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고모네 집 한 켠에는 책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외국으로 급히 가느라 고모에게 잠시 집을 빌려주었던 주인집 아이들의 책이었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난, 고모네 집 그 구석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자주 책을 읽었다. 그 책 중에 가장 내 마음을 자극했던 것은 역시나 신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책을 몇 번이고 읽던 기억, 그 책에서 나던 책 냄새, 표현할 길 없는 그 냄새와 그 기억이 신화에 관한 이야기에는 함께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이름에 대한 내 기억력은 영 꽝이다. 한 때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내가 러시아에서 태어났다면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이름에 관한 내 기억력은 한탄할만 하다. 그러니, 신화를 좋아하면서도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뿐이다.
 
     그러나 신화는 늘 재미있다. 이름을 기억 못할 따름,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 읽을지언정 신화는 늘 재미있다. 난 그것이 신화 속 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어떤 이야기보다도 소문이나 뒷담화에 귀가 쫑긋쫑긋 대는 것,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습성일 것이다. 이런 쫑긋쫑긋 귀를 가진 내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뒷담화를 듣는 것 같은 기분, 흥미가 동하지 않을리가 없다. 특히 뒷담화 중에서도 제일 귀가 쫑긋대는 연애담이다. 커피숍에 앉아 몇 시간이고 연예인 루머를 이야기하며 깔깔대는 아주머니들처럼 그렇게 신나게 책을 만나간다.
     사랑이란 누구나 원하는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남들의 사랑 이야기에도 그렇게 귀를 쫑긋대나 보다. 그렇게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시기도 하고 내 사랑에 대한 안도도 하지만 누구나 사랑을 꿈꾼다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신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은 인간과 같은 사랑을 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질투를 하고 사랑을 얻기 위한 투쟁을 한다.
    
     투박한 것 같지만, 진정한 사랑은 자신 앞에 놓인 사랑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 그것만을 향해 뛰어드는 열정이 있을 때 그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재면서 계산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나를 던져 사랑해 볼 만큼 가치 있게 느껴지는 사람을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만난다면,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랑도 숙명일까? (p.69)
 
     언젠가, 세상에 철저하게 나 혼자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다. 정말 가슴이 아릴만큼의 외로움이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언제 한 번 외롭지 않은 때가 있었나, 라는 안도도 그 때는 아무 소용 없었다. 그 때 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아니, 그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적 없다는 생각, 그러며 난 더 혼자가 됐었다.
     이 책의 내용은 물론 아쉬움이 있다. 너무 짤막하게 이야기 했다는 것, 그리고 조금은 흥미 위위주로 흘러갔다는 것. 하지만 그 아쉬움을 채울만한 사랑이 가득하다. 그 사랑 앞에 난 사랑에 날 던질 만큼 순수한지 의문을 가져본다. 사랑에 모든 것을 던지는 이들, 때론 바보같다 손가락질 했던 그들이 사실 나보다 더 열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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