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견에 물려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저절로 떠오르는 상상에 몸서리를 친다.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얼마나 엄마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렀을까. 이웃과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는 너무도 어이없게 생명을 잃었다. 있어선 안될 일이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대책을 세워 죽은 아이의 넋을 달래야할까. 어떤 말로 용서를 빌어야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는 안전하고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안도하리라. 이웃의 누군가 병으로 혹은 굶주림에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서둘러 내 집의 대문을 더 단단히 걸어 잠그는 것, 내가 왜 그런 사람들과 내 가족을 동일시하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진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없음을 열거한다. 몇 십만 원짜리 과외비용으로 재능보다는 욕심이 앞서는 학원비용으로 턱없이 많은 돈을 봉투에 넣어 갖다 바치면서도 이웃의 굶주림을 경멸한다. 보고 듣는 것조차 싫어한다. 동정하고 연민하는 마음자체를 차단한다. 계급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옆이나 아래가 아닌 위를 보고 사는 법을 우러르게 되었을까. 그런 삶의 방식만이 발전과 성공의 열쇠라고 인지시켰을까. 더 나은, 더 잘난, 계급과 부자를 목표로 비인간적인 속물화가 되어가는 결코 악인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들을 보노라면 입맛이 쓰다. 우울하다.


p.s. 며칠 전에 길을 가다 검은색의 커다란 개와 마주쳤다. 목줄을 질질 끌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모양이 영 불안했다.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딴 곳을 보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개와 지나쳤다. 그 순간의 공포감이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작고 귀여운 애완견을 보면 예쁘다고 탄성을 지르며 만지작거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작고 귀여운 것에 인간은 약하다. 그러나 이빨을 드러낸 도사견, 소위 사냥개 종류는 다르다. 그 주인이 아무리 이 개는 순해서 짖지도 물지도 않는다고 해봤자 친근하지 않은 낯선 동물과 일대 일로 맞서는 당사자는 공포에 질린다. 한번은 조카아이들이 놀러왔다가 대문을 나서는데 이웃집의 아저씨가 커다란 개를 풀어놓고 세차를 하고 계셨다. 아이들이 놀라 내 뒤로 숨자 아저씨 웃으며 하는 말, 안 물어. 나는 화가 나서 주인을 안무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보다 작은 아이들을 물지 않으리란 보장을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를 쳤다. 아무리 길들여진 개라해도 동물이고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열이 뻗쳐서 쏘아붙였다. 그러니 그렇게 웃으며 가볍게 얘기하지 말고 빨리 개를 데리고 들어가시라고. 그 뒤로 그 아저씨를 보아도 예사로 보이질 않았다. 어른 몸통만한 개를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인도를 활보하는 인간을 만나도 그렇다. 납작 엎드려있지 않는 이상 그들은 어린아이들에겐 무시무시한 괴물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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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1-1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뉴스를 보고 얼마나 끔찍했던지.......ㅠ.ㅠ

hnine 2005-11-15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기사를 대할때마다 아이의 울부짖음이 들리는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이런 일이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겨울 2005-11-1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존엄같은 건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방임과 유기였어요. 그 가족에게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해도 아이에겐 너무 가혹한 환경이었어요.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타인보다도 더 잔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