 것이다. 동굴 안에 고립된 대원 중 한 사람에게는 다이너마이트가 있다.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입구를 넓힌다면 구멍에 빠진 대원은 죽겠지만 나머지 그룹은 살릴 수 있다. 이때 피험자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 시나리오에서는 구멍에 빠진 남자에게 헬무트 같은 네덜란드인 이름을 붙였고,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그 남자에게 아메드 같은 아랍인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네덜란드 남자들에게 옥시토신을 비강으로 흡입하게 하고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아랍 이름일 때보다 네덜란드 이름일 때 구멍에 빠진 사람을 희생시키겠다는 답변이 25퍼센트 적게 나왔다. (185)


  책에는 우리가 타인을 인간화/비인간화할 때 마음이론 신경망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선택적으로 활성화/비활성화된다는 실험들이 다수 제시된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을 변형한 밴듀라의 실험에서는 권위에 대한 복종보다 타인의 비인간화가 더욱 잔인한 행동을 하도록 추동한다는 결과를 만날 수 있다. "학생들에 대해 인간적인 평가를 들은 감독관들은 가장 약한 강도의 충격을 주었고, 비인간적인 평가를 들은 감독관들이 가한 충격의 강도는 2배에서 심지어 3배까지 높았다. () 밴듀라가 감독관들에게 그 징벌이 정당한지 묻자 80퍼센트가 비인간화된 학생들의 징벌에 동의한 반면 인간화된 학생들의 징벌에는 20퍼센트만이 동의했다."(216~217) 다양한 실험 결과를 제시하고 난 뒤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226) 현대 사회는 우리를 더욱 극단의 상황으로, 다시 말해 타인을 쉽게 비인간화할 수 있는 심리적 조건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계급과 주거의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는 김혜진의 장편들에는 충분히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세계의 무자비한 질서에 휩쓸려 서로를 외면하거나 적대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불과 나의 자서전에서 ''는 주해와 서로의 시간과 감정을 함께 나누며 연대의 싹을 틔웠지만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계급적 분할 아래 주해가 처한 상황을 외면한다. 중앙역에서 노숙인으로 살아가는 ''는 사랑에 빠진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는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일을 구하게 되는데, 그 일은 철거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철거민들을 폭력도 불사하며 거리로 내모는 일이다. 9번의 일에서 '9'으로 지칭되는 주인공은 몸바쳐 일해온 통신회사에서 점차 밀려나는 처지로, 온갖 압박에도 평생을 의지한 회사라는 끈을 붙잡기 위해 분투한다. 점차 밀려나 결국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 회사에 의해 죽음에 이른 동료를 보면서도 그는 자신이 믿어왔던 회사라는 실체에 매달린다. 하청업체까지 밀려나 다시 회사로 돌아갈 기회를 잡기 위해 그가 해야 하는 일은 거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물리치고 통신탑을 세우는 일이다. 거주민들의 항의와 폭언, 시위를 진압하면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자 더 이상 중요한 것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200)

  봐요. 일이라는 건 이런 겁니다. 얘 다리가 왜 이렇게 된 줄 알아요? 그까짓 옳고 그른 것 구분을 못 해서 다리 병신이 된 줄 압니까? 일이라는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 나쁜 거.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206)

  뉴스 속에는 힘없고 선량한 주민들과 끈질기게 설득 작업을 펼치는 회사가 있었다. 더 나쁜 쪽으로 그를 몰아붙이는 회사도, 사택을 빼곡하게 둘러싸고 그와 동료들을 가둬두다시피 하는 주민도 없었다. 대치와 주재, 진심과 설득 따위의 실체 없는 말들로 묘사되는 이곳의 상황은 아주 먼 곳의 일처럼 여겨졌고 그로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209)













  주거라는 조건, 빈곤이라는 조건이 그들을 세계 바깥으로 몰아내고 역외 계급underclass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시켰지만, 그들이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짓밟거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일이다. 조금이나마 나은 처지에 있더라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은, 다시 말해 자신들을 몰아넣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저항과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나도 언제든지 그들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는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를 부추기고, '9'처럼 우리는 그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9'의 말과 생각을 읽으면서 문득, 용산 참사에 대한 재판정 참관기를 떠올린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망루에 누가 있다고 들었습니까.

전철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까.

전철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9109일 법정, 특공대원과 변호인의 질의응답에서

(황정은, 입을 먹는 입, 문학동네2009년 겨울호)















  앞서 등장한 사람들의 모습은 아이히만에게서 아렌트가 발견했던 '무사유'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음. 타인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음. '사유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의 조건서문에서도 등장하며,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듯 보인다. "사유하지 않음, 즉 무분별하며 혼란에 빠져 하찮고 공허한 '진리들'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뚜렷한 특징이라 생각된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욱 빠르게 퍼지고,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배척의 감정을 부추기고, 그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러한 무사유가 우리의 뇌에선 비인간화로 귀결된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 구조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사그러들고,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들은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사회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심어놓은 감각(common sense)이 아닐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념의 대립보다 혐오를 자양분 삼아 몸집을 키워가는 부족주의적 사고가 전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족주의적 사고의 기반에 외부인에 대한 비인간화가 깔려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비인간화를 막고 집단 내 구성원의 개념을 확장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접촉'을 이야기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고 있으면 공고히 다져진 사회 시스템이 주는 압박과 무게에 암담해지고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는 분명 이전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스스로 세워낸 체제에 잠식당하며 더욱 은밀해지는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 부족주의를 읽었다면 조금 더 논의를 풀어갈 수도 있었겠으나 아직 펼쳐보지 못했으므로 이쯤에서 매듭을 지어야겠다. 다만 읽기를 마칠 때마다 실감하는 것은 사유와 공감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항상 의문을 품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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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당선 축하드려요 *^^*

아무 2022-03-09 01: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3-08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아무 2022-03-09 01:06   좋아요 1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앙역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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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희망을 모두 빨아들이는 광장이라는 이름의 블랙홀 속에서 서로를 갉아먹으며 달려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사랑. 노숙인들의 군상이 주는 실감에서 발로 뛴 흔적이 보이고, 연대와 계급의 아이러니를 다루는 솜씨는 여기부터 발아했구나 싶다. 이 모티프가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아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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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22-02-07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거칠게 정리하면, 광장을 벗어나야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비-존재‘가 광장 밖의 세계로 편입되기 위해 다른 존재들을 ‘비-존재‘로 삭제해버리는 세계의 폭력에 동참하는 아이러니.
 
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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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기댈 곳 없던 두 인물이 켜켜이 쌓은 우정도 동이라는 이름으로 갈라버리는 세계의 서늘함. 따뜻한 것을 동원해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만 어느새 동화되어 버리는 과정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미묘한 관계를 다루는 솜씨가 놀랍지만 말미에 이르면 신경향파가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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