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불길하고 꺼림칙한 것. 하등하고 기괴하여 흔한 동식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여겨지는 것. 예로부터 사람들은 그 이형의 무리에 대해 두려움을 품어왔고 언제부턴가 이들을 한데 묶어 '벌레'라 칭하게 되었다.

오, 놀라워라. 이제 겨우 1권을 읽었을 뿐인데 묘하고도 묘한 만화다. 어째서 이런 만화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충사, 벌레를 다스리는 인간? 아니 벌레의 생성과 소멸에 박식한 인간이려나? 물론 여기서의 벌레는 현실에 실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망상 혹은 몽상에 있을 법한 벌레와 그 벌레와의 기생 혹은 침입으로 병든 인간을 찾아다니며 치유하고 다스리는 충사의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이야기에 더위가 한발 물러선다. 충사라 불리는 킹코라는 인물의 성격은 잘 모르겠다. 이야기마다 슬쩍 끼어들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변인으로 서다. 만화로의 몰입을 유도하는 것은 짧은 얘기 속의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기괴한 운명에 놓여져 있는 천진난만에 가까운 무표정의 어린아이를 보면서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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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1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세주판으로 4권까지 있잖습니까...ㅠ.ㅠ 어쩌자고 세주는 망해가지고~
이거 1년에 한권씩 나오는 책이예에요... 근데, 넘 재밌죠?

겨울 2005-07-2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날개님은 갖고 계시군요. 5권도 곧 나올 거래요.^^ 이런 책은 후다닥 읽어치우기가 아까워서 부러 느리게 읽어요. 4권까지 읽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지난 주 토요일에 아빠의 60회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모였다. 환갑잔치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격식을 갖추자는 올케언니의 제안을 소박한 가족모임으로 끝내자고 고집을 부려 그렇게 했다. 멀리 있는 아들 며느리, 딸들과 손자 손녀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1박 2일은 나름대로 즐겁고 의미가 있었다. 다음날, 부모님은 가축들 때문에 아침 일찍 시골로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하루를 더 묵어가기로 했다. 진작부터 할머니를 모시고 영정사진을 찍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터다. 하늘은 우중충 비는 부슬부슬 내렸지만 꼬마 아이들 넷과 오빠와 언니, 여동생 내외와 함께 집을 나섰다. 먼저 미장원으로 가서 할머니의 머리를 다듬고, 신발가게에 들러 가볍고 예쁜 운동화도 사서 신겨드렸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진관들이 문을 닫아서 발품을 팔아 겨우 열려있는 곳을 찾아 들었다. 넓은 스튜디오가 인상적이고 사진을 찍어줄 젊은 청년의 예의바른 모습도 맘에 들었다. 가능한 밝고 환한 모습으로 찍어주세요, 라고 주문했지만 그게 어찌 마음대로 되는 건가. 누구라도 번쩍하는 사진기 앞에만 서면 굳어지게 마련인데 낯선 환경에 정신이 없으신지 할머니의 표정은 내내 어둡고 지쳐 보였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힘겹게 사진사의 분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노력하셨다.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데 눈시울이 뜨거웠다.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사진관에 들리는 일 같은 거 정말 하기 싫었는데, 웃어야할 하등의 이유도 없이 웃으라고 요구하는 손자와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앉아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점점 서글퍼졌다. 아들도 며느리도 없는 박복한 팔자였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있어 할머니는 행복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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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셨을겁니다.. 틀림없이~ ^^

잉크냄새 2005-07-15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셨을겁니다.
 

 

요즈음, 식욕이 뚝 떨어져 체력이 바닥을 긴다. 충분히 잠을 자도 몸이 개운하기는커녕 물 먹는 하마마냥 무겁다. 주변에서는 그 원인이 고기를 먹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딱히 채식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육식을 즐기지 않았고, 의식 중에도 육식을 피하다보니 막강한 단백질원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남들처럼 맛있다, 하면서 먹어주기만 하면 좋으련만 조리 전의 피가 뚝뚝 흐르는 생고기를 눈으로 목격이라도 할라치면 입맛이 싹 돌아서 버린다. 익힌 상태의 고기야 그럭저럭 먹는데, 그것도 모여서 떠들고 먹는 거 귀찮아서 싫고. 무신경하게 배불리만 먹으면 될 걸, 이 놈의 의식이 문제다. 먹는 것 앞에 두고 생각 많고 말 많은 인간치고 잘 사는 것 못 봤다. 나이 먹으며 믿을 건 건강이라고 이구동성 말하는데, 와락 위기감이 닥친다. 그래서 세운 대책이 아침마다 500ml 우유 한 팩을 들입다 붓는 것이다. 그게 마치 보약이나 생명 줄이라도 되는 듯 평소 거들떠도 안 보던 500짜리를 벌컥벌컥 잘도 마신다. 살아보겠다고, 죽지 않고 살겠다고 정신을 채찍질하는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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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0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기운내시기를...

겨울 2005-07-1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엄살입니다.
 
붉은 포대기
공선옥 지음 / 삼신각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 읽기가 즐거운 건 그것이 현실과 무관하다는 이유도 있다. 오래된 상처나 기억, 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소설과 마주치면 천리 밖으로 도망갈 준비부터 한다. 공선옥의 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을 읽었을 때가 딱 그랬다. 아, 어찌나 싫은지 공선옥과 비슷한 이름만 봐도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흑과 백이 분명하고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한번 싫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번복하는 법이 없었던 고집과 치기는 삶에서 결코 플러스 요소가 아니었다.


‘붉은 포대기’는 내가 읽은 공선옥의 두 번째 소설이다. 가족 이야기다. 상처를 주고받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다. 십년도 전에 품었던 작가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소설이다.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인혜는 엄마의 위암 발병과 수술 후의 병구완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 권위적이고 무신경한 아버지와 치매와 걸린 할머니 그리고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는 동생 수혜가 기다리는 고향이 죽도록 그리웠을 리도 없거니와 무엇 하나 좋은 기억이라곤 없는 고향집이지만 아픈 엄마를 외면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온 것이다.


인혜의 유년은 쓸쓸한 회색이다. 영매는 언제나 전처의 자식들인 태건과 명혜를 챙기느라 제 뱃속으로 난 태준과 인혜, 수혜는 뒷전이었다. 그것이 뱃속의 아기를 거두어준 희조에 대한 영매의 은혜갚음이었을 지는 몰라도 어린 자식들에게는 지독한 외면이고 상처가 되었다. 낳아준 엄마가 있고 길러 준 아버지가 있었지만 언제나 버림받은 듯 외롭게 자랐을 인혜가 가여워 무엇으로든 보상받기를 바라지만 소설은 현실만큼이나 정직하다. 궁핍했던 대학생활, 연애, 그리고 실연으로 점점 행복과는 멀어지더니, 도피처럼 유학을 결심하는 와중에 이번에는 덜컥 엄마가 앓아눕는다. 여기서 제 자신만 아는 딸이라면 그걸 왜 내가 하면서 잽싸게 도망을 갔을까. 그런 선택이 가능할까.


이 소설 속에서 남자들이란 참 비루하고도 졸렬한 존재들이다. 연애가 끝났을 뿐이라며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뻔뻔한 윤호가 그렇고, 제 탓인 줄은 모르고 일생을 아버지 탓, 엄마 탓, 마누라 탓을 하는 태준이 그렇고, 권위적이고 이기적일 뿐 아내와 자식들에게 진심을 다한 애정과 이해를 주지 않는 희조가 그렇다. 또, 꽃 같은 수혜를 임신시키고 책임짐 없이 사라진 남자가 그렇다. 이런 남자들을 낳아 놓고도 어머니들은 미역국을 먹었으려나.


입이 아프도록 떠들어도 늘 할 말이 많은 게 가족 그리고 상처에 대한 거다. 원망이 푸념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참았다가 어느 순간 작정한 듯 쏟아내고는 또 한동안은 죽은 듯이 사는 거. 아무리 죽이고 싶도록 미워도 돌아서면 부모고 형제라고 가슴 아파하는 가족이란 굴레는 평생 짊어지고 가는 굴레다.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이 사치일 것만 같은 절박함과 곤궁함으로 둘러싸인 황씨네의 가족사를 들여다봐도 저마다의 선택과 행동은 당시에는  최선을 다함 결과였음을 알 수가 있다. 결국 미운 건 죄지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영매의 죽음과 화해에 이르렀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떠올렸다. 거짓 곡을 하는 낭창한 소리에 섞여 한 쪽에서는 해묵은 말싸움으로 점점 언성이 높아가고, 다른 쪽에서는 간만에 만나는 사촌이며 오촌들이 주고받는 인사와 걸쭉한 농담으로 질펀한 웃음판이 벌어졌던,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권하고, 음식을 내오고,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다는 근원이 모호한 충고와 서운함이 오갔던 곳. 그러면서 곡소리는 계속 들려와 누군가 죽었다는 걸 간간히 확인 시키는 곳. 거기에 죽은 사람이 낄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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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7-1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할머니의 장례식이 생각나네요.
서울에서 후배가 봉투 몇 개를 걷어 조문을 왔는데
엄청 취해버렸지요.
긴 이야기 생략.;;

겨울 2005-07-1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로드무비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지요.^^
 

 

종일 비 오시는 날, 비 맞으며 할까 생각하던 피사리를 오늘 서둘러 했습니다.

다 못하고 지쳐서 나와 논둑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람 손이 닿은 곳은 한결 깨

해졌습니다.

벼를 거들고 잡초는 솎아버리는 이 일을 하면서 언제나 미안한 건 잡초도 엄연

한 생명이기 때문일 겁니다.

무논에서 심지 않아도 뿌리내리고 자리 잡아 자라는 생명들도 논의 주인이긴

합니다. 사람의 기준에 들지 못해 간단히 뿌리 뽑히는 잡풀들에서, 세상에서 뿌

리 뽑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눈에 들지 못해서, 이제 쓸모가 다해서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들이 자

꾸 많아집니다. p 127

 

어머니가 생각난다. 종일 너른 논을 누비며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피를 뽑으셨지.

어린 내 눈에는 벼인지 피인지 구분이 안가서 대충 어림잡아 뽑아들고 논 밖으로 휙 휙 던져놓고는 잘했다는 칭찬받기를  기다렸지. 아무리 설명을 듣고 또 들어도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는 쉽지 않았지. 아마도 멀쩡한 벼를 더 많이 뽑았을 텐데,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만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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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7-0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문신은 불행한 사람들의 가난한 그림이라는 신영복 교수님의 글귀가 겹쳐 떠오르네요.

로드무비 2005-07-1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의 눈에 들지 못해서, 쓸모가 다해서......
쓰라린 현실이죠.

겨울 2005-07-1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다투어 읽어치울 책이 아니기에 몇 개의 글들을 옮겨 적기를 했더니, 제대로 의미가 다가왔습니다.

아내가 오이 한 소쿠리 따오면서 방울토마토 몇 알 곁드려 왔다.
- 벌써 익었어요?
- 달다!
그렇게 자연은 쉼없다.
심은 수고는 잠깐이었는데 키워내는 긴 수고는 언제나 하늘의 몫이다.
오이 푸르고, 토마토 붉은 여름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