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주장하는 것은, 인류가 다른 영장류들과 달리 문명을 건설하고 지구 위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가 '협력''친화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자연선택은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122)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의 요지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인류의 추악한 면, 혐오에서 제노사이드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의 난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자기가축화를 통해 친화력이 강화되면서, 우리 집단 구성원을 위협하는 외부자에 대한 공격성도 강화시켰다고. 그리고 진화과정에서 외부자들에 한정하여 마음이론(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신경망을 둔화시키는 능력, 즉 비인간화하는 능력을 뇌가 획득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학자들의 한 윤리적 딜레마 실험은 외부자에 대한 우리의 행동에 옥시토신이 어떤 극적인 효과를 일으키는지 잘 보여준다. 실험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먼저 피험자들에게 6인조 바닷가 동굴 탐험대의 구성원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대원 1명이 동굴 입구의 작은 구멍에 빠진 상황을 제시한다. 그 대원을 빼내지 않으면 밀물 때 동굴이 물에 잠겨 모두가 익사할 것이며, 구멍에 빠져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대원만 살아남을 것이다. 동굴 안에 고립된 대원 중 한 사람에게는 다이너마이트가 있다.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입구를 넓힌다면 구멍에 빠진 대원은 죽겠지만 나머지 그룹은 살릴 수 있다. 이때 피험자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 시나리오에서는 구멍에 빠진 남자에게 헬무트 같은 네덜란드인 이름을 붙였고,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그 남자에게 아메드 같은 아랍인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네덜란드 남자들에게 옥시토신을 비강으로 흡입하게 하고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아랍 이름일 때보다 네덜란드 이름일 때 구멍에 빠진 사람을 희생시키겠다는 답변이 25퍼센트 적게 나왔다. (185)


  책에는 우리가 타인을 인간화/비인간화할 때 마음이론 신경망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선택적으로 활성화/비활성화된다는 실험들이 다수 제시된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을 변형한 밴듀라의 실험에서는 권위에 대한 복종보다 타인의 비인간화가 더욱 잔인한 행동을 하도록 추동한다는 결과를 만날 수 있다. "학생들에 대해 인간적인 평가를 들은 감독관들은 가장 약한 강도의 충격을 주었고, 비인간적인 평가를 들은 감독관들이 가한 충격의 강도는 2배에서 심지어 3배까지 높았다. () 밴듀라가 감독관들에게 그 징벌이 정당한지 묻자 80퍼센트가 비인간화된 학생들의 징벌에 동의한 반면 인간화된 학생들의 징벌에는 20퍼센트만이 동의했다."(216~217) 다양한 실험 결과를 제시하고 난 뒤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 ()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226) 현대 사회는 우리를 더욱 극단의 상황으로, 다시 말해 타인을 쉽게 비인간화할 수 있는 심리적 조건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계급과 주거의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는 김혜진의 장편들에는 충분히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세계의 무자비한 질서에 휩쓸려 서로를 외면하거나 적대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불과 나의 자서전에서 ''는 주해와 서로의 시간과 감정을 함께 나누며 연대의 싹을 틔웠지만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계급적 분할 아래 주해가 처한 상황을 외면한다. 중앙역에서 노숙인으로 살아가는 ''는 사랑에 빠진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는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일을 구하게 되는데, 그 일은 철거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철거민들을 폭력도 불사하며 거리로 내모는 일이다. 9번의 일에서 '9'으로 지칭되는 주인공은 몸바쳐 일해온 통신회사에서 점차 밀려나는 처지로, 온갖 압박에도 평생을 의지한 회사라는 끈을 붙잡기 위해 분투한다. 점차 밀려나 결국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 회사에 의해 죽음에 이른 동료를 보면서도 그는 자신이 믿어왔던 회사라는 실체에 매달린다. 하청업체까지 밀려나 다시 회사로 돌아갈 기회를 잡기 위해 그가 해야 하는 일은 거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물리치고 통신탑을 세우는 일이다. 거주민들의 항의와 폭언, 시위를 진압하면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자 더 이상 중요한 것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200)

  봐요. 일이라는 건 이런 겁니다. 얘 다리가 왜 이렇게 된 줄 알아요? 그까짓 옳고 그른 것 구분을 못 해서 다리 병신이 된 줄 압니까? 일이라는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 나쁜 거.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206)

  뉴스 속에는 힘없고 선량한 주민들과 끈질기게 설득 작업을 펼치는 회사가 있었다. 더 나쁜 쪽으로 그를 몰아붙이는 회사도, 사택을 빼곡하게 둘러싸고 그와 동료들을 가둬두다시피 하는 주민도 없었다. 대치와 주재, 진심과 설득 따위의 실체 없는 말들로 묘사되는 이곳의 상황은 아주 먼 곳의 일처럼 여겨졌고 그로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209)













  주거라는 조건, 빈곤이라는 조건이 그들을 세계 바깥으로 몰아내고 역외 계급underclass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시켰지만, 그들이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짓밟거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일이다. 조금이나마 나은 처지에 있더라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은, 다시 말해 자신들을 몰아넣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저항과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나도 언제든지 그들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는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를 부추기고, '9'처럼 우리는 그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9'의 말과 생각을 읽으면서 문득, 용산 참사에 대한 재판정 참관기를 떠올린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망루에 누가 있다고 들었습니까.

전철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까.

전철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9109일 법정, 특공대원과 변호인의 질의응답에서

(황정은, 입을 먹는 입, 문학동네2009년 겨울호)















  앞서 등장한 사람들의 모습은 아이히만에게서 아렌트가 발견했던 '무사유'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음. 타인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음. '사유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의 조건서문에서도 등장하며,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듯 보인다. "사유하지 않음, 즉 무분별하며 혼란에 빠져 하찮고 공허한 '진리들'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뚜렷한 특징이라 생각된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욱 빠르게 퍼지고,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배척의 감정을 부추기고, 그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러한 무사유가 우리의 뇌에선 비인간화로 귀결된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 구조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사그러들고,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들은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사회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심어놓은 감각(common sense)이 아닐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념의 대립보다 혐오를 자양분 삼아 몸집을 키워가는 부족주의적 사고가 전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족주의적 사고의 기반에 외부인에 대한 비인간화가 깔려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비인간화를 막고 집단 내 구성원의 개념을 확장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접촉'을 이야기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고 있으면 공고히 다져진 사회 시스템이 주는 압박과 무게에 암담해지고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는 분명 이전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스스로 세워낸 체제에 잠식당하며 더욱 은밀해지는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 부족주의를 읽었다면 조금 더 논의를 풀어갈 수도 있었겠으나 아직 펼쳐보지 못했으므로 이쯤에서 매듭을 지어야겠다. 다만 읽기를 마칠 때마다 실감하는 것은 사유와 공감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항상 의문을 품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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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당선 축하드려요 *^^*

아무 2022-03-09 01: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3-08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아무 2022-03-09 01:06   좋아요 1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앙역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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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희망을 모두 빨아들이는 광장이라는 이름의 블랙홀 속에서 서로를 갉아먹으며 달려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사랑. 노숙인들의 군상이 주는 실감에서 발로 뛴 흔적이 보이고, 연대와 계급의 아이러니를 다루는 솜씨는 여기부터 발아했구나 싶다. 이 모티프가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아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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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22-02-07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거칠게 정리하면, 광장을 벗어나야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비-존재‘가 광장 밖의 세계로 편입되기 위해 다른 존재들을 ‘비-존재‘로 삭제해버리는 세계의 폭력에 동참하는 아이러니.
 
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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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기댈 곳 없던 두 인물이 켜켜이 쌓은 우정도 동이라는 이름으로 갈라버리는 세계의 서늘함. 따뜻한 것을 동원해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만 어느새 동화되어 버리는 과정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미묘한 관계를 다루는 솜씨가 놀랍지만 말미에 이르면 신경향파가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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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정지돈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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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에 대한 책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것, 또는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벼운 거닐음, 걸으면서 만난 대상에 대한 성찰, 한가로운 여행의 산책길? 정지돈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은 이와 같은 독자의 기대를 가볍게 벗어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산책은 각각의 글의 실마리로 기능하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고, 굳이 연관성을 찾자면 그는 거리보다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텍스트를 산책하는 일에 더욱 주력한다.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에서 정지돈이 강점을 둔 곳은 '서울과 파리'가 아니라 '생각한 것들'인 것이고, 생각은 그의 소설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텍스트들의 인용으로 이어진다.

 

  언제나처럼 온갖 텍스트들과 자신의 지인들(실제 혹은 허구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글쓰기이건만, 왜 하필 산책일까? 그것은 "서서 쓴 글"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정지돈은 글쓰기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앉아서 쓴 글"은 리얼리즘, "누워서 쓴 글"은 모더니즘이다. "서서 쓴 글""앉아서 쓴 글""누워서 쓴 글"의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하지만, 이런 글쓰기가 그의 지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서서 쓰니까 앉아 있을 때처럼 긴 시간 집중하거나 계획을 세울 수 없으므로 글의 구조는 임의적이고 즉흥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워 있을 때처럼 편안하지도 않으니 내면 깊숙이 들어갈 수도 없다. 조금 더 설명하면 서서 쓴 글은 걸으면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의식 깊숙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표층에 머물면서, 전체의 구조나 다음 챕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쓰기. 기억과 관찰을 토대로 하지만 부정확하고 우연적이며 가볍고 산만한 글쓰기. (173, 강조는 인용자)


  글을 읽다보면 종종 인용된 텍스트나 그의 발화에서 단도와 같은 통찰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더 들어가지 않고 다른 텍스트를 끌어오거나 지인들의 이야기로 빠진다. 김빠지는 웃음을 주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유머의 기능에서 끝나지 않고 과속방지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까. 끝없는 텍스트의 인용 역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표층에 머무는 글쓰기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깊이보다 넓이를 지향하는 듯한. 이 두 가지 요소가 "걸으면서 쓴 글"이 흔히 도달하는 '아포리즘'과의 구별점일까.


  "임의적이고 즉흥적"이며 "부정확하고 우연적이며 가볍고 산만한 글쓰기"에 대한 정지돈의 지향은 리베카 솔닛을 통해 소환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산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수동성이자 불확실성이고 정체성으로부터의 탈출". "훌륭한 시민, 단일한 자아, 사회로부터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비환원적이고 주관적인 상태로 돌입하는 것, 책임을 방기하고 의미를 지연시키는 것."(91) 그래서 그가 발터 벤야민의 '플라뇌르'나 구보에 눈길을 돌리는 것도 납득이 된다. "현란한 소비문화"에 정신이 팔려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도시 산책자. 그로 인한 "지각의 산만"(101)은 불확실성과 정체성 잃기를 닮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산책-글쓰기'가 플라뇌르라는 개념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사실 플라뇌르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파리라는 도시에서 난립했던 특정한 종류의 걷기와 걷기를 기록한 텍스트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를 작가들이 재창조한 것뿐"(83)이라면서. 플라뇌르라고 규정되었던 남성들의 이중성1)을 비판하는 것은 정체성 형성과 개념화를 거부하고 목적으로부터 탈주하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그에게 당연한 귀결일까. 이런 '산책하듯 글쓰기'는 책의 말미에 가면 "에라스뮈스-분위기"와 만난다.

 

  정지돈은 "에라스뮈스-분위기""특정한 목적이나 주장, 대의에서 자유로워도 된다는 아이디어"이자, "어느 쪽 편을 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이며 단지 지식의 즐거움과 삶의 기쁨에 헌신해도 된다는 해방감"(265)이라고 말한다. 에라스뮈스는 애매모호함과 변덕스러움으로 당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공격받았지만 "빈민의 가련한 처지나 군주의 탐욕 등 세속적 사안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기회를 좀처럼 놓치지 않았", "폭력을 혐오하는 사람, 평민에 공감하고 소박한 영혼에 공감하는 사람"2)이었다. 그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확실하게 고정된 모든 것"3)에 대한 두려움이자, 자신이 주장하는 "대의가 대의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263)하기 위함이었다고 크라카우어는 해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는 정지돈도 공감하는 사유/생활방식, "우리로 하여금 대의 없이 사유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해줄 사유방식 및 생활방식이 있을 가능성"(261)을 찾아낸다. 어떤 식으로도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글쓰기. 그것은 자신만의 인장을 글에 새기고 싶은 모든 작가들의 염원이 아닐까. 정지돈은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꾸준히 쓰고 있을 뿐.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 산문에서 누군가는 파리와 서울의 산책에 대한 서술에 주목할 것이고, 누군가는 목차의 제목부터 유사-지인들의 이야기에 이르는 김새는 유머들에 주목할 것이고, 누군가는 '구보'와 플라뇌르의 이야기에 주목할 것이다. 나로서는 정지돈의 글쓰기론에 대해,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독서였다. '남북조 시대의 예술가'를 읽을 때는 문단에서 소위 '너드한' 이들이 동지를 얻지 못해 외로웠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도 내가 그의 소설-산문을 찾아서 읽을 일은 없겠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가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바이다. 목적지 없이 관조하는 산책처럼.






1) "플라뇌르는 한편으로는 상품과 여성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속도를 거부하고 생산자가 되라는 압력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새로 생겨난 상업 문화에 저항하는 동시에 매혹되는 양가적 인물이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김정아 옮김, 2017, 323)

2)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김정아 옮김, 2012, 25

3) 같은 책, 26



울프와 발저의 산책이 좋은 이유는 그들이 걷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않았고 우울해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의 산책은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것이었지만 멜랑콜리해지거나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걸을 때만 진정으로 쾌활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산책과 글쓰기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거나 결말을 맺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실한 어느 지점에서, 주제와 의도, 인과와 의무를 망각한 지점에서만 진정한 글쓰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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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2-17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그런 작가였구나 (정지돈이 다시 보이는 글) 왜 이 사람은 지식 자랑 하고 앉아있나, 그래 너 아는 거 많다! 이런 마음이었었는 데.. 제 안의 시큰둥이 좀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 2022-02-17 21:56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정지돈의 책도 <내가 싸우듯이>와 이 책이 전부입니다ㅎㅎ 읽으면서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어서 두 권 다 궁금한 책들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으로 만족한 편..^^

공쟝쟝 2022-02-17 22:57   좋아요 1 | URL
저는 <영화와 시> 보고 좋아서 소설 찾아 읽었는 데 소설이 너무 이상해서 ㅎㅎㅎ 아 나랑 안맞네, 했었거든요! 근데 이런 태도의 글쓰기 였다면! 다른 책 한번 더 찾아보겠어요. 정지돈님아, 만약에 제가 또 찾아 읽게되면 아무님한테 고마워해라!
 

일想 둘. (2022년 1월 16일)


  오랜만에 아무런 일정이 없는 휴일이었다. 약속이 없으면 보통 집콕하며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내가 하루 동안 얼마나 책읽기에 시간을 투자하는지 재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열두 시간 동안 책을 읽기도 하는데([링크]겨울서점 유튜브) 나의 집중력은 얼마나 될 것인가..를 테스트해볼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전날 잠이 들었더랬다. 11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지만.



  전날 읽고 있던 《므레모사》의 해설과 작가의 말을 읽고, 함께 온 비하인드북의 '20문 20답'과 김겨울의 리뷰까지 다 읽은 뒤 집을 나섰다. 보통은 집에서 5분 걸리는 스벅의 소파의자가 있으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 편이나, 오늘은 조금 더 걸어가 새로 생겼다는 카페로 향했다. 필터커피는 산미가 적당해서 만족스러웠고 빵은 조금 딱딱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원래는 샌드위치가 맛있는 카페라고 하는데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걸 시키지는 않았고... 아, 그래서 카페에 가져간 책은 작년에 읽다가 잠시 덮어둔 뒤 새해가 된 뒤에야 이어서 읽기 시작한 《리얼리티 버블》이었다. '맹점'이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우리가 보지 (않거나) 못하는 과학적 현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환경과 관련된 주제들도 많이 등장하고(주로 2부가 그렇다), 시간과 공간(주로 측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감시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그럼에도 어렵지 않고 많은 사례들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는 비유를 적재적소에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잘 활용 또는 인용한다는 점이다. 몇 개만 보면 이렇다.















  구미베어, 사탕, 마시멜로, 젤리 같은 디저트에도 도축장의 부산물이 들어 있다. 핵심 성분인 젤라틴은 도축하고 남은 동물의 껍질, 뼈, 뿔, 연결조직을 석회수에 석 달가량 담가서 그 안에 든 콜라겐을 추출하여 만든다. 이를 끓여서 젤이나 가루로 만들어 틀로 찍어내는 거의 모든 디저트에 사용한다. 그러나 젤라틴의 접착력은 비단 식품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알약 캡슐에서 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에 활용된다. 사진용 필름도 젤라틴으로 만든다. 플라스틱 재질에 입히는 '필름'이 바로 젤라틴이다. 빛에 반응하는 할로겐화은 입자를 젤라틴 수용액에 현탁한 것이다. 그 말은 「스타워즈」에서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화들이 도축장의 부산물을 통해 스크린에서 상영된다는 뜻이다. (168~169쪽)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첨단 기술 사회는 태곳적 세상을 직접적인 연료로 삼는다. 우리는 자동차 엔진을 켜고 회전 수를 높일 때마다 고대의 화학적 잔여물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생명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매번 연소할 때마다 이런 죽은 유기물의 잔여물이 하늘로 날아가 이산화탄소라는 유령이 된다.

  자동차 연료 탱크에는 평균적으로 한때 1,000톤이 넘었던 고대 생물이 들어 있다. 무려 23톤의 고대 생물들이 휘발유 1리터로 변환된다.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 우리는 생물량 40에이커에 상응하는 것을 탱크에 담고 달리는 셈이다. 유타 대학의 생태학자 제프 듀크스에 따르면 "매일 우리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석 연료는 육지와 대양에서 1년 동안 꼬박 자란 모든 식물들을 다 합친 것에 해당한다." (202쪽)


  공기, 흙, 물은 결국에는 우리가 된다. 고기후학자 커트 스테이저의 말처럼 궁극적으로 우리는 쓰레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여러분의 손톱을 한번 보라. 탄소가 그 절반을 차지하며 대략 탄소 원자 여덟 개 가운데 하나가 최근에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관에서 나온 것이다. … 그러니 [여러분은] 부분적으로는 배기가스로 만들어졌다." (241쪽)


  2시간 정도 카페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읽던 책을 마저 읽다가 덮고, 저녁을 먹은 뒤 커피를 또 내려서 마시고 빈둥거리다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편 책은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 새해에 생각(만) 했던 독서 목표 중에는 '문학 일반에 대한 책(문학이론이나 문학사 같은)들을 읽자'는 것이 있었고 그 시작으로 고른 책. 한 챕터의 길이가 그렇게 길지 않고 개별 작품이나 사조에 대해 설명할 때도 전문 용어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있어 이해가 쉽다. 다만 전반부만 읽어보았을 때 영국 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 있어 '(영)문학의 역사'로 제목을 고쳐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날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무리를 지었고 이후에도 틈날 때마다 한 챕터씩 읽으며 이제 낭만주의까지 읽었다. 다음 챕터는 제인 오스틴이다..















  최승자 시인의 에세이 몇 편을 읽고 하루의 독서는 마무리되었다. 대략 3시간 40분. 휴대폰도 보고 밥도 먹고 멍때리고 딴짓도 하니 하루라는 시간 중에 이 정도의 시간을 쓰는구나라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언제 또 마음이 생기면 5시간은 넘기는 걸로 도전해볼까 하는 호승심도 생긴다. 물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일相 셋. (2022년 1월 18일)


  소전서림에 두 번째로 방문했다. 이번에도 반일권을 결제했고, 오늘은 텀블러를 챙겨왔기에 안에 준비된 커피를 따르고 자리를 잡았다. 오늘 챙겨온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서점에서 연말에 추천했던 책이고 다른 곳에서도 추천하는 걸 많이 봐서 독서모임에서 다룰 수 있을까 싶어 가져온 책이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일생을 다룬 책이면서, 저자가 왜 이 학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엮이며 내용이 전개된다. 지금까지는 몰입하면서 읽고 있는데, 소개를 보았던 모든 매체에서 추천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된다며 내용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던 터라 뒤의 이야기가 매우 궁금해진다.















  앞부분을 읽다가 그래도 도서관에 왔는데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쭉 돌다가 고른 책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였다. 제프리 다머라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작품으로, 오츠를 검색하면 상단에 올라오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오츠의 작품들 중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그들》이지만, 워낙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모임에서 같이 다뤄보자는 말을 못하고 있다. 오츠의 대표작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책들이 상당한 두께를 가지고 있어서 대안으로 생각했던 책이 《좀비》였었다. 다루기 전에 어떤 책인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뽑아들었는데, 《흉가》를 읽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호러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쿠엔틴이라는 살인범의 일기라는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서술 방식에서 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한 서술 방식이 선형적인 전개가 아니라 이리저리로 널을 뛰는 전개를 취하게 한다. 정말로 연쇄살인범의 일기 같다는 점에서 작법의 승리이지만, 이 이야기가 책소개처럼 "탐욕적이고 광적인 사회, 거대한 괴물 같은 미국이라는 집단을 상징"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오늘은 7시 반부터 특강이 예정되어 있었다. 6시 반까지 책을 읽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거리만 멀지 않다면 정기권을 끊고 자주 오고 싶을 만큼 고요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잡想 둘. (2022년 1월 19일)


  생각난 김에 새해에 생각했던 독서 목표들도 나열해볼까 싶다.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 한 해 동안 60권 이상 읽기

2. 《서양철학사》 완독하기















3. (집에 쌓아둔) 문학이론, 문학사 관련 책 읽기
















4.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읽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책 읽기















5. 《모비 딕》 읽기
















6. (역시 쌓여있는) 과학 책 읽기




























7. 파리에 대한 책들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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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1-19 0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 목표 이루시길! 주간 아무르도 자주자주 써주세요 ㅋㅋㅋ 저 이번 주 하루에 매일매일 다섯시간씩 읽기 도전 하다가 (도전 중독) 지금 지쳐서 소파에 드러누워 북플합니다 ㅋㅋ
서울 리뷰오브 북스 1권을 거진다 읽은 참인데요 다가오는 생일에는 2년치 정기구독권을 끊어볼꺼 싶어졌어요. 아무님 덕분입니다 ㅋㅋ

아무 2022-01-19 18:07   좋아요 1 | URL
주간 아무르 요즘 소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일상 이야기를 많이 쓰게 돼요 ㅋㅋ 리뷰는 요즘 몇 개 써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조만간 써보려고 합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저 아직 3권에 머물러 있어요. 이미 4권도 나온 지 꽤 되었는데 ㅋㅋ 겨울 중으로는 완독하고 나오는 속도와 발맞추는 것이 희망사항입니다 ㅋㅋ
다섯시간 읽기 도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한번 재보고 나니 4시간만 읽어도 열심히 한 거라는 생각도 들고 ㅋㅋ 북튜브 콘텐츠로도 볼 수 있겠죠?😁

blanca 2022-02-0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의 모든 역사> 담아갑니다. 소전서림에 가보고 싶네요.

아무 2022-02-03 22:02   좋아요 0 | URL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