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를 보고나서, 시인 윤동주가 살아왔던 모습을 그의 친구 송몽규와 함께 최대한 생생하게 그려내려는 노력이 많이 돋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쉬운 점도 많았는데, 사소한 것부터 말하자면 정지용 시인의 영향에 대한 부분만 부각되고 백석 시인의 영향이 별로 부각되지 않은 점(영화에선 송몽규가 윤동주에게 <사슴>을 건네는 한 장면만 있으며, 윤동주의 대사에서도 백석 시인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몇 편의 시들이 실제 쓰여진 시기랑 맞지 않게 배치되었다는 점('흰 그림자'는 1942년에 쓰여졌다) 등이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영화가 어떤 대립구도를 지향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윤동주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윤동주가 송몽규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하긴 나 역시 윤동주의 삶보다 그의 시를 먼저 접하고, 그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니 실제로 그런 열등감이나 질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시 속의 윤동주의 모습, 그의 부끄러움은 송몽규와 대비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자신 그 자체였고, 단순히 열등감만으로 가득찬 부끄러움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그럼에도 나는 시를 쓸 수밖에 없다는 다짐을 하는 윤동주였다. 그런 시인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아마 '자화상'일 것이다.


영화에서 워낙 두 인물의 삶이 대조되다 보니, 윤동주보다 송몽규가 더 두드러지는 느낌을 받았고, 윤동주는 자신은 왜 몽규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지를 자책하는 모습이 많이 부각됐다. 특히 진술서에 서명하지 못하겠다며 대사를 토해내는 부분에서 그런 자책과 부끄러움이 극대화되는데, 여기서 영화는 두 인물의 대사를 교차편집하며 결국 이 둘의 지향점이 같았음을 말하려는 것 같다. 결국 항일투쟁으로 연결되는 것인데, 시의 배치나 이런 편집이 윤동주의 항일투쟁에 방점이 찍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실제로 윤동주의 시 중에 시대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라고 기억되는 것은 많지 않다. 지금 생각해봐도 '쉽게 씌어진 시' 정도다. 그 외의 윤동주는, 자신의 자의식, 외로운 자아와 투쟁하는, 하지만 결국 그것을 보듬으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자화상'과 '참회록'의 윤동주다. 그런 시기에 시를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대한 저항이 될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지만, 윤동주의 시 세계를 지나치게 한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시가 송몽규의 삶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그려지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내 생각도 문학이나 문학교육의 '순수' 이데올로기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잔잔한 흐름을 이어가고, 강하늘의 연기는 정말 윤동주는 저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흑백이지만, 그리고 슬픈 이야기를 다루지만 윤동주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낸 차분한 영화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항일, 독립운동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감상을 정리한다. 나중에 찾아볼 기회가 있겠지..


+) 내가 가지고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두 권인데, 하나는 풍림출판사본(89년 출간인데, 이 책에는 시가 쓰인 연도가 없다)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한국 대표 시인 초간본 총서> 중 한 권이다. 초간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살까 고민하다가 사지 않은 것은 이미 두 권이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영화를 보고 문득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냥 <사슴> 초간본을 주문한 것에서 만족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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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3-01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종반부로 치달을 때까지 곳곳에서 너무 지나치리만큼 자주 `두 인물의 성격 대비`를 보여주던데, 감독이 자의적으로 연출한 것인지, 실제로 두 인물의 `성격 차이`가 널리 알려질 만큼 그렇게 `시인에게 억울한 쪽으로만` 두드러졌던 것인지 내내 궁금하더군요. 아무 님의 글을 읽어보니 `감독의 의중`이 많이 가미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네요. 시인의 시세계를 온전히 보여주기엔 `형무소 장면`이 너무 지나치게 많았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고요.

아무 2016-03-01 23:33   좋아요 0 | URL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역사적 사실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맞다 아니다를 답변드리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윤동주 평전>이나 <처럼>을 찾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저항`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흰 그림자`를 낭송하는 부분에서도 마지막 연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가 생략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하필 임정으로 가는 몽규를 보여주면서 이런 식으로 `흰 그림자`를 보여주는 부분이 지나치다고 느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송몽규라는 인물을 재조명해주었다는 점에서, 윤동주의 삶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좋았던 영화로 전 기억하고 있습니다. 흑백으로 처리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oren 2016-03-03 00:27   좋아요 1 | URL
책을 읽다가 묘한 구절을 만나고 보니, 문득 이 페이퍼에 담긴 `글쓴이의 깊은 뜻`이 다시금 생각나서 밤 늦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대목을 공유해 볼까 해서요...
* * *
위대한 인간들을 공적 이익이라는 궁색한 관점으로 바라보면, 오해하게 마련이다. 그들에게서 어떠한 이득도 취할 줄 모른다는 것, 이것 자체가 바로 위대함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 니체, 『우상의 황혼』

아무 2016-03-03 00:30   좋아요 0 | URL
방금까지 읽던 책에서도 니체를 잠시 다룬 부분이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첫 문장부터 인상적이네요....

프레이야 2016-03-01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소영의 시인 동주,에는 그런 대목이 좀 엿보이더군요. 백석의 사슴 초판본은 출간이 연기되었다고 하여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 2016-03-01 23:36   좋아요 1 | URL
<시인 동주>를 읽어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영화를 본 걸 계기로 윤동주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해지고 관심이 가게 되더라구요... `별 헤는 밤`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것이 `흰 바람벽이 있어`와의 영향관계일 만큼 백석의 영향 역시 정지용 못지 않은 것이었죠. 분량상 어쩔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 그건 그렇겠거니.. 합니다. 저도 <사슴> 초판본 연기되었다고 해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영화에서 나온 표지가 알라딘에 뜬 표지랑 정말 똑같더군요..

파란자스민 2016-03-01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소영의 시인,동주를 먼저 읽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 대립 구도가 조금 납득은 가더라구요^^ 이준익 감독도 사실적인 이야기가 바탕이긴 하지만, 좀 더 영화스럽게 끌고가려다보니 그렇게 연출하신 것 같아요. 실제로 윤동주 시인이 송몽규에게 열등감을 느낀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무 2016-03-02 01:21   좋아요 1 | URL
사실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죠. 다만 그 이야기를 해줄 두 분이 해방 전에 돌아가셨으니...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윤동주답다고 여겨졌던 부분은 연희전문학교에서 문예지를 만들 때 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말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윤동주의 시와 삶에서 `일제강점기`나 `저항`을 빼놓고 말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너무 그쪽만 강조하는 것도 전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가 그들의 삶을 재조명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 소심한 아쉬움 같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