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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점을 내가 알게 된 건 언제, 어떤 매체를 통해서였을까? 월간 《책》이었나, 아니면 팟캐스트? 어쨌든 초창기부터 '위트앤시니컬'이라는 이름은 내 눈길을 끌었고, 언젠가 꼭 한 번은 방문해보겠다는 마음도 먹었었다. 다만 시를 다른 분야의 책들만큼 자주 읽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차일피일 미뤄오기만 하다가 결심을 한 지 몇 년 만에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위트앤시니컬'은 대학로에 위치한 '동양서림'의 2층에 있는 시집서점이다.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곳. 동양서림에 들어가 나선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나타나는 공간은 작지만 따뜻한 느낌을 준다. 시집과 시에 관련된 서적만으로 빼곡히 들어찬 공간은 색다르면서 묘한 울림이 느껴졌다. 중간중간 붙어있는 포스트잇에서 시인의 추천도 하나씩 살펴보던 나는 어떤 시집에 눈길이 머물렀다. 대학생 시절 나를 붙들고 있었던 최승자 시인의 시집 리커버판을.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문학과지성 시인선 디자인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은 작년 12월인데,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보니 연말이라 일에 치여 열심히 찾지 않던 시기인 듯하다. 표지의 질감, 쨍한 형광색의 표지, 문지 시인선 같지 않은 낯선 글꼴과 편집 스타일을 하나하나 훑으며 어느새 나는 시집을 한 손에 쥔 채 서점을 돌고 있었다. 감정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를 함께 했던, 오래도록 가슴 속에 박혀 있던 시집에 대한 향수랄까.
3년 전 그의 초기 시집 두 편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감상을 정리하고([링크]존재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이후의 시집들을 연거푸 찾아서 읽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날카롭고 섬뜩한 이미지와 언어, 허무와 죽음만이 상존하는 세계에서 치열하게 발버둥치는 화자의 분투는 《즐거운 일기》에서 끝난 듯했다. 가장 최근작인 《빈 배처럼 텅 비어》를 읽다가 덮은 것도 어떻게든 존재론적인 고독과 고통을 언어와 이미지로 붙잡으려는 시는 없고 '공(空)'만 남은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첫 시부터 살아 있다는 것이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찍이 나는〉)고 말했기에 남은 것은 이제 공(空)과 허무뿐인 것인가. 세월이 지나 시인의 "괴로움 / 외로움 / 그리움 /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내 청춘의 영원한〉)은 이제 닳고 닳아 둥글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공(球)과 공(空). 독자였던 나는 이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삼십 세〉) 온다는 서른도 넘겼는데, 나이를 먹으며 단단해진 것이라 생각했던 마음도 사실은 시를 읽던 그때보다 닳아버린 것일까?
일찍이 절판되었던 그녀의 산문집이 난다 출판사에서 연거푸 다시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 반갑게 구매하여 쟁여놓고 있다(한 권은 이미 왔고 한 권은 예약구매를 했다). 아직 펼쳐보진 않았지만(그러기엔 당장 다음주까지 읽어야할 책이 있다..) 오래 되었으면서 새로운 산문에서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시니컬했던 언어들을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오랜만에 다시 본 《이 시대의 사랑》의 자서(自序)에서 말하듯, 아무리 고통과 절망과 폭력의 언어여도 그것을 "꿈꾸는 건강한 힘"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시인의 언어이니까.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존재한다. 그는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 그리하여 시는 어떤 가난 혹은 빈곤의 상태로부터 출발한다. 없음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없음의 현실을 부정하는 힘 또는 없음에 대한 있음을 꿈꾸는 힘, 그것이 시이다. 그 부정이 아무리 난폭하고 파괴적인 형태를 띤다 할지라도 그것은 동시에 꿈꾸는 건강한 힘이다. 그리하여 가난과, 그 가난이 부정된 상태인 꿈 사이에서 시인은, 상처에 대한 응시의 결과인, 가장 지독한 리얼리즘의 산물인 상상력으로써 시를 만든다.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자서 中
《이 시대의 사랑》 말고도 두 권의 책을 더 골라 계산을 했다. 하나는 시집, 하나는 시론집. 오랫동안 인터넷 주문을 애용하다 보니 서점의 자체적인 도장을 본 지도 오래 되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으며 시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을 좁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주인장인 유희경 시인의 시 세계도 알아두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