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김엄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평소에 '삶'과 '생활'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생활'이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삶을 산다는 것은 착각이고, 사실 모든 것이 지리멸렬한 '생활'로 편입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주인공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기력하다. 실제로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행동도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제스처가 아닌, 그냥 일상으로 편입되어버리는 소극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단편 안에서 비슷한 문장 구조가 반복되거나 변주되고 이를 이용한 언어 유희가 종종 등장한다.


영철은 집에만 오면 밥 생각이 없어졌다. 그에 비해 아내는 온종일 밥 생각뿐이었다. 그녀에게는 끼니 해결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고민이었다. 영철이 출근한 뒤에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었고, 영철이 퇴근한 뒤에 그와 함께 먹는 밥은 더 맛이 없었다. 그녀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토로했다. 엄마, 뭘 먹어도 맛이 없어. 나 알지? 뭐든지 맛있게 먹는 거. 김영철이랑 같이 살면서부터 입맛이 죄다 떨어졌나 봐. 어쩌면 좋아? 친정 엄마는 오이지와 게장을 추천했다.

- 「영철이」 (87쪽)


나도 며칠 그랬어. 그럴수록 잘 먹고 잘 자야 돼. 당신 밥은 잘 먹고 살아? 아내가 물었다. 밥맛이 없네. 혼자 먹어도 맛이 없고, 동생 식구랑 같이 먹으면 더 맛이 없으니. 아내는 영철에게 오이지와 게장을 추천했다. 

- 「영철이」 (106쪽)


비슷한 문장이나 단어의 반복이 주는 리듬감이나 언어 유희가 단편들을 읽는 하나의 재미이긴 하나, 이것이 가끔 과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이를테면 "괜찮찌개" 같은 것들(「그의 사정」). 이런 문장의 반복들이 특징없는 인물들과 결합하면서  무의미함과 덧없음이 증폭되는데, 이런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는 작가의 세계관이 한몫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는 "떡이나 개, 가끔은 좆"으로 요약되는, 원하는 고기를 먹기 위해 사장이 주는 "그 개 같고 좆같은 떡을" 받아먹으며 자아실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돼지우리의 세계다.


라라 양은 내가 아는 돼지 중에 가장 똘똘하고 예뻐요. 내가 잘 먹이고 잘 키워줄게요. 뭐든지 잘 먹어야 해요. 자, 아아. 사장은 서빙 아줌마가 놓고 간 인절미를 라라의 입 앞에 내밀었다. 그다음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아앙. 라라가 그 개 같고 좆같은 떡을 받아먹은 것이다. 라라는 인절미를 모두 삼킬 때까지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저것이 라라가 말하는 직업윤리와 자아실현의 길이라면, 과연 그녀는 돼지였다.

- 「돼지우리」 (28쪽)


떡 이외의 모든 음식에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우라라가 사장이 주는 떡을 넙죽 받아먹는 장면, '나'가 자신의 손이 "돼지 족"이 되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은 '돼지우리'라는 고깃집 이름과 연결되며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우라라와 '나'는 사장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번듯한 직업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라라는 의식주 중 '식'만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고기만 먹으면 되는 (비)정규직에 지원했을 뿐이고, '나' 역시 불어오는 살을 바라보며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돼지우리 속에서 살아가는 돼지족(族)의 자화상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현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면 제각기 다른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들이 삶의 전환점이 되거나 의미를 획득하지 않고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듯이, 그들이 도박장에서 운수 좋게 삼뻑을 하거나, 바다로 갑자기 떠나거나, 어떤 새 폴더도 아닌 '느시' 폴더에 매뉴얼을 저장하기로 하는 행동들도 어떤 전환점이 되지 않고 일상에 포섭된다. 그러므로 Y에게 사기를 친 김수동이 누군지(「어느 겨울날」), 왜 하필 '느시' 폴더인지(「느시」), 왜 E가 발목을 돌리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지(「고산자로12길」)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어차피 작가는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단편들은 발표된 순서대로 실려있는데, 뒤로 갈수록 안 그래도 약했던 인물들의 활동은 점점 더 축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점점 더 무기력해진다. 심지어 「고산자로12길」과 「느시」로 가면 인물들은 이름마저 상실하고 a, b, c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회사에서 얼마든지 대체가능한 일상을 보내는, 일하다가 다른 듯 비슷한 메뉴의 점심을 먹고 뒤풀이를 하는 패턴만 보여줄 뿐이다. 단편집을 처음 읽을 때는 충격적일 만큼 단조롭고 무기력해서 흥미있게 읽었지만(무사건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신선함에 익숙해진 뒤에도 이런 작법이 의미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시의성은 가질 수 있겠으나, 삶과 생활의 경계마저 붕괴된 인물들의 무기력한 삶을 그려낼 뿐 질문을 품고 있지는 않다는 인상평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아마 그래서 등단작인 「돼지우리」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장편소설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건 나는 이제 직업을 가진 거야. 여기가 내 첫 직장이니까 축하나 해줘. 나는 직업윤리를 엄수하는 성실한 일꾼이 되겠어. 라라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진짜 내가 돼지가 되었다 치자. 너도 들었지? 본연의 모습을 찾는 거래. 자아실현이야. 그거야 말로 내가 바라는 거야. 이제 떡 같은 면접은 집어치우는 거야. 자유야 자유. 나는 내가 되는 거야. 돼지가 되는 거라고. 라라는 입을 크게 벌리고 괴상스럽게 웃었다. (「돼지우리」, 27쪽)

너는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냐? 대뜸 영철이 팔광에게 물었다. 테트리스요. 팔광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테트리스? 벽돌 쌓는 게임 말이냐? 영철이 소주를 홀딱 원샷하며, 되물었다. 그냥 쌓기만 하는 거 아니에요. 이상하게 쌓으면 죽어요. 잘 쌓아야지 없어지고 다시 쌓을 수 있어요. 또 쌓고 없애면, 벽돌이 내려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요. 나는 그 속도를 따라서 계속 쌓고 없애야 돼요. 속도를 못 따라가면 나는 죽어요. 없애기 위해서 쌓는 것 같지만, 쌓기 위해서 없애는 거예요. 팔광은, 테트리스를 신앙 삼은 듯, 허공에 대고 빠르게 이야기했다. 미친놈, 그게 왜 인생이야? 영철이 헛웃음 치며 물었다. 죽으면 열 받거든요. 팔광이 단호히 대답했다. (「삼뻑의 즐거움」, 42-43쪽)

행복이 뭐예요? 다섯 살 된 영철의 조카는 TV를 보다가 이것저것 영철에게 자주 물어보았다. 행복이 뭔지 모르니? 영철이 조카에게 되물었다. 몰라요. 조카가 대답했고, 나도 몰라, 너도 죽을 때까지 모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어제 너희 아버지가 케이크를 사 와서 네 기분이 어땠니? 조카에게 물어보았다. 빨리 초 켜고 싶었어요. 불 끄고 먹고 싶었어요. 빨리 먹고 싶었어요. 조카는 어제 먹은 케이크의 기억이 생생했는지 양팔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게 행복이란다,라고 영철은 말해주려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니 어쩌면 조카에게는 그것이 행복일 텐데 싶어서, 그게 행복이란다, 말해주려다, 아무래도 영철이 생각하기에 행복이란, 행복이라는 게 그러니까 그렇게 그런 게 아닌데 싶어서, 그랬구나, 케이크를 좋아하는구나,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철이」, 103-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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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집 읽었씁니다. 말장난 같다고나 할까요. 적당히 쓰면 좋은데
과도하게 쓴 느낌.. 오히려 말장난을 위해서 서사를 비튼 것 같기도 한 작품 읽은 듯한 느낌..
뭐야. 이거 이런 생각이들더군요..

아무 2016-07-21 13:47   좋아요 0 | URL
말장난이 과하다는 느낌이 분명히 있죠. 사실 뒤로 갈수록 서사도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 작품이라.. 언급하지 않은 작품은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여서 할 말이 없었던 작품입니다. 표제작이라든가.. 기타 등등..
한번쯤은 읽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작품도 계속 볼지는 잘 모르겠네요 ^^;;

cyrus 2016-07-2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장난은 곰발님처럼 읽는 사람 마음을 밀당하면서 써야 재미있습니다. 이 책을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괜찮찌개’는 억지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아무 2016-07-21 14:47   좋아요 0 | URL
`괜찮다`는 말을 반복, 변주하면서 나왔던 말이었습니다. 그것도 밑줄에 적으려다 그냥 안 적었는데.. 말장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밀당이죠. 제가 매번 곰발님 글을 보며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