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 에비앙
요시카와 도리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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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If it`s not fun, why do it?
 
     방송인 노홍철을 보고 있으면 그야 말로 혼이 쏙 빠진다. 따다다다 하고 있는 말을 듣고있으면 멍-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이 방송에서 보여지는 면 이외의 다른 모습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지는 면으로만 보자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에게 지어준 닉네임 그대로 돌+아이 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 사람의 좌우명이라는 If it`s not fun, why do it? 이란 말을 봤을 때 뭔가 꽝하는 기분이었다. 재미가 없다면 왜 하냐는 물음.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장래를 위해서는 답이 될 수 없어보였다. 내가 즐거운 일을 하겠다는 그의 좌우명은 조금은 태평하고 팔자 늘어진 소리같이 들리기도 했지만 나 역시 꿈꾸고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노홍철의 좌우명이 생각나게 하는 유쾌한 가족을 만났다.
     "재미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박해미의 오케이~가 생각나는 듯한 이 말을 핫짱의 엄마 아키는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사실 우리 상식으로는 이게 중학생인 딸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아키는 할 수 있다. 우리집은 남들하고 조금 다르니까 이런 소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젠 뭐든지 '일반적인'라는 말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와 버렸다. 가족 관계도 더 이상 부모 아래 자식이라는 일반적인 코드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일반적인 코드가 통하지 않는 시대라지만 이 가족, 조금은 엉뚱하다.
     태어났을 때 부터 아빠였지만 진짜 아빠도 아니고 호적상 아빠도 아닌 야구와 펑크족이었던 과거를 비비안 웨스트 우드로 감추는 엄마, 그리고 그런 가족 구성원에 비해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핫짱까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이 따로없다.
     아빠 역할을 하려고 하는 야구는 멍청하지, 제 멋대로이지, 썰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핫짱까지도 마음 깊이 친 딸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비비안 웨스트 우드로 지난 날을 감추며 가족을 먹여살리는 엄마 역시 뭔가 이상하다. 따질 것은 다 따지면서도 구두쇠 노릇을 하려고 하고 야구를 사랑하지만 야구와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엄마 역시 야구를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핫짱도 너무 깊이 사랑해 준다.
     평범해 보이는 핫짱도 절대 평범하지가 않다. 남들이었다면 조금 부끄러워 했을 가족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진짜 아빠가 아니면 어떻고, 펑크족이었던 엄마면 어떻냐는 말이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보듬어야 할 우리 '가족'인 것을.
 
     사랑으로 똘똘 뭉친 좌충우돌 요절복통 가족들이지만 단지 웃기기만 하고 콩가루만 날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내면을 살짝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로 뭉쳐있다. '가족'이라는 이름만 뒤집어 쓴 채, 진정한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 살아가는 요즘의 가족들과는 뭔가 다르다. 엄마는 야구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할까 결혼을 하지 않았고, 항상 핫짱의 선택을 존중해준다. 핫짱 역시 엄마와 야구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절대적인 신뢰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유쾌한 이 가족사를 들여다보며, 내 가족을 돌이켜 보게 된다. 우린 과연 이런 신뢰로 뭉쳐있는 가족인지. 바람잘 날 있는 가정이란 없다. 누구나 자기 가정만의 문제를 안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해가며 가족이란 결속력은 커져간다. 하지만 그 결속력에 절대적인 신뢰가 포함되는지는 의심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나 외에는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요즘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리고 사실 그 결속력도 날이 갈 수록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콩가루 가족이면 어떻고, 말도 안되는 가족이면 어떤가. 사실 이들이야 말로 우리보다 더 가족답고 진짜 가족이 아닌가 한다. 유쾌하면서도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하는 책을 만났다. 나도 야구처럼 밝게 책에 인사를 건낸다. 굿모 에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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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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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헤어진 여자가 내게 와 속삭였다. "카지노로 가자!"
     친한 친구가 내게 전화 해 물었다. "XX랜드나 갈까?"
     전자는 소설 속 이야기이고, 후자는 내 이야기이다. 갑자기 바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한동안 친한 친구에게 계속 푸념만 했었다. 힘들어. 지쳐. 나 좀 살려줘. 그러는 내게 그 친구가 말했다. "XX랜드나 갈까?"
     다행이었다. 난 도박이나 게임에는 영 소질이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러니 "먹고 죽을 돈도 없어."하고 그 말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고스톱도 못하는 내가 카지노는 무슨. 며칠 후 그 친구를 만나 XX랜드의 이야기를 들었다.
     "땡기러 가자고 한 놈은 다 잃고, 따라 간 놈은 돈 따고."
     그 순간 카지노의 세계란 왠지 마음을 비우고 들어간다면 행운을 거머 쥘 수도 있는 곳처럼 느껴진 것은 왜 였을까. 나 역시도 돈에 큰 욕심이 없으니 혹시나 그 친구를 따라갔다면 뭔가 빵하고 터졌을 것만 같은 생각.
 
     가독성이 훌륭한 작품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어차피 책이란 일종의 소비품이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독자가 읽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것이고, 이왕 읽을 것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읽는다면 좋지 아니한가 일 것이다. 하지만 점점 소설을 평가하는데 가독성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흐름일까, 어려운 출판계를 구원하기 위한 발버둥일까.
 
     소재 자체는 흥미롭다. 도박과 여자. 그 소재 자체만 봐서는 도박꾼의 야망과 사랑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도박꾼도 아니며 도박에 대한 야망도 없고 여자에 대한 사랑도 없다. 그저 어느 날 갑작스런 이혼한 첫사랑의 제안에 카지노로 가 별 욕심없이 도박을 하고 그 단절 된 세계 속에서 단편적인 만남을 가지며 그 첫사랑과 아무 일 없이 휴가를 마치고 헤어져 다시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이 남자 주인공의 너무나 재미없는 생활이다. 재미없는 생활이 오히려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이 모순같이 들릴 수는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 누구도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의사소통이 단절 된 세계, 그리고 자신의 게임에만 몰두하며 타인의 존재는 그저 무의미 해지는 세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슬롯머신과의 관계가 존재하는 세계, 카지노는 카지노가 아니라 우리의 현 세태를 축소해 놓은 작은 현실일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에 우리는 그 모습에 흥미를 갖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지만 위에서 가독성을 운운한 것은 내게는 이 소설이 매끄럽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지노를 통해 현 세태를 비판하며 슬롯머신을 당기는 것처럼 통계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은 탁월했다 할 수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의 원인은 사실 지금도 잘 알 수가 없다. 무언가 숨긴 채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다 드러내 놓고 까발리는 것을 더 선호하는 내 취향 탓인지, 혹은 도박과 여자라는 소재하면 떠오르는 식상한 전개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한방을 꿈꾸고 있다. 그 한방을 꿈꾸며 로또를 사고, 슬롯머신을 당긴다. 그 한방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있지만, 그 한방에 맞아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나마 귀에 들리면 왠지 내게도 그 희미한 비명이 나올 것 같이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또와 대화를 하고, 슬롯머신과 대화를 한다. 로또의 번호를 찍으며, 슬롯머신의 레바를 당기며 집 나간 아이들을 원망하고 바람 난 아내를 씹는다. 하지만 진정한 한방이란, 카지노의 확대판이 되어버린 이 세계 속에서 진정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만나고, 진정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어 줄 사람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가, 당신. 진정한 한방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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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진주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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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4teen>이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등의 책 소개를 통해 이시다 이라의 명성을 들어왔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그의 작품에 호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있었던 내게 처음 만난 그의 작품인 이 책은 기대 이하라고 해야겠다. <도쿄타워>를 연상시키는 이젠 신선하지 못한 소재와 판화기법이나 사요코의 의상에 맞춰지는 초점은 웬지 책을 읽는 내내 장애요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뭔가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는 책이라면 자신에게는 좋은 책이 아니겠냐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를 하기에 이 책은 그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내겐 좋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현재 배우고 있는 것 때문에 조금 색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내가 들었던 타인의 이야기가 겹쳐져 조금은 내가 원했던 생각이 반짝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내용이므로 그건 비밀이다!)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를 참 재밌게 봤던 생각이 났다. 물론 한국판의 제목이 조금 어이없긴 했지만, 금발은 멍청하다는 속설을 깨기 위해 멍청한 듯 하면서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답을 찾아나가는 엘 우드의 발랄함이 너무도 경쾌했다. 하지만 그 속편으로 나온 <금발이 너무해2>는 기대 이하였다. 1편의 내용을 넘어서지 못해 신선함도 떨어졌고, 엘 우드로 나온 리즈 위더스푼의 패션쇼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을 책에서 만났다면 조금 과장일까? 비주얼적인 요소가 큰 작용을 하는 영화와 독자의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소설에서 똑같이 주인공들이 패션쇼를 하는 듯한 생각이 들어 그 내용 전개를 방해했다면?
     비주얼적인 요소가 큰 영화에서는 의상이 인물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되겠지만 책에서도 과연 그러한가는 솔직히 더 의문이다. 대사나 상황을 통해 나타낼 수 있는 성격을 굳이 장면마다 바뀌는 의상 설명으로 나타내야 하는지. 최근에 의상에 대해 조금 관심이 짙어지며 그 장면을 더 눈여겨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쨋든 이 부분은 책을 읽는 내내 판화를 제작에 대한 전문용어와 함께 조금은 걸림돌이 되었다.
 
     작가가 남성이면서도 여자주인공의 심리를 너무 조곤조곤 말하고 있다는 데에서는 박수를 보낼만 하다. 갱년기의 여자가 겪어야 하는 내면적인 갈등과 그 내면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위치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남성이 그려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하지만 웬지 책을 읽는 내내 <도쿄타워>가 생각이 났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영화로까지 제작된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다. 과연 이들의 사랑은 행복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이기 때문에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자는 사요코와 모토키의 결론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들의 사랑을 이렇게 미화시키는 책, 드라마, 영화들이 요즘 연상녀 연하남 커플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시간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허구의 세계가 허구에서 그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냐만은, 가끔 허구는 현실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 세계로 툭툭 튀어나와 허구에서와 같지 않은 결말을 현실에 남겨놓고 떠나기 때문이다.
 
     어쨋든, 현실에서의 사랑은 현실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 남겨두고 사요코와 모토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앞으로의 시간이 걱정되는 그들이지만,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모든 것을 구원한다. 모토기는 검은 사요코를 하얀 사요코로 이끌며 보이지 않는 미래의 두려움을 구원해주고, 사요코는 모토키를 그가 돌아가야 할 세상으로 다시 이끌어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한다. 열 일곱살이라는 나이차이를 이겨내고 말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이란 건 참 대단한 것이다. 그 사랑이 단지 한 시기의 열망으로, 욕정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약간의 장애요소는 있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일본문학 특유의 그 소소한 감성은 때론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일본문학을 딱히 좋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 때 가볍게 읽음으로서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처음에 말했다싶이, 책의 장단점을 떠나 자기에게 남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그렇다면, 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긴 했지만 이 책 내게는 꽤 좋지 않았는가. 무거운 마음을 살짝 내려놓게도 했고, 새로운 생각도 들게 해주었고, 그리고 책을 만나는 내내 나도 한 번 이런 사랑을 꿈꾸게 하며 설레게도 해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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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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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자신의 인생이 있고, 모든 인생은 똑같다. 그 똑같은 인생에서 찾을 것인가 놓칠 것인가.

 
     지루하고 난해했다. 첫 부분만 세번 정도 정독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초반에 책에 몰입하기가 힘이 들었다. 꼭 책과 내가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을 타기 전 <내 이름은 빨강>을 1권의 반 정도 읽고 덮은 기억이 있지만, 이 책을 만나며 그 기억을 돌이켜 보건데 <내 이름은 빨강>은 매우 재미있는 책이었다. 단지 도서관에서 대여를 한 책이었기에 그 기한 내에 다 읽지 못하고 돌려줬던 것 뿐이었다. 이 책을 만나는 데에 참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난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작년 말, 오에 겐자부로의 <체인지링>이 날 참 힘들게 했었다. 하지만 책과의 만남을 끝내며 머릿 속으로 책을 정리했을 때 짠한 감동이 밀려왔었다. 오랫만에 느끼는 독서 후의 느린 감동이었다. 이 책 역시 힘겨운 만남을 가지며 독서 후에 천천히 그 감동이 밀려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책과의 만남을 끝내며 책을 정리하는 지금, 아직도 머리는 난해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르한 파묵이 말하고 싶어하는 대상을, 말하고자 하는 인생을.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 오스만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을 따라, 그리고 그 책을 내게 보낸 나의 '자난'(p. 61 '자난'이라는 이름에 '애인'과 '신'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을 따라 버스여행을 시작한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이 여행에서 오스만은 천사를 만나기를 꿈꾸고 천사를 만나면 책에서 만난 새로운 인생을 완벽히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인생은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순간이며 그 비유할 데 없는 순간은 그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목격하는 그 순간 그들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던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그 책을 주었던 자난과 자난이 사랑하는 한 남자, 아니 한 남자라고 할 수 없는 한 남자 나히트, 마흐메트, 그리고 오스만을 찾아 또 다시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비란바 마을에서 나히트이자 마흐메트이고 오스만이기도 한 그 남자를 만난 오스만은 그에게 총을 쏘지만 정말 그가 그를 죽인 것이 틀림없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에서 시작되어 길로 이어졌다 생각되는 이 여행은 어쩌면,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자 했던 오스만 자신의 의지의 발현일 수도 있다.
(p. 68 이 젊은 여행자는 미지의 영역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그를 새로운 세계의 입구로 데려다 줄 길에서 쉼 없이 이동하는구나.) 
     실제로 오스만이 피살자가 될 마흐메트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만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오스만처럼 극단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인생을 찾고있지는 않았다. 오스만이 반복해 이야기하는 것처럼(p.84 시간은 무엇인가? 사고다! 인생은 무엇인가? 시간이다! 사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 새로운 인생이다!) 새로운 인생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인생과 다를 바 없으며 그 인생이란 시간이며 그 시간이란 사고일 뿐인 것처럼 새로운 인생이란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는 새로운 인생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자난 때문인 것 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만이 찾고 있는 새로운 인생과 그 길목에 서 있는 천사는 자난으로 볼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자난은 오스만의 꿈의 애인임과 동시에 신적인 존재이고, 천사 역시 신적이며 꿈의 애인임과 동시에 오스만의 과거에 만난 새로운 인생(p.61 상상 속에서 인쇄한 청첩장을 '새로운 인생' 캐러멜 포장지에 적혀 있는 여러 가지 멋진 민요들로 장식했다.)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책을 들여다 본다면 그 이유는 자난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스만은 결국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자난을, 천사를, 빛을, 그리고 길을 선택한 것이다.
(p. 71 내가 찾았던 것이 이것이었고, 내가 원했던 것 또한 이것임이 분명했다. 내가 찾은 것을 어떻게 가슴속에서 느꼈던가. 평온, 잠, 죽음, 시간! 나는 그곳에도 존재했고, 이곳에도 존재했다. 나는 평안 속에도 있었고 유혈이 낭자한 전쟁 속에도 있었다. 유령 같은 불면 속에도 있었고 끝없는 잠,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아를 찾기 위해 긴 여행과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오스만을 보며 왠지 작가는 우리에게도 스스로 자아를 찾을 것을 요구하는 것 처럼 보인다. 전혀 전체적인 이야기의 실마리조차 주지 않은 채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을 의도하며 그 의도를 독려해주기 위해 간간히 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까지 하는 얄미운 작가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아실현 뿐만은 아니다. 서구화 속에서 갈길을 잃은 현대 문명을 비판도 하고(p.188 그 역사적인 날에 여론, 신문, 당시의 사상, 아이가스, 럭스 비누, 코카 콜라와 말보로 담배, 서양에서 불어온 바람에 현혹된 가련한 우리 형제들의 사소한 물건들과 보잘것없는 도덕들은 무시되고 말 걸세.) 과거를 잊은 채 환상만을 쫓는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한다.
(p.171 거대한 문명이 붕괴하고 기억력이 상실되는 징후는 아이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맨 처음 나타난다고 했다. 그들은 과거를 고통 없이 빨리 잊으며, 새로운 것을 더 쉽게 꿈꿀 수 있다.)
     이런 커다란 주제들을 버거움 없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끌어담고 있으며, 그 커다란 바구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거대한 문명은 잊은 채 세계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서구화를 촉진시키는 거대 세력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자아를 찾을 것을 말이다. 이쯤 되면 작가의 역량을 절대 의심할 수는 없다.
 
     책을 만나다 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는데, 결국 시작과 끝이 맞닿아있음을(p.230 여행의 처음과 끝은 우리가 어디에 있건 그 곳에 있었다.) 알게되며 작가가 몇가지의 사물로 그것을 말하고자 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자난은 애인이자 신이었고 천사였으며 천사는 애인이자 신이며 오스만이 과거에 먹었던 '새로운 인생'이라는 캐러멜 포장지의 마스코트 였고, '새로운 인생'은 캐러멜 포장지이면서도 오스만이 읽은 책 제목이자 그 책을 쓴 르프크 아저씨가 영향을 받은 책 중 하나인 단테의 책 제목이기도 하고, 캐러멜 역시 터키민족의 언어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어인 카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처음과 끝은 현재의 우리와 함께 임을 말하기 위해 단어들을 교묘히 연결시켜 놓고 있고 이것들의 묘한 연결관계는 결국 새로운 인생이란 지금 우리의 인생임을 알게끔 한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정말 꿈꾸고 실현해야 할 새로운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p.374 인생은 사실 이렇다. 사고가 있고, 운이 있고, 사랑이 있고, 외로움이 있다. 즐거움이 있고, 슬픔이 있고, 빛과 죽음, 그리고 있을 듯 말 듯한 행복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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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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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은 책상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생이다.

 
    10살 어린 남동생에게 다른 건 해주지 못하지만, 책 읽는 습관을 갖게해주고 싶어 재미있는 책 부터 자주 만나게 해주려 한다. 어려운 책이 아니라, 환타지 동화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들부터 시작해서 책에의 관심을 유도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 중 동생의 학교에서 나누어 준 필독, 추천도서 목록을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책이 눈에 띄었었다. 그동안 타인의 서평으로 몇번 접하고선 관심을 갖고 있던 책, <책상은 책상이다>였다. 동생과 함께 책을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재미이다. 난 늦게나마 서평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지만 동생에게는 이왕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해주는 겸, 서평 쓰는 재미도 갖게 해줄 마음으로 책을 읽은 후 짧게 나마 감상을 쓰기를 독려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책의 매력과 의문을 동생의 감상에서 보게 되곤 무릎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동생과 함께 할 책으로 리스트에서만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이 책을 꺼내들었다.
 
     기발한 상상력과 따스한 유머, 책 표지에서 말하고 있는 이 짧은 문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기발한 상상력과 따스한 유머이다. 흔히 타국의 유머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말장난을 외국어로 표현하게 될 때의 곤란함과 표현 후에도 별 재미를 못 느끼게 될 것임은 뻔한 예상인 것처럼, 외국어로 표현된 말장난이 우리말로 번역 되었을 때 그 재미가 얼마나 감소될지는 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 표현 된 유머는 그런 유머가 아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주인공의 황당한 일화를 제시하며 독자가 가볍게 웃을 수 있도록 해 준다.
 
     7개의 짧은 이야기들은 짧지만 따뜻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 역시 뭔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애처로우며 안타깝다. 어쩌면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이 우리 모두가 겪게 될 문제점같이 느껴진다. 7개의 이야기 속에 나타난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남자들이다. 지구가 둥근지 확인해 보려 집 대문에서부터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가려 하는 사람과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하고 싶어 사물의 이름을 바꾸어 부리기 시작한 사람, 아메리카를 발견한 웃기지 않은 광대,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발명하는 진정한 발명가, 세상 모든 사물을 요도크라고 부르는 거짓말쟁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거짓말쟁이, 기차를 타지도 않으면서 기차를 완전히 알기 위해 기차 시간표를 외웠으나 기차역의 계단 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계단 수를 완전히 알기 위해 기차를 타기 시작한 암기왕, 아무것도 더 이상 알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알기로 한 남자, 조금은 과장되고 모순되는 이들의 삶이 이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하지만, 이 모습들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들은 우리 역시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에 고립되어간다 느낄 것이며, 사회와의 의사소통에 점점 문제가 생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작가는 따스히 주인공들을 감싸며 이해하려고 한다. 주인공들은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이 믿는 진실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따뜻하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앞으로 걸어간 노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발명하는 사람을 진정한 발명가라 인정해 주는 사람, 요도크 아저씨를 말하는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손자까지 그 괴짜같은 사람들을 기억하거나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이야기 속에 넣음으로서 작가 자신의 시선을 보여주고 우리의 시선 역시 그들을 이해시키려 한다. 그런 작가의 노력 덕에, 잔잔한 미소와 함께 사회에 단절감을 느끼며 소외받고 있는 그들을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책상은 책상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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