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 오시는 날, 비 맞으며 할까 생각하던 피사리를 오늘 서둘러 했습니다.

다 못하고 지쳐서 나와 논둑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람 손이 닿은 곳은 한결 깨

해졌습니다.

벼를 거들고 잡초는 솎아버리는 이 일을 하면서 언제나 미안한 건 잡초도 엄연

한 생명이기 때문일 겁니다.

무논에서 심지 않아도 뿌리내리고 자리 잡아 자라는 생명들도 논의 주인이긴

합니다. 사람의 기준에 들지 못해 간단히 뿌리 뽑히는 잡풀들에서, 세상에서 뿌

리 뽑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눈에 들지 못해서, 이제 쓸모가 다해서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들이 자

꾸 많아집니다. p 127

 

어머니가 생각난다. 종일 너른 논을 누비며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피를 뽑으셨지.

어린 내 눈에는 벼인지 피인지 구분이 안가서 대충 어림잡아 뽑아들고 논 밖으로 휙 휙 던져놓고는 잘했다는 칭찬받기를  기다렸지. 아무리 설명을 듣고 또 들어도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는 쉽지 않았지. 아마도 멀쩡한 벼를 더 많이 뽑았을 텐데,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만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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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7-0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문신은 불행한 사람들의 가난한 그림이라는 신영복 교수님의 글귀가 겹쳐 떠오르네요.

로드무비 2005-07-1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의 눈에 들지 못해서, 쓸모가 다해서......
쓰라린 현실이죠.

겨울 2005-07-1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다투어 읽어치울 책이 아니기에 몇 개의 글들을 옮겨 적기를 했더니, 제대로 의미가 다가왔습니다.

아내가 오이 한 소쿠리 따오면서 방울토마토 몇 알 곁드려 왔다.
- 벌써 익었어요?
- 달다!
그렇게 자연은 쉼없다.
심은 수고는 잠깐이었는데 키워내는 긴 수고는 언제나 하늘의 몫이다.
오이 푸르고, 토마토 붉은 여름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