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스만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을 따라, 그리고 그 책을 내게 보낸 나의 '자난'(p. 61 '자난'이라는 이름에 '애인'과 '신'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을 따라 버스여행을 시작한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이 여행에서 오스만은 천사를 만나기를 꿈꾸고 천사를 만나면 책에서 만난 새로운 인생을 완벽히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인생은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순간이며 그 비유할 데 없는 순간은 그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목격하는 그 순간 그들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던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그 책을 주었던 자난과 자난이 사랑하는 한 남자, 아니 한 남자라고 할 수 없는 한 남자 나히트, 마흐메트, 그리고 오스만을 찾아 또 다시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비란바 마을에서 나히트이자 마흐메트이고 오스만이기도 한 그 남자를 만난 오스만은 그에게 총을 쏘지만 정말 그가 그를 죽인 것이 틀림없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에서 시작되어 길로 이어졌다 생각되는 이 여행은 어쩌면,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자 했던 오스만 자신의 의지의 발현일 수도 있다.
(p. 68 이 젊은 여행자는 미지의 영역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그를 새로운 세계의 입구로 데려다 줄 길에서 쉼 없이 이동하는구나.)
실제로 오스만이 피살자가 될 마흐메트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만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오스만처럼 극단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인생을 찾고있지는 않았다. 오스만이 반복해 이야기하는 것처럼(p.84 시간은 무엇인가? 사고다! 인생은 무엇인가? 시간이다! 사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 새로운 인생이다!) 새로운 인생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인생과 다를 바 없으며 그 인생이란 시간이며 그 시간이란 사고일 뿐인 것처럼 새로운 인생이란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는 새로운 인생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자난 때문인 것 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만이 찾고 있는 새로운 인생과 그 길목에 서 있는 천사는 자난으로 볼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자난은 오스만의 꿈의 애인임과 동시에 신적인 존재이고, 천사 역시 신적이며 꿈의 애인임과 동시에 오스만의 과거에 만난 새로운 인생(p.61 상상 속에서 인쇄한 청첩장을 '새로운 인생' 캐러멜 포장지에 적혀 있는 여러 가지 멋진 민요들로 장식했다.)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책을 들여다 본다면 그 이유는 자난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스만은 결국 자아실현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자난을, 천사를, 빛을, 그리고 길을 선택한 것이다.
(p. 71 내가 찾았던 것이 이것이었고, 내가 원했던 것 또한 이것임이 분명했다. 내가 찾은 것을 어떻게 가슴속에서 느꼈던가. 평온, 잠, 죽음, 시간! 나는 그곳에도 존재했고, 이곳에도 존재했다. 나는 평안 속에도 있었고 유혈이 낭자한 전쟁 속에도 있었다. 유령 같은 불면 속에도 있었고 끝없는 잠,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아를 찾기 위해 긴 여행과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오스만을 보며 왠지 작가는 우리에게도 스스로 자아를 찾을 것을 요구하는 것 처럼 보인다. 전혀 전체적인 이야기의 실마리조차 주지 않은 채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을 의도하며 그 의도를 독려해주기 위해 간간히 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까지 하는 얄미운 작가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아실현 뿐만은 아니다. 서구화 속에서 갈길을 잃은 현대 문명을 비판도 하고(p.188 그 역사적인 날에 여론, 신문, 당시의 사상, 아이가스, 럭스 비누, 코카 콜라와 말보로 담배, 서양에서 불어온 바람에 현혹된 가련한 우리 형제들의 사소한 물건들과 보잘것없는 도덕들은 무시되고 말 걸세.) 과거를 잊은 채 환상만을 쫓는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한다.
(p.171 거대한 문명이 붕괴하고 기억력이 상실되는 징후는 아이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맨 처음 나타난다고 했다. 그들은 과거를 고통 없이 빨리 잊으며, 새로운 것을 더 쉽게 꿈꿀 수 있다.)
이런 커다란 주제들을 버거움 없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끌어담고 있으며, 그 커다란 바구니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거대한 문명은 잊은 채 세계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서구화를 촉진시키는 거대 세력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자아를 찾을 것을 말이다. 이쯤 되면 작가의 역량을 절대 의심할 수는 없다.
책을 만나다 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는데, 결국 시작과 끝이 맞닿아있음을(p.230 여행의 처음과 끝은 우리가 어디에 있건 그 곳에 있었다.) 알게되며 작가가 몇가지의 사물로 그것을 말하고자 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자난은 애인이자 신이었고 천사였으며 천사는 애인이자 신이며 오스만이 과거에 먹었던 '새로운 인생'이라는 캐러멜 포장지의 마스코트 였고, '새로운 인생'은 캐러멜 포장지이면서도 오스만이 읽은 책 제목이자 그 책을 쓴 르프크 아저씨가 영향을 받은 책 중 하나인 단테의 책 제목이기도 하고, 캐러멜 역시 터키민족의 언어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어인 카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처음과 끝은 현재의 우리와 함께 임을 말하기 위해 단어들을 교묘히 연결시켜 놓고 있고 이것들의 묘한 연결관계는 결국 새로운 인생이란 지금 우리의 인생임을 알게끔 한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정말 꿈꾸고 실현해야 할 새로운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p.374 인생은 사실 이렇다. 사고가 있고, 운이 있고, 사랑이 있고, 외로움이 있다. 즐거움이 있고, 슬픔이 있고, 빛과 죽음, 그리고 있을 듯 말 듯한 행복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