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은 역시 힘들다.

욕실은 좁고, 할머니의 몸은 길고, 내 팔뚝은 가늘어서(?) 진땀을 흘리는 고된 노동이다. 오래된 옛날식 주택이라 방에서 욕실까지의 여정도 험난하다. 곳곳에 있는 턱과 좁은 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결국은 해내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저녁 식탁을 차려 놓으니 밥그릇을 유심히 살피시던 할머니, "요기를 쥐가 파 먹었냐?" 그러신다. 가만히 보니 살살 퍼 올린 밥의 모양이 찌그러졌다. 그럴리가, 하면서 웃었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치매 노인 대개가 그럴듯 할머니도 유난히 식사에 집착을 하신다. 밥의 적고 많음, 때의 구분도 흐리고 먹고 나서도 늘 모자란 듯 아쉬워 하신다. 그러면서도 할머니의 그릇보다 확연히 적은 내 그릇을 보시곤 더 줄까, 하신다. 아니라고 할머니 다 드셔야 한다고 하니, "목욕을 했으니 많이 먹어야지?" 하시는데 귀여워서 웃음이.

사실 할머니와 있다보면 웃음 보다는 화낼 일이 더 많다. 사소하지만 반복하면 병적인 몇몇 행동들이 좀 오래 눈을 떼고 있으면 드러난다. 막 뭐라하면 변명을 하시면서 안 하는 척 굴다가 또 그러고. 야단치고 야단맞는 걸 즐기시는 건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재미가 나시는 건지. 특이한 건 나와의 자잘한 다툼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치매 특유의 엉뚱한 말도 덜하고 우울해 보이지도 않는다. 병원에 있을 때는 환각이나 환청을 보고 들어 사람을 기막히게 만들더니, 집에 돌아와서는 그런 부분들이 확 줄었다. 

무계획으로 덜컥 퇴원을 했고, 거처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생집에서 그리고 여기로 모셔왔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없고 일단은 할머니의 상태를 지켜보자는 생각 뿐이다. 어짜피 가족 중 누군가는 해야만할 일이다. 선뜻 나서서 하겠다 하지 않는데 하라고 떠밀 수는 없는 일이다. 부모님은 어디든 시설에 맡겨야한다는 생각이시고, 나는 징그러울 정도로 할머니가 밉고 싫어진다면 모를까 맨정신으로 타인의 손에 건네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씀드렸다. 

아직은 여기까지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다. 생각하면 근심으로 불면이다. 할머니의 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일도 만사형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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