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 오시는 날, 비 맞으며 할까 생각하던 피사리를 오늘 서둘러 했습니다.
다 못하고 지쳐서 나와 논둑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람 손이 닿은 곳은 한결 깨
해졌습니다.
벼를 거들고 잡초는 솎아버리는 이 일을 하면서 언제나 미안한 건 잡초도 엄연
한 생명이기 때문일 겁니다.
무논에서 심지 않아도 뿌리내리고 자리 잡아 자라는 생명들도 논의 주인이긴
합니다. 사람의 기준에 들지 못해 간단히 뿌리 뽑히는 잡풀들에서, 세상에서 뿌
리 뽑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눈에 들지 못해서, 이제 쓸모가 다해서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들이 자
꾸 많아집니다. p 127
어머니가 생각난다. 종일 너른 논을 누비며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피를 뽑으셨지.
어린 내 눈에는 벼인지 피인지 구분이 안가서 대충 어림잡아 뽑아들고 논 밖으로 휙 휙 던져놓고는 잘했다는 칭찬받기를 기다렸지. 아무리 설명을 듣고 또 들어도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는 쉽지 않았지. 아마도 멀쩡한 벼를 더 많이 뽑았을 텐데,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만 받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