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누구보다 씩씩해
카트린 스티어 지음, 알렉산더 바일러 그림, 김서정 옮김 / 토마토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어린아이였을 때, 내 꿈은 척척박사가 되는 것이었다.
집에 있던 <척척박사>라는 제목의 네 권짜리 책은 어린이 도서 답지 않게 작은 글씨와 가득한 내용을 뽐냈고, 그 책을 뽑아들으면 한 장을 채 읽기 힘들어도 마냥 내가 척척박사가 된 냥 뿌듯했다.
난 "뭐가 될꺼야?"란 어른들의 물음에 늘, 척척박사요! 라고 대답했고 그런 내 대답에 어른들은 늘 씨익 웃으셨다.
그런 기억은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어떤 존재로 인해 내가 정말 무언가가 된듯한 기분. 비록 그것이 내가 이루기 힘든 것이어도 말이다.
내게 척척박사가 되는 마법의 책인 <척척박사>가 있었다면 야콥에겐 아빠가 주신 빨간모자가 있다.
친구들에게 치이고 용기없는 나약한 어린이였던 야콥이 토끼가 그려진 이불을 잔뜩 덮어쓰고 자고 있는 사이 아빠가 돌아오신다.
아빠에게 할 말이 산더미 같이 많았지만 아빠는 내일 듣자고 하시며 이 빨간모자를 주셨다.
그것도 진짜 자동차 경주용 모자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빨간 모자는 마법의 모자다.
이 모자만 쓰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야콥이 탈 차례에 야콥을 휙 밀어버리던 반 친구도 이제 무섭지 않다.
내 곰돌이 인형을 내가 학교 가 있는 동안엔 동생에게 양보할 수도 있다.
음악시간엔 씩씩하게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를 수 있다.
너무 멋지기만 한 빨간 안경을 쓴 친구를 놀려주는 아이들 앞에서 친구를 구해줄 수도 있다.
내겐 빨간 모자가 있으니까.
씩씩하게 치과 치료를 받고 겁먹은 엄마 손을 잡아주며 엄마에게 빨간모자를 빌려준다.
숙제 때문에 끙끙대고 있는 누나에게도 빨간모자를 빌려준다.
빨간 모자는 마법의 모자니까.
사실 빨간 모자는 마법의 모자가 아니다.
야콥이 스스로 용감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담긴 그냥 모자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빨간 모자는 진짜 마법의 모자일지도 모른다.
야콥이 스스로 용감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마법을 부른 모자.
야콥은 이제 사자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든다.
할 말 있댔지? 라며 다시 찾아온 아빠에게 피곤해요. 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게 모두 아빠가 준 빨간 모자 덕분이다.
누구나 커 가며, 힘이 되는 존재가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큰 존재이고 버팀목이지만, 영원히 받쳐줄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가 받쳐주고, 밀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위안은 아니다.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있게끔 해 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게끔 해 주는 것, 그것이 정말 아이에겐 마법 같은 일이 아닐까?
어느 날 사라져버린 내 <척척박사> 책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