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열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어제 오늘 입술이 까맣게 타면서 딱지가 지고 당기고 난리가 났다. 체온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온도를 잰 적은 없지만 온몸의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고 입이 마르고 오한이 느껴지면 열이 오른다는 하나의 증거다. 몸살이라도 앓을라치면 밤새도록 열이 올라 헛것까지 본다. 특히 주사를 맞은 날 밤이면 천정이 아래로 내려왔다 올라갔다하는 착시까지 경험하곤 했을 정도다. 성인이 된 후로는 주사를 맞을 일이 거의 없고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 근처에는 얼씬도 않다보니 저런 현상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아직도 열에 대한 공포감은 남아있다. 그런고로 내 가방에는 상시 아스피린이 대기 중이다. 몸이 힘들다 싶으면 아스피린 딱 한 알을 삼킨다. 한 알 정도면 빈속에 먹어도 무난하므로. 아스프린, 그것도 꼭 바이엘 아스피린을 슈퍼에서 껌을 사듯이 때때로 사서 쟁여 두다보니 습관성 복용이 아니냐는 걱정도 듣는데, 그건 아니다. 충분히 쌓여있는데도 약국에 들를 때마다 습관적으로 사는 이유는 단순하게 기분 탓이다. 값싸고 효능이 뛰어난 약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랄까. 간혹 가족이나 지인들이 아파 보인다 싶으면 얼른 아스피린 한 알을 내민다. 물론 아무도 거절하지 않는다.


여전히 입술이 거칠다. 뉴트로지나 립 모이스쳐라이져 바르고, 아스피린 먹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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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견에 물려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저절로 떠오르는 상상에 몸서리를 친다.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얼마나 엄마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렀을까. 이웃과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는 너무도 어이없게 생명을 잃었다. 있어선 안될 일이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대책을 세워 죽은 아이의 넋을 달래야할까. 어떤 말로 용서를 빌어야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는 안전하고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안도하리라. 이웃의 누군가 병으로 혹은 굶주림에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서둘러 내 집의 대문을 더 단단히 걸어 잠그는 것, 내가 왜 그런 사람들과 내 가족을 동일시하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진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없음을 열거한다. 몇 십만 원짜리 과외비용으로 재능보다는 욕심이 앞서는 학원비용으로 턱없이 많은 돈을 봉투에 넣어 갖다 바치면서도 이웃의 굶주림을 경멸한다. 보고 듣는 것조차 싫어한다. 동정하고 연민하는 마음자체를 차단한다. 계급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옆이나 아래가 아닌 위를 보고 사는 법을 우러르게 되었을까. 그런 삶의 방식만이 발전과 성공의 열쇠라고 인지시켰을까. 더 나은, 더 잘난, 계급과 부자를 목표로 비인간적인 속물화가 되어가는 결코 악인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들을 보노라면 입맛이 쓰다. 우울하다.


p.s. 며칠 전에 길을 가다 검은색의 커다란 개와 마주쳤다. 목줄을 질질 끌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모양이 영 불안했다.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딴 곳을 보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개와 지나쳤다. 그 순간의 공포감이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작고 귀여운 애완견을 보면 예쁘다고 탄성을 지르며 만지작거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작고 귀여운 것에 인간은 약하다. 그러나 이빨을 드러낸 도사견, 소위 사냥개 종류는 다르다. 그 주인이 아무리 이 개는 순해서 짖지도 물지도 않는다고 해봤자 친근하지 않은 낯선 동물과 일대 일로 맞서는 당사자는 공포에 질린다. 한번은 조카아이들이 놀러왔다가 대문을 나서는데 이웃집의 아저씨가 커다란 개를 풀어놓고 세차를 하고 계셨다. 아이들이 놀라 내 뒤로 숨자 아저씨 웃으며 하는 말, 안 물어. 나는 화가 나서 주인을 안무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보다 작은 아이들을 물지 않으리란 보장을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를 쳤다. 아무리 길들여진 개라해도 동물이고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열이 뻗쳐서 쏘아붙였다. 그러니 그렇게 웃으며 가볍게 얘기하지 말고 빨리 개를 데리고 들어가시라고. 그 뒤로 그 아저씨를 보아도 예사로 보이질 않았다. 어른 몸통만한 개를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인도를 활보하는 인간을 만나도 그렇다. 납작 엎드려있지 않는 이상 그들은 어린아이들에겐 무시무시한 괴물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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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1-1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뉴스를 보고 얼마나 끔찍했던지.......ㅠ.ㅠ

hnine 2005-11-15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기사를 대할때마다 아이의 울부짖음이 들리는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이런 일이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겨울 2005-11-1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존엄같은 건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방임과 유기였어요. 그 가족에게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해도 아이에겐 너무 가혹한 환경이었어요.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타인보다도 더 잔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요즘 컨디션이 계속 바닥을 긴다. 젤 큰 원인으로는 할머니의 입원이리라. 주말마다 병원에 가서 이틀 밤을 연속으로 머물다보니 피로가 쌓이고 쌓여 컴퓨터만 들여다볼라치면 하품이 찢어지게 나오고 막상 어기적어기적 침대로 올라가 누워도 흉흉한 꿈에 시달리기 일쑤. 뭐든 쓰려고 새창을 열었다가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결국에는 그냥 닫고 만다. 이건 핑계야, 핑계. 게으름을 빙자한 핑계. 심술궂은 내안의 자아는 오늘도 온갖 잔소리를 해댄다.


집 근처에 새로 문을 연 포장마차에서는 붕어빵과 오뎅을 판다. 평소 바람처럼 휙 하고 나르듯 걷는 습관 탓에 아무리 군침 도는 냄새를 솔솔 풍겨도 유혹을 이기고 굳건히 집으로 향하곤 했다. 정 입맛이 당기면 포장을 부탁해서 집까지 날라놓고 시식을 하거나. 그랬는데, 오늘은 추위를 예상 못하고 얇은 옷을 입는 실수를 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후끈거릴 만치 날씨가 좋았다. 몇 겹씩 껴입던 옷을 왜 하필 오늘은 벗어던졌을까. 시원하게 목을 드러내고 다니는 청춘들을 부러워한 벌처럼 종일 몸은 몸살이 난 듯이 쑤시고 결리고 손끝은 시렸다.


그리하여 오뎅국물의 뜨겁고 진한 맛을 찾아서 오가며 눈여겨둔 포장마차의 아줌마와 눈인사를 건넸다. 종이컵 가득 국물을 담아 호호 불어 마시며 붕어빵도 하나 먹어보고 까마득한 옛날 꼬맹이 조카를 위해서나 사봤던 팅팅 불은 오뎅도 하나 건져서 맛을 봤다.


드디어, 겨울이다. 열린 옷의 틈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에 진저리를 치며 걸었던 아침 이후, 겨울이 이렇게 오고야 말았음을 실감했다.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던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은 경쾌했다. 어쨌거나 겨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고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의 빨간불을 주시하며 선 내 얼굴은 그런 의미로 반짝반짝 빛났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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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1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겨울 2005-11-1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힘내고 있어요. ^^

비로그인 2005-11-1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3시30분경, 온도가 -4를 향할때, 발끈, 했지요. 너무 추워서요. 겨울은 추워야 제멋이라지만 너무 추워요. 그러나 별이 잘 보여서 참기로 했습니다. 별을 보고 살아요.

겨울 2005-11-1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옷 많이 껴 입으세요. 무조건 많이요. 그럼 겨울도 겨울나기도 재미있어요.

검은비님, 딱 그런 이유에요. 눈만 빼꼼 내밀고 겨울바람, 냄새, 나무, 하늘의 청정함에 취하는 거요. 따끈한 이불속에 숨어드는 것도 좋고, 뜨겁고 달달한 커피 한 모금에 마냥 행복한 것도 좋고, 어두워지면 돌아갈 집과 책과 컴퓨터가 있어 더욱 좋고, 거리마다 흐드러진 낙엽밟기도 재밌어요.

겨울 2005-11-16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상할 정도로 타인(남,여, 가족 기타등등)과의 스킨십을 싫어하는 관계로.... 저건 좀 곤란하네요. 누가 손을 잡으면 뺄 기회를 잡느라 전전긍긍. 그럼에도 아이들과의 스킨십은 좋아라 하니^^ 혹, 보호받는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건가 싶지요.
 

 

에세이라기보다는 러브레터(스가 시노부)


[어느 페이지를 넘겨봐도 인간의 생생한 감정과 힘이 넘쳐흐르는 것만 같았다. 새삼스레 내가 얘기할 것도 없이, 여기까지 스토리를 좇아온 모든 독자들이 느끼고 있을 테지만, 등장인물들 모두 무시무시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죽음조차 리얼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그 죽음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깊은 각인을 새기고, 더욱더 가혹한 생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생명이나 사상은 이어져 내려가는 것이며 이 작품에서는 그 생명과 사상이 거의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라사나 슈리 일행에게는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단순한 형태, 그저 살아가기 위해 살고 있다는 것으로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라스트에서 그저 학대받고 지배받는 것에 길들여졌던 민중에게 사라사와 슈리가 호소하는 내용은 엄청난 설득력을 갖고 가슴을 쳤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라.

살아간다는 것은 원래 싸워나간다는 것과 동의어였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떠오르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사라사 일행은 그렇게 살아왔다.


이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지면 죽음밖에 없다. 하지만 비참할 뿐인 패배자들조차 실로 근사하다. 주요 패배자들은 물론, 이름도 없이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까지, 인생을 확실히 실감케 하는 것은 대체 어떤 기술일까.


너무나 재밌어서 완전히 이야기에 푹 빠진 나머지, 사라사들과 동화되어 감격하고 화를 내고 눈물 흘리며 이야기에 휘둘릴 대도 휘둘린 나는 그 뒤에 조금 질투하고 말았다. 이토록 굉장한 이야기를 그려낸 타무라 유미 씨의 재능에 대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사라지는 마지막 권은 역시나, 감동과 슬픔의 도가니다. 몇 번을 읽어도 무겁고 아프다. 작가에 대한 선망과 질투를 넘어 분노까지 느낀다, 스가 시노부처럼. 문득 드는 생각. 도대체 만화가 말이야,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이 만화를 읽고나서도 그럴 수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지구를 지켜줘' 애장판도 완결이 났다. 전생에 그들은 달에서 무슨일을 겪었는지, 최후까지 살아남은 시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애를 태우며 궁금하게 하더니, 그 놀라운 비밀이 드러났다. 결국엔 사랑이지, 미움과 증오, 배반의 탈을 썼지만 결국엔 지극한 사랑 때문이지. 역시, 아무리 지독한 짓을 해도 미워할 수가 없더니, 돌아온 링의 기억과 함께 해피 엔드다. 자살한 영혼은 내세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확고부동한 교리 앞에서 솟구치는 여러가지 궁금증들이 많지만, 자살이 죄악이라는 건 익히 들어 왔었고, 그 설정이 없었으면 이 만화의 비극성을 극단까지 끌어올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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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바사라....! 저는 그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댑니다..^^

ceylontea 2005-10-2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바사라 다시 읽고 있어요... 넘 재미있어요... 근데 피곤해서 넘 졸려요.. ㅠㅠ
나의 지구를 지켜줘... 저도 보고 싶어요... 빨리 옆사람 보고 사라 옆구리르 찌를 것인가.. 제가 살 것인가.. 음~~!

겨울 2005-10-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ceylontea님, 몇 번을 읽어도, 멋진 만화들이죠? 이럴 땐 만화가 있어 살만하고 행복한 세상이구나 하고 구름 위를 거닐어요. ^^ 오며 가며 자주 뵈었지만 천성이 낯가림이 심하고 게을러 인사가 늦었어요. 반가워요, ceylontea님.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할머니 소식을 듣고 차비를 차려 내려가면서 싸들고 간 몇 권의 책 속에 들어있던 소설집에서 유독 절절하게 와 닿았던 짧은 글이다. 암의 발병과 함께 뒤를 가리지 못하고 앓아누운 어머니를 간병하는 딸은 죽음에 이르는 그 짧지만 긴 시간을 그렇게 표현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라고.


할머니가 좀 더 건강하셨을 때, 농담처럼 누운 자리에서 똥 누기 전에 죽겠노라 그 이상 사는 건 상상도 못한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말에 별소릴 다 하신다고 눈을 흘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할머니에게만은 절대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래서일까. 링거액을 맞으며 죽은 듯이 누워계시는 할머니가 낯설었다. 그 강하던 자존심과 청결에 대한 결벽증을 어디다 흘려두고 눕고 일어나고 앉는 동작에도 안간힘을 쓰시고 지척에 있는 화장실로의 거동은 어림도 없는 것이다. 결코 누구도 특히 할머니가 원치 않았던 길이건만 어느덧 그 길 위에 서 계신다. 기억을 갉아먹는 세월의 벌레가 있어 야금야금 할머니의 머릿속을 파먹는 것 같다. 그저 운이 나빠 넘어졌을 뿐 뼈나 머리에 아무 이상도 없노라고 병원에선 말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할머니가 아니시다. 마치 나쁜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병원에서 지내는 이틀 동안 내내 그랬다.


어머니 옷갈피에는 어디서 난 건지 흔히 향비누라고 일컫는 냄새 좋은 세숫비누가 구메구메 들어 있었다. 화장품을 살 때 선물로 얹어주는 작은 향수병도 몇 개 마개가 헐겁게 잠긴 채 들어 있었다. 행여 늙은이 냄새가 날세라 그렇게 철저히 대비를 했던 것이다.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추레해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어머니다운 자기 관리였다.  


소설 속의 어머니처럼 할머니도 서랍장의 옷 사이에 선물로 들어온 세숫비누를 까서 넣어두는 걸 좋아하셨다. 양말 한 짝도 대충 넣는 법이 없이 윤이 나도록 매만져서 반듯하고 정갈하게 정리정돈을 하셨다. 세탁한 빨래는 적당히 말랐을 때 걷어 구김을 펴고 손닿는 곳에 늘 걸레를 두고 닦고 또 닦으셨다. 골목 어귀에 버려지는 불법 쓰레기를 늘 손수 치우셨고 집 앞은 물론 길 가에 버려진 휴지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셨다. 그랬던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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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2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짠합니다.
할머니 빨리 회복하시길 바랄게요.

겨울 2005-10-2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쉬이 일어나질 못하시네요.

로드무비 2005-10-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가 있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