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랜덤소설선 13
박범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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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숨에 몰아쳐 읽어내야 할 책이 있다면 마음에 쉬는 시간을 적당히 허용해 가며 만나야 할 책이 있다. 내게 이 책은 후자이다. 한 순간 뜨거워지다 한 순간 얼음장 같아지는 이 책을 단숨에 읽는다면 그 온도차이에 난 견디지 못하고 갈라졌을 것이다. 책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게 존재함을 굳건히 믿는 내게, 이 책은 여름의 시작과 함께 인연이었고 이 책을 만나는 내내 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겁고 힘들게 나를 이끌었다.
 

     2주에 걸쳐 이 책을 만나면서도 난 이 책이 내게 주는 이런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피고름을 먹어대는 거북한 성적 묘사 탓을 하다가 이 책이 전반적으로 안고 있는 그 불온한 색채의 탓도 했다. 또 자신의 '자유'를 찾아 남의 '시간'을 밟아버린 주인공의 무책임함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그 불편함의 근원을 난 또렷이 보았다. 그것은 내가 갖고 있던 '죽음'에의 '공포'였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생'을 시작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우리에게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보편적인 감정을 신랄하게, 하지만 극복하고 싶은 소망을 담아 묵묵히 그려나간다. 아이러니 하다. 책 속 천예린과 김진영, 둘 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지독한 기록이다.
 

     50대, 주류 회사의 재무이사까지 올라 나름대로 자수성가의 대표격이었던 한 남자에게 바람이 분다. 천예린이라는 한 시인의 출연은 그동안 이 남자가 쌓아왔던 '반듯한 가장'의 교과서적 정의를 하나하나 지우게 만든다. 남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를 따라간다. 그리고 죽음과의 지독한 싸움은 시작된다. 몸에 죽음을 안고 사는 천예린을 찾아 여행을 하며, 그는 자신에게서 벗어났고 자유를 찾았으며 유랑을 얻었다. 그런 자유와 해탈의 경지에서 그는 다시 천예린을 만났으며 천예린을 안았으며 천예린을 묻었다. 그는 생의 문을 열고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더욱 견고하게 생의 문을 닫고 더 깊은 감옥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찾고 유랑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답답했다. 그리고 4천7백 미터가 넘는 얼음의 앞에서 알게 된다. 자신이 믿었던 자유, 유랑의 중심은 아무 것도 있지 않다는 것을. 그것은 허깨비에 불과했다는 것을. 죽음에 다가갔고 그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이란 본래 외로운 존재이듯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알기 위해선 여전히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맞게 될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을 넘어선 새로운 생명을 연결시키길 바라면서.
 

     지독히 외롭고 외로웠다. 책을 읽는 것은 가장 개인적인 행위이며 이기적인 행위라고 나는 그렇게 말한다. 내 시간, 내 공간에 다른 이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 채 온전히 책에 나를 맡기는 것이 독서이기에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의 가장 사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죽음을 만났을 때는 정말 지독히 외로웠다. 책을 읽고 있는 나도 혼자였으며 김진영을 따라 내 죽음을 보는 나도 혼자였다.
 

     역사의 한 왕은 불멸의 약을 찾아 헤매다 죽음을 맞이했고, 인류는 아직도 무병장수를 꿈꾸며 의학을 발전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은 온다. '영원'을 꿈꾸지만 '영원'을 만난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더 끔찍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죽음 후 불멸을 꿈꾼다. 그렇게 우리는 후손을 낳고 예술을 남긴다. 모두가 우리의 발버둥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김진영은 천예린이 숨겨놓은 죽음에 대한 반역에 적개심을 느끼며 천예린의 시집을 발로 밟는다. 그리고 나 역시, 김진영과 동시에 이 책을 발로 밟고 싶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2천 6백매나 되는 긴 소설을 7년 후에 1천 5백여 매로 깎아냈다고 한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주름의 시간'을 극복했다고 했다. 어쩌면 이 책이 줄여지기 전에 출판 된 책을 만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이 책을 만나는 힘든 여정 속에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가만의 죽음에 대한 반역을 살짝 눈치 챈 지금은 이 책만으로 충분히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나 역시 '주름의 시간'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인 시간을 갖겠다. 더 이상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유사 죽음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두고두고 만나고 싶은 책이지만, 자주 만나고 싶지는 않다. '주름의 시간'을 극복할만한 시간이 흐르고 그 '극복'의 순간이 온다면 그 때 다시 이 책을 만나며 내가 건너 온 '주름'의 강을 박범신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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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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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고모네 집 한 켠에는 책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외국으로 급히 가느라 고모에게 잠시 집을 빌려주었던 주인집 아이들의 책이었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난, 고모네 집 그 구석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자주 책을 읽었다. 그 책 중에 가장 내 마음을 자극했던 것은 역시나 신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책을 몇 번이고 읽던 기억, 그 책에서 나던 책 냄새, 표현할 길 없는 그 냄새와 그 기억이 신화에 관한 이야기에는 함께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이름에 대한 내 기억력은 영 꽝이다. 한 때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내가 러시아에서 태어났다면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이름에 관한 내 기억력은 한탄할만 하다. 그러니, 신화를 좋아하면서도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뿐이다.
 
     그러나 신화는 늘 재미있다. 이름을 기억 못할 따름,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 읽을지언정 신화는 늘 재미있다. 난 그것이 신화 속 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어떤 이야기보다도 소문이나 뒷담화에 귀가 쫑긋쫑긋 대는 것,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습성일 것이다. 이런 쫑긋쫑긋 귀를 가진 내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뒷담화를 듣는 것 같은 기분, 흥미가 동하지 않을리가 없다. 특히 뒷담화 중에서도 제일 귀가 쫑긋대는 연애담이다. 커피숍에 앉아 몇 시간이고 연예인 루머를 이야기하며 깔깔대는 아주머니들처럼 그렇게 신나게 책을 만나간다.
     사랑이란 누구나 원하는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남들의 사랑 이야기에도 그렇게 귀를 쫑긋대나 보다. 그렇게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시기도 하고 내 사랑에 대한 안도도 하지만 누구나 사랑을 꿈꾼다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신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은 인간과 같은 사랑을 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질투를 하고 사랑을 얻기 위한 투쟁을 한다.
    
     투박한 것 같지만, 진정한 사랑은 자신 앞에 놓인 사랑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 그것만을 향해 뛰어드는 열정이 있을 때 그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재면서 계산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나를 던져 사랑해 볼 만큼 가치 있게 느껴지는 사람을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만난다면,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랑도 숙명일까? (p.69)
 
     언젠가, 세상에 철저하게 나 혼자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다. 정말 가슴이 아릴만큼의 외로움이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언제 한 번 외롭지 않은 때가 있었나, 라는 안도도 그 때는 아무 소용 없었다. 그 때 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아니, 그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적 없다는 생각, 그러며 난 더 혼자가 됐었다.
     이 책의 내용은 물론 아쉬움이 있다. 너무 짤막하게 이야기 했다는 것, 그리고 조금은 흥미 위위주로 흘러갔다는 것. 하지만 그 아쉬움을 채울만한 사랑이 가득하다. 그 사랑 앞에 난 사랑에 날 던질 만큼 순수한지 의문을 가져본다. 사랑에 모든 것을 던지는 이들, 때론 바보같다 손가락질 했던 그들이 사실 나보다 더 열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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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2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2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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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참 문화적 혜택을 많이 받고 자란 편이다. 어릴 때 부터 피아노도 배워봤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선 바이올린도 배웠으며 초등학교 땐 학교 관현악단에 드나들기도 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독신이신 고모는 나를 자식처럼 생각하셔서 어릴 때 부터 이런저런 유명한 공연에 날 많이도 데려가셨다. 그런 내 음악적 경험들은 다 어디갔을까... 부끄럽게도 난 지금은 칠 수 있는 피아노 곡 하나 없으며 바이올린도 딱히 연주하지 못한다. 그리고 음악은 오로지 가요만 가끔 들으며 즉, 음악과는 거의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이렇게 음악에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잘 부르던 못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가끔 마음이 심난할 때 마음에 맞는 음악을 만나면 그 때의 기분이 치료되기도 하는 걸 보니, 아무리 음악과 무관한 삶이라고 해도 우리 내부에는 음악적 요소가 깊이 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음악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클래식은 어렵다, 라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클래식을 모르면 왠지 '무식'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억지로 클래식 한 번 들어보려 귀를 기울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음악에 맞춰 떨궈지는 고개 뿐, 우렁찬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음악을 듣고 있었는지 꿈 속을 걷고 있었는지 머리가 멍하기만 한 경험,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알고 듣는다면 어떨까? 클래식을 알고 듣는다면 처음 듣는 음악에서도 아, 이게 바로 그거? 라고 눈을 반짝이며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는 체 하는 즐거움을 갖다보면 클래식이 어느 새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렇게 클래식과 친해지고픈 사람이라면 더 없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지휘자 중 하나인 금난새씨가 우리의 이런 어려움을 눈치채고 재미있고 쉽게 클래식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에게 클래식이라는 새의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역시 그분의 이름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부터 금난새씨의 이름이 본명인지 궁금했었는데 만약 본명이라면 정말 마침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신세계 교향곡>과 <유모레스크>로 우리에게 익숙한 드보르작이 그 문을 연다. 문학이나 미술에서도 그렇겠지만, 작가의 이력을 안다는 것은 순수한 작품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작곡가에 대한 간단한 이력에서 시작해 재미있는 일화들, 때로는 작곡가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까지 우리가 옛날 이야기를 듣듯 편하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우리를 클래식의 세계로 이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클래식이 처음이고 무서웠던 사람들도 그 노래를 빨리 듣고파서 안절부절하게 될 것 같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는 생상은 연주하기 싫어했다는 이야기, 아인슈타인 사진과 너무도 닮아있던 그리그 등 재미있는 이야기와 흥미로운 사진이 가득하다. 꼭 편식하는 아이에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속에 싫어하는 음식을 꼭꼭 숨겨둔 후 먹여주면 맛있게 먹는 그런 경험을 하는 기분이다. 책 속에 수록 된 음악들을 듣고파 안절부절 하면서도 집에 딱히 클래식이 없다는 이유로 기운 빠질 독자를 생각해 책에는 고마운 선물도 담겨 있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과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제 1번 <고전>이 담긴 CD. 책을 읽는 동안 이 CD를 틀어놓고 귀와 눈 모두 함께 클래식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을 만나고 나면, 클래식이 더 이상 어려운 장르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마음으로 만나고 느끼면 되는 것, 그것이 음악이기 때문이란 걸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백년을 건너 뛰어 음악 속에서 훌륭한 작곡자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클래식 선율이 가진 매력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왠지 예전에 클래식을 들으며 내 고개가 한 없이 밑으로 떨어졌을 때, 그 때 꿈 속에서 난 개인적으로 사진이 마음에 들던 바르토크를 만났던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가 클래식만 인정하고 우리 전통 음악은 소홀하는 요즘의 현실이다.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며, 그만큼 우리 전통 음악에도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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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재테크 행복한 가계부 - 행복한 돈 이야기
제윤경 지음 / Tb(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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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내게 계발서를 읽는 것은 곤욕이다. 계발서가 우연히 손에 잡히게 되면 한숨부터 나온다. 계발서는 내 입에는 지나치게 안 맞는 한끼 식사이다. 소고기 패트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잘 못먹는 내게 가득 차려나온 소고기 이층 패트짜리 햄버거와 마주할 때의 느낌과 같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울며 햄버거 먹기로 먹다보면 뭔가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책과의 만남 역시 그랬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겠다. 계발서는 쥐약이고 돈 개념도 거의 무지한 내가 돈에 관련된 계발서를 만났다. 최악의 궁합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먹고 난 지금, 인상 쓰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만나고 한장 한장 손에서 떠나보내며 놀라움으로 커지는 눈과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던 내게 '다행이다'는 혼잣말을 한다. 이 책을 통해 지금이라도 심각한 불치병으로 치닫을 뻔 했던 문제들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테크로 인해 돈에 욕심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는 일상적인 실천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것, 그것이 이 책이 준 첫번째 과제이다. 난 나도 뻔히 인정하는 돈맹이자 사회 전체의 문제거리들 중 하나인 금융맹이었다. 또 하나의 고마운 점은 내 단점을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그동안의 내 생활이 부끄러워지게 나를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 어쩜 그동안 이리도 무지하고 살았던 것인지 내 무지를 반성하며 더 나은 생활을 한 번쯤 모색해 보게 도와준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무관심하게 놓고 있었던 우리 권리 중 하나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시간이 마련된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금융기관의 횡포 아닌 횡포에 놀아나고 있던 우리의 권리들. 안내 전화만 바쁘다는 이유로 끊어 버리고 카드 하나만 만들어 달라는 발품파는 아주머니에게 등 돌리는 것이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조금 더 안다는 이유로,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권리를 묵살해 버리는 그들에게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와야 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말을 냇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했다. 생각에서 그치면 안되고 우리 스스로 물을 떠 마셔야 한다. 이 책은 물가 까지 우리를 끌고가는 역할은 아주 충분히 수행하고 있으니.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고 이 책을 만나면 좋겠다. 중도금이나 양도금 등의 친숙한 용어에 대한 얄팍한 지식마저 없다면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겁을 내서는 안 된다. 겁을 내야 할 것은 자신의 지나친 무지이다. 돈에 관심이 없고 연연해 하지 않는 것과 경제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다르다.

     나는 돈맹이다. 그것도 귀찮이형 돈맹. 정말 뜨끔하게도 은행은 늘 업무시간 이후에 이용해서 불필요한 수수료를 지출하고, 거래 은행까지 가는 게 귀찮아서 수수료를 지급하고 가까운 은행에서 출금을 한다. 더 뜨끔하게도 매사에 돈돈하며 연연해하는 것도 싫고, 돈 관리에까지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 피곤하다고 여기지만 돈에서 여유롭고 싶은 내 행동은 결국 돈이 새고 월말이 갈 수록 돈에 연연하게 만든다.

     하지만 돈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다행이도 대박에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로또 한 장 사 본적 없고, 투자나 주식 재테크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성실히 일해 내 앞가림 할 만큼 벌어 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하지만 다행이도 대박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 외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돈에 크게 욕심이 없다는 것, 그래서 현명하지 못한 소비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훨씬 더 좋은 상황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질 게다. 돈이 어렵다고, 돈이 무섭다고, 돈이 별 거아니라고 핑계를 대지 말자. 돈을 밝힐 필요는 없지만 돈에 밝아질 필요는 분명히 있다.

 

     - 책 속에서 만난 한 마디.

     현실을 직시하고 제한된 소득을 절약하여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돈에 밝은 사람이다. 돈의 노예까 되는 사람은 돈을 밝히는 사람이지만 돈의 속성을 알고 돈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은 돈에 밝은 사람이다.(p.55)

     급하고 중요한 일과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급하고 중요한 것만 챙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공은 위해서는 급하지는 않으나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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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의 비밀일기
앨런 스트래튼 지음, 이장미 그림, 박슬라 옮김 / 한길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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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중학생 아이가 연애에 대한 고민과, 자신 주위의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는 그들의 연애를, 그들의 사랑을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하고 치부해버리기 일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의 고민은 지금 우리의 고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설렘, 질투, 사랑 그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내 나이의 사람들 고민과 똑같았다. 다른 것은 시간 뿐, 그 시간이 내 나이 또래의 사랑은 심각한 것으로 그들의 사랑은 웃기지도 않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아이들 역시 나름대로는 심각하고 나름대로는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그들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는 이유로 얼마나 냉소적인 표현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

 

     이미 성장은 끝이 나 버렸지만 성장동화는 언제나 재미있다. 아직 마음과 정신은 성장기인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지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연애 이야기에 눈을 반짝인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 나이의 고민과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고민이 얼마나 일치하지 않는지 알게 된다. 우리의 성장 소설을 보면 가족문제, 그리고 자아문제에 치중되어 있지만 사실 그들이 궁금해 하고 고민하는 것은 그런 문제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이들이 궁금해 하고 고민했던 것을 속 시원히 드러내 주는 반가운 책이다.

 

     우리의 십대에 대한 인식과 서양의 십대에 대한 인식이 달라서 인지 아이들의 사랑문제에 아주 개방적이다. 단지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키스부터 섹스까지 모두 드러낸다.

     학교에 전학 온 잘생긴 아이 제이슨이 레슬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엄마 아빠는 이혼을 한 데다 아빠는 엄마아빠의 이혼에 결정적 역할을 한 브렌다와 살림을 차렸다. 엄마와 난 거지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엄마는 아빠와의 이혼으로 신경질적이 되어 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 케이티가 애슐리와 어울리며 나와 멀어지기까지 하고 있는 이 최악의 순간 나타난 제이슨은 정말 최고의 남자이다. 사랑은 이런 것이지.

     하지만 제이슨은 자꾸 스킨십만 해 댄다. 매일같이 좋지도 않은 섹스를 하려고 하고 거부하면 날 때리기 까지 한다. 하지만 그 모두가 날 사랑해서이다. 그래, 그렇게 믿으려 한다. 날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를 적어둔 내 일기가 새로 온 제임스 선생님 손에 들어가고 교장 손에 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교장은 속물이다. 제이슨의 아빠가 부자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덮으려 한다. 거기다 교장과 제임스 선생님이 내 일기를 본 것을 안 제이슨은 날 죽이려 든다. 사랑이 아니었구나. 사진을 빌미로 날 잡으려 하지만 제이슨은 이제 진절머리 난다. 그리고 이제 알 것 같다. 제이슨이 내게 행한 행동들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제이슨에게 당한 아이들이 내가 처음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세상의 눈이 무서워 그 사실을 감추려 했고 그렇기에 제이슨은 계속해서 폭주하는 중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지 않다. 아이들이 언제까지고 아이이길, 성에 대해 무지하고 슬쩍 스치는 스킨십에도 부끄러워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른의 욕심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욕심이 아이들에게 성은 감추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성에 대해 관심이 생겨야 할 나이임에 틀림없고 그 욕망을 분출하는 나이임이 분명하지만 어른들에게 말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구할 수 있는 최소의 최대 자료로 잘못된 상식들을 쌓아간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놀랐던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관심에 비해 그들은 너무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잘못 된 상식이 더 큰 실수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어른들이다. 더 이상 우리는 아이들에게 감추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이 책은 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세상에 제대로 맞서는 방법과 세상에서 제대로 독립하는 방법도 이야기 해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함께 만들어가는 부끄럽지만 욕망이 어린 세상이 아니라 제대로 알기에 더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어른들의 시선이 더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은 어른이 먼저, 그 후 아이에게 권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시간이 만들어 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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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향기 2007-09-0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가는 책이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