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사는 동네엔 유난히도 능소화가 지천이다. 색과 모양이 고고하고 화사하기가 이를 데 없어 그 이름을 몰랐던 때는 요사스럽기까지 하더니, 오며가며 늘상 봐서인지 꽃단장한 처녀처럼 얌전해 보인다. 사실 능소화는 간혹 소설에서나 이름을 듣던 귀한 꽃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와 그 흔하디흔함을 알고는 문득 속았구나 싶었었다. 옛날에는 양반 댁에서나 볼 수 있어 양반꽃이라 불렀다나 뭐라나. 하긴 시골에서야 천지사방으로 야생화가 계절별로 피고 지었으니 울안에 가둔 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여름 장마 올 즈음에 맞춰 제 몸을 불사르듯 피워 올리는 능소화의 꽃잎은 고운 염색을 한 색종이처럼 비현실적이다. 아침이면 줄기에서 떨어진 꽃이 밭을 이루어 길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기어이 몇 송이를 주워 들게 된다. 투명한 유리컵에도 꽂아보고, 두꺼운 책 속에도 묻어 두고, 아무데나 보이는 곳에 올려놓고 그 질긴 생명력이 수그러드는 것을 지켜본다. 그렇게 곱던 잎이 빛을 바래는 모습은 씁쓸하고 허무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다시 발길을 멈추고 능소화나무 아래 섰다. 여전히 눈부시고, 지는 꽃만큼 또 다른 꽃이 피었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들과의 조우를 무심히 바라보다, 또 몇 송이를 줍는다. . 오늘도 하루해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