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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책과 대면하며 씩 웃어보았다.
제법 사랑스런 제목의 책이었다.
이름도 너무 프랑스적인(뒤부아~ 뒤부아~하고 한 번 발음해보길.) 작가가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이라고.
신간이기에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정도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작가의 의도가 귀엽기만 했다.
그동안 지극히 프랑스적인 책만 써왔던 작가라고 들었다. 내가 이 작가를 만난 건, 한창 유명세를 탔던 이름까지도 프랑스적인 책 <프랑스적인 삶>은 아니었다. 우연히 내 손에 악수를 청한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라는 제목부터 유쾌한 책이었다.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를 읽으며 어느정도 그와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물론 각자의 문화라는 것이 있지만 해설엔 분명히 '너무도 프랑스 적인 유머'라고 써 있었고, 그 너무도 프랑스 적인 유머를 난 쉽게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런 작가가 이런 사랑스러운 제목의 책을 썼다니, 내용이 어찌되었건 작가는 프랑스적이지 못한 독자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니 작가의 의도가 귀엽게만 여겨졌다.
사실 이 책은 그동안 만나왔던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책들과 어느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갑자기 불운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닥치고 그런 불운의 연속 속에서 자신이 해오던 일에 대한 염증이 생기면 주인공은 무작정 떠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떠나서.
이 책 역시, 그런 스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들과 뭔가 다르다.
주인공 폴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가 무슨 일만 생기면 습관적으로 뱉는 아버지라는 핑계를 통해서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키우던 개도 죽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은 아니었다. 생식기는 여느 남자들같이 제 몫을 하지 못했고, 아내와 아내를 주축으로 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늘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직업적으로 하고 있는 글쓰기 역시 신통치 못했다. 아내와 이혼하고 내 삶이 24cm(그동안 써온 책을 쌓아놨을 때의 길이)였음을 알아내자 더 이상은 멈춰있던 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떠나는 것이다. 마음의 짐을 덜고 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 채 내 자신이 원하는데로 그렇게 달리다보니 어느 새 아버지의 죽음과 가까워져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제대로 보려할 수록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 이복누이, 잊고 있었던 더러운 숲.
그리고나서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했다는 더러운 숲을 통과함으로서. 나는 처음부터 숲을 통과하겠다고 생각하고 걷는 것이므로 통과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서. 여정이 순탄치 만은 않다. 하지만 쉰 가까이 나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털어버리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모든 자유에는 늘 그만큼의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성공한다. 그렇게 믿었으니까. 난 이길 수 있다고. 그리고 책을 쓰는 것이다. 모든 이들의 꿈의 여정을 이뤄냈으니,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어있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폴이 더러운 숲에서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는 동안 내 몸에도 생채기가 낫다.
그동안의 아픔, 슬픔, 고통들이 생채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빠져나오고 있었다. 자기를 찾아가는 폴의 여정은 개인적인 환경이 야기한 것이었지만, 사실 개인적인 사건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상처를 받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그 자리에 상처가 나고 또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가 나고 어느새 무감각해져서 무기력해진 생활 속에서 자신을 찾아야 하는 것은 폴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니까.
폴이 책을 다 썼다. 그리고 그 책은 지금 내 앞에 장폴 뒤부아라는 프랑스적인 이름의 작가가 쓴 책으로 놓여있다. 내 생채기를 호호 불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