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더움으로는 부족한 뜨거움이다. 햇볕이 쨍하다는 말이 제대로 어울린다. 하루 두 번은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넌다. 일광소독을 한답시고 이불이며 베개도 부지런히 내놨다 들였다 한다. 약간의 노동 후엔 여지없이 샤워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운 물을 뿌리면 조금은 살 것 같다.

 

한낮의 외출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뜨겁게 달궈진 길 위로 한발을 내딛는 망설임은 흙을 밟고픈 욕망을 부추긴다. 선크림에 모자에 양산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비장한 얼굴로 목적한 곳을 향하는 내 자신이 마치 전투에 임하는 군인 같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이렇듯 한 낮에, 내 생애 가장 센 노출패션으로 집들과 상점과 사람들을 지나 거리로 나섰던 일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아침 아니면 저녁, 밤의 거리에 익숙하다가 낮의 눈이 부시도록 환함은 아찔할 지경이다.

 

그러나 타는 여름 따위의 한가로운 감상에 젖을 수 있는 것도 노는 인간만이 누리는 혜택임을 안다. 이 더위 속에서 죽을 정도의 고통을 견디며 일을 해야만 사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게으른 유희겠는가. 부지런한 노동의 흐르는 땀을 모르고서는 더움을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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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10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이에요..;;;

파란여우 2006-08-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센 노출패션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프레이야 2006-08-1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가 지는 시각이면 미치겠어요. 바다로 가고 싶어서요^^ 아까 낮에 너무 더워 선풍기 틀어놓고 침대에서 딩굴고 있는데 베란다 창밖으로 로프에 매달려 아파트벽 크렉보수작업 하시는 아저씨가 이리저리 타잔처럼 줄을 타고 있었어요. 헉, 거의 벗고 있었던 수준의 제 옷을 생각하고 깜짝 놀랐는데요..ㅎㅎ 그것보다 저분 얼마나 더울까 생각하니 덥다는 생각이 가시더군요^^

겨울 2006-08-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디카 사신 거 축하드려요.^^

파란여우님, 제가요, 어지간한 더위에는 긴팔 옷을 입는 인간이었어요. 소매없는 옷을 입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정도로요. 근데 올해는 체력이 딸려서인지 그만큼 더워서인지 나시로도 부족해서 하늘하늘 속살이 비치는 옷만 찾아지네요.^^
그나저나 건강하시죠? 건강하셔야해요.

혜경님, 바다는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도 즐거워요. 이 계절의 피서지로써의 바다 말고 멋진 그림이나 사진들 속의 바다요.^^ 저도 종일 뒹굴뒹굴 덥다고 푸념을 하다가 비오듯 땀을 쏟으며 일하는 그들이 떠올랐어요. 살기 위한 고통스런 노동의 과정을 가지고 가치니 성스러움이니를 말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지요.
 

 

할 수 없는 이유를 대지 말고 가능한 일부터 시작하기. 고민을 끝내면서 내린 결론이다. 원래 섬세한 계획과는 무관한 즉흥적 인간이다. 거창한 인생관 따위까지 들어갈 것도 없다. 당장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이유는 수두룩하니까. 책임을 전가하고 외면하는 방식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망설이는 것과 그 누구도 선선이 짐을 지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은 일맥상통한다.


등에서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 수없이 많던 갈림길 중에 하나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이 편하다고 일생 그 길만을 걸을 수는 없다. 첫 발을 내 디뎠으니 뒤로 돌아가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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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5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보면 제가 뒤에서 노려보고 있을 겁니다. 돌아보지 마셔요.

잉크냄새 2006-07-26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갈래길중 익숙치 않은 길, 그 길이 눈부시게 보이는 날이 있겠죠.
 

 

지루한 장마 끝에 비춘 햇살이 마치 단비와 같다. 어제부터 시작한 빨래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지금 마당엔 빨래가 너울너울 춤춘다.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은 빈틈을 찾을 수가 없다. 방에서 혹은 거실 창문으로 무겁던 빨래가 점점 말라서 가벼워지는 모양을 보는 기쁨이란.


빨래는 또 오래된 주택의 남루함을 말끔히 앗아간다. 흰 빨래 사이에 낀 원색의 셔츠는 활짝 핀 꽃과 같이 그 향이 길고, 세제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종일 집안 구석구석을 맴돈다. 사실, 오늘처럼 햇빛 좋은 날은 표백제도 따로 필요가 없다. 아니, 어쩌면 마음의 얼룩까지도 말끔히 지워질 듯하다.


여름, 햇살 그리고 빨래로 충만한 오후. 낮잠 보다는 책읽기가 좋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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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2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래 해서 햇볕에 널어두면 기분이 참 좋아져요. 흰색 사이사이로 원색의 옷감이 있으면 더욱 아름다운 광경이 그려지네요. 냄새도 향기롭구요.. 우울과몽상님, 올만이에요^^ 반가워서 달려왔네요^^

겨울 2006-07-24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잘 지내셨나요? 장마 끝 햇살만큼 반가운 손님이 또 있을까요? 이제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같아요. 활기찬 날들 되시기를^^
 

 

목욕은 역시 힘들다.

욕실은 좁고, 할머니의 몸은 길고, 내 팔뚝은 가늘어서(?) 진땀을 흘리는 고된 노동이다. 오래된 옛날식 주택이라 방에서 욕실까지의 여정도 험난하다. 곳곳에 있는 턱과 좁은 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결국은 해내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저녁 식탁을 차려 놓으니 밥그릇을 유심히 살피시던 할머니, "요기를 쥐가 파 먹었냐?" 그러신다. 가만히 보니 살살 퍼 올린 밥의 모양이 찌그러졌다. 그럴리가, 하면서 웃었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치매 노인 대개가 그럴듯 할머니도 유난히 식사에 집착을 하신다. 밥의 적고 많음, 때의 구분도 흐리고 먹고 나서도 늘 모자란 듯 아쉬워 하신다. 그러면서도 할머니의 그릇보다 확연히 적은 내 그릇을 보시곤 더 줄까, 하신다. 아니라고 할머니 다 드셔야 한다고 하니, "목욕을 했으니 많이 먹어야지?" 하시는데 귀여워서 웃음이.

사실 할머니와 있다보면 웃음 보다는 화낼 일이 더 많다. 사소하지만 반복하면 병적인 몇몇 행동들이 좀 오래 눈을 떼고 있으면 드러난다. 막 뭐라하면 변명을 하시면서 안 하는 척 굴다가 또 그러고. 야단치고 야단맞는 걸 즐기시는 건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재미가 나시는 건지. 특이한 건 나와의 자잘한 다툼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치매 특유의 엉뚱한 말도 덜하고 우울해 보이지도 않는다. 병원에 있을 때는 환각이나 환청을 보고 들어 사람을 기막히게 만들더니, 집에 돌아와서는 그런 부분들이 확 줄었다. 

무계획으로 덜컥 퇴원을 했고, 거처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생집에서 그리고 여기로 모셔왔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없고 일단은 할머니의 상태를 지켜보자는 생각 뿐이다. 어짜피 가족 중 누군가는 해야만할 일이다. 선뜻 나서서 하겠다 하지 않는데 하라고 떠밀 수는 없는 일이다. 부모님은 어디든 시설에 맡겨야한다는 생각이시고, 나는 징그러울 정도로 할머니가 밉고 싫어진다면 모를까 맨정신으로 타인의 손에 건네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씀드렸다. 

아직은 여기까지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다. 생각하면 근심으로 불면이다. 할머니의 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일도 만사형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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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적응을 못하는 할머니가 가여워 동생과 단둘이 합의하여 퇴원을 한 이후, 엄마나 아빠의 태도는 이후의 일은  모른다는 식이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병에 대해서 무조건 겁부터 집어먹는 사람들이니 길게 얘기해서 득 될 것도 없다. 동생 집에서 열흘, 그리고 집으로 모셔와 닷새째다. 하루가 한달마냥 길어 달력을 확인한 후 겨우 닷새라서 놀랍다.

 

할머니의 상태는 생각 외로 양호한 편이다. 동생 집에서도 병원에서의 상태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살던 곳이라서 그런지 성격적으로 부딪쳐 싸우는 것 말고는 훨씬 좋아졌다. 일단 이상 행동이나 말이 줄었고 기억력이나 정신도 맑다. 아침과 저녁으로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으니 그 효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초기 때를 떠올리면 눈물겨운 발전이다.

 

담당의사의 소견대로 퇴원을 미루고 계속 치료(?)라는 것을 받았다면 어찌됐을까. 할머니는 6인실의 1인 간병인 제도의 입원을 못 견뎌하셨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의 입원기간 동안 동생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들락거리며 면회시간 이후 집으로 돌아오며 할머니의 가지 말라는 간청을 외면하는 쓰라림에 과연 이런 식의 치료가 최선인가를 끊임없이 반문했고 의사와 면담을 했다.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 초기다. 우린 극단적인 치료방법이 아닌 적절한 약물치료와 가족의 간병을 원했는데, 담당의는 병원에 대하여 내보이는 할머니의 적의자체도 치매의 증상으로 포함시켜 심한 경우 손발을 묶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의사의 전문적인 지식이 절대적이라 할지라도 할머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가족이다.

가족과 떨어져 받는 치료는 할머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의견은 거의 묵살되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같은 병실의 환자들과의 동거 및 그들의 이상행동과 말도 싫어하셨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란 할머니의 뇌가 병들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미 복구가 불가능하게 손상되었다. 할머니의 어린애 같은 짜증, 푸념, 투정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는 가족뿐이고, 그것을 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의지 상실뿐이며, 병실에서 겪어 본 다른 노인 분들을 봤을 때,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불편하고 상시 기저귀를 착용하고, 식사도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할머니는 상당한 고령의 환자임에도 요의를 느낄 때마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침상에서 기어내려 오셨는데, 환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간병인은 기저귀 착용을 의무화했다. 만일 병원생활이 오래 지속된다면 할머니는 침상에서 꼼짝도 못하고 대소변을 기저귀로 처리하는 중증의 환자가 되고 말 것은 자명했다. 

 

할머니의 옆 침상에 계셨던 분은 간병인이 성의 없이 하의를 벗기는 것을 의사표현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거부하셨다. 주변에 다른 가족이 있거나 말거나 간병인은 거침없이 할머니들의 하체를 발가벗기고 기저귀만을 찬 채로 방치하기 일쑤였다. 필사적으로 윗도리를 끌어내시며 아래를 가리려 애쓰는 그 분을 봤을 때 암담했다. 병원의 방침, 간병인의 부족 등을 고려한다 해도 수치심을 느끼는 동안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며 학대로 보여 졌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방치가 부른 결과지만, 요구사항이 없는 환자를 선호한다는 어느 간병인의 솔직한 생각에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물 덜 마시는 환자 그래서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않아도 되는 환자를 좋아하는 게 그곳의 현실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 안심할 만한 처우를 기대하지 못하는 건 불행이다. 재미있는 건 이 지역에서 최고의 서비스와 시설을 자랑한다는 병원 측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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