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진주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그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4teen>이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등의 책 소개를 통해 이시다 이라의 명성을 들어왔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그의 작품에 호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있었던 내게 처음 만난 그의 작품인 이 책은 기대 이하라고 해야겠다. <도쿄타워>를 연상시키는 이젠 신선하지 못한 소재와 판화기법이나 사요코의 의상에 맞춰지는 초점은 웬지 책을 읽는 내내 장애요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뭔가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는 책이라면 자신에게는 좋은 책이 아니겠냐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를 하기에 이 책은 그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내겐 좋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현재 배우고 있는 것 때문에 조금 색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내가 들었던 타인의 이야기가 겹쳐져 조금은 내가 원했던 생각이 반짝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내용이므로 그건 비밀이다!)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를 참 재밌게 봤던 생각이 났다. 물론 한국판의 제목이 조금 어이없긴 했지만, 금발은 멍청하다는 속설을 깨기 위해 멍청한 듯 하면서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답을 찾아나가는 엘 우드의 발랄함이 너무도 경쾌했다. 하지만 그 속편으로 나온 <금발이 너무해2>는 기대 이하였다. 1편의 내용을 넘어서지 못해 신선함도 떨어졌고, 엘 우드로 나온 리즈 위더스푼의 패션쇼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을 책에서 만났다면 조금 과장일까? 비주얼적인 요소가 큰 작용을 하는 영화와 독자의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소설에서 똑같이 주인공들이 패션쇼를 하는 듯한 생각이 들어 그 내용 전개를 방해했다면?
     비주얼적인 요소가 큰 영화에서는 의상이 인물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되겠지만 책에서도 과연 그러한가는 솔직히 더 의문이다. 대사나 상황을 통해 나타낼 수 있는 성격을 굳이 장면마다 바뀌는 의상 설명으로 나타내야 하는지. 최근에 의상에 대해 조금 관심이 짙어지며 그 장면을 더 눈여겨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쨋든 이 부분은 책을 읽는 내내 판화를 제작에 대한 전문용어와 함께 조금은 걸림돌이 되었다.
 
     작가가 남성이면서도 여자주인공의 심리를 너무 조곤조곤 말하고 있다는 데에서는 박수를 보낼만 하다. 갱년기의 여자가 겪어야 하는 내면적인 갈등과 그 내면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위치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남성이 그려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하지만 웬지 책을 읽는 내내 <도쿄타워>가 생각이 났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영화로까지 제작된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다. 과연 이들의 사랑은 행복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이기 때문에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자는 사요코와 모토키의 결론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들의 사랑을 이렇게 미화시키는 책, 드라마, 영화들이 요즘 연상녀 연하남 커플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시간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허구의 세계가 허구에서 그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냐만은, 가끔 허구는 현실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 세계로 툭툭 튀어나와 허구에서와 같지 않은 결말을 현실에 남겨놓고 떠나기 때문이다.
 
     어쨋든, 현실에서의 사랑은 현실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 남겨두고 사요코와 모토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앞으로의 시간이 걱정되는 그들이지만,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모든 것을 구원한다. 모토기는 검은 사요코를 하얀 사요코로 이끌며 보이지 않는 미래의 두려움을 구원해주고, 사요코는 모토키를 그가 돌아가야 할 세상으로 다시 이끌어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한다. 열 일곱살이라는 나이차이를 이겨내고 말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이란 건 참 대단한 것이다. 그 사랑이 단지 한 시기의 열망으로, 욕정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약간의 장애요소는 있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일본문학 특유의 그 소소한 감성은 때론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일본문학을 딱히 좋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 때 가볍게 읽음으로서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처음에 말했다싶이, 책의 장단점을 떠나 자기에게 남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그렇다면, 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긴 했지만 이 책 내게는 꽤 좋지 않았는가. 무거운 마음을 살짝 내려놓게도 했고, 새로운 생각도 들게 해주었고, 그리고 책을 만나는 내내 나도 한 번 이런 사랑을 꿈꾸게 하며 설레게도 해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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