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주택에서 여름나기란 상당히 곤혹스럽다. 어쩐지 장마 시작을 예고하는데 무섭더라니. 덜컥 예정에 없는 정전이다. 해마다 임시방편으로 그럭저럭 보냈는데 아마도 올해는 된통 걸렸나보다. 컴퓨터도 TV도 먹통, 일순 정신이 멍해진다. 빗소리만 점점 커진다. 옥상에서부터 흐르는 빗물이 홈통을 빠져나오는 소리가 어지간한 폭포수 저리가라다. 콸콸, 두두두, 떨어지고 흐르는 물소리에 잠은 깨다 들다 반복하고, 밤은 길기도 하다.
습기 머금은 풀과 나무는 하룻밤 사이 깊고 깊은 푸른 그늘을 만드느라 수선스럽다. 풀 뽑기를 그만둔 후로 뱀이라도 튀어나올 듯 하다는 동생의 불평에 구경이나 해보자고 큰소리는 쳤지만 상상만으로 오싹하다. 예전 시골에 살 때는 돌담을 타고 뱀이 스며드는 광경을 종종 목격했었다. 어른들은 집을 지키는 영물이라고 두꺼비나 뱀을 신성시했다. 그러한 뱀과 두꺼비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이 머물지 못하는 땅에서 사람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테이블마다 촛불이 춤춘다. 초록색, 분홍색, 하얀색의 초는 저마다의 향기를 가지고, 열린 창으로 스민 바람에 갈팡질팡 흔들리고, 생각난 듯 울어댄다. 제 키가 줄어드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운다. 그렇게 울어본 적이 나는 까마득한데. 늘 밤이 너무 짧다고 불평했더니, 그래서 덜컥 미치도록 긴 밤을 선물하였나. 덜컹거리는 창문과 너울대는 커튼에 자꾸만 잠이 달아난다. 아무래도 밤을 꼴딱 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