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주는 축소지향의 일본인 세트 - 전2권 - 우리 아이들을 위한 지식의 샘
이어령 지음, 김준연 그림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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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읽었던 세로줄 이어령 전집을 읽으며, 이어령 선생이 갖고 있는 박식하고도 독특한 생각에 무릎을 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이어령 선생이 이젠 일본을 말한다고 한다. 그것도 어른들을 위해 내 놓았던 책을 아이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게 다시 풀어 쓰셨다고 하니, 어른의 시선보다는 아이의 시선이 더 재미있고 신나는 철없는 어른인 내겐 딱 맞침맞은 책이다 싶다.
     사실 우린 일본에 대해 너무 일관성 없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유독 심한 것 같은데, 일제 시대를 경험하지는 않았으나, 그 시대를 경험한 조부모님을 갖고 있어서 자주는 아니어도 틈틈히 그 시대에 대해 들어왔기에 일본에 대해 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소니로 익숙해진 작고 예쁘고 실용적인 일본 제품과 다채롭고 풍부한 일본 문화엔 적당한 호기심과 선호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세계 속에 맑고 정당한 일본이란 이미지를 심기에 급급한 일본에 약간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탄생하는 물건들과 소소해 보이지만 따뜻한 문화에 어느정도 호감과 경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가끔 생각했었다. 그들은 어찌 이리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이어령 선생이 먼저 알고 깨끗이 해소해주니 정말 책 표지에 나와있는 것 처럼 머리가 좋아지는 책은 이런 책이 아닐까, 정말 재미있게 똑똑해 지는 기분이 든다.

 

     경제 대국 중 하나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일본은 아시아의 중심이 되었다. 인구, 땅 크기로 밀어부친다면 중국을 이길 순 없겠지만 그리고 머지 않아 중국이 아시아를 흔들고 세계를 흔들 거란 학자들의 예상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진 made in China 보다 made in Japan이 세계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세계인이 아시아를 보는 기준은 일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많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이 포장해 놓은 매혹적인 포장지에 포장을 벗겨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낼름 달려든 꼴이나고나 할까?

     이어령 선생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본을 더 잘 알기 쉽게 풀이 해 놓았다. 이름하야 '축소 지향형 일본인'. 일본인들은 뭐든지 확장이 아닌 축소를 해 가고 그 안에서 안정을 느낀다는 생각인데, 이런 축소지향형의 일본인들을 분석하기에 딱 맞게 점점 더 축소적으로 분석을 하고 있어서 참 재미 있다. 특히 일본인의 여섯 가지 축소지향 모형으로 이름 붙여진 이레코형, 쥘부채형, 아네사마 인형형, 도시락형, 노멘형, 문장형은 그 이름만으로도 참 재미 있지만 알고 보면 그 안에 숨은 뜻도 아주 재미있고 아, 정말. 하며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들이다.

 

     처음에 이 책을 접하면 이어령 선생도 어느정도 일본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그 마음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일본인의 시선으로 이 책을 본다면 조금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게 왠걸, 일본 월간지가 선정한 일본과 일본인을 알기 위한 120권에 선정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찬찬히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게 된다. 이어령 선생은 일제 시대를 경험했고 어느 정도 그 아픔을 알고 있을테지만 또 그만큼 일본과 가까이서 생활을 했기에 나름대로의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런 일본의 고유한 특성을 속속히 파헤치며 그들이 더 세계적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확대적인 것이 아니라 고유한 축소지향적인 성격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하고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일본인들은 이 책을 보고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들보다 더 정확히 자신들만의 문화를 파악하고 판단한 한국인이 있다는 것에. 하지만 원래 우물 안 개구리는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기 힘든 법이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우리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해 줬던가? 우린 과연 우리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우리에 대해 돌이켜 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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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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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vs 사람 , 한 없이 따뜻한 그 사이.

 

     모처럼 참 따뜻한 이야기를 만났다. 따뜻한 이야기 속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인다. 참 따뜻하고, 참 편안하다. 그 이야기 속에 마음이 쉬어갈 수 있었다.

     올해 초, 지인의 소개로 만났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그 시대를 그린 그 책을 읽으며 난 그렇게도 따뜻해 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도쿄타워가 완공되던 시점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내가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 그리고 내가 가보지도 않은 공간, 하지만 그 곳에서 그 시대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과거는 마냥 그리운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그 때는 지금보다 따뜻했을까.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들이박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 컴퓨터와 친구가 되어 오락을 하는 사람들, 어찌 됐든 현대에 사는 우리가 보기에 이 세상은 편리하기는 하나 삭막하다. 왠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잿빛 도시에 살고 있는 기분. 이런 도시에서 보는 과거는 늘 파란 빛이고 늘 선명하다. 옛날 TV는 흑백이었고 지금의 TV는 컬러 와이드 비전이지만 왠지 우리의 환상 속에서 현재는 흑백이고 과거는 총천연 칼라 파워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서 본 더 과거도 그리하였을까? 그리고 미래에 본 지금은 칼라가 될 수 있을까?

    

     4월부터 3월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사실은 훨씬 긴 시간의 이야기들이다. 시작된 4월에 있던 스즈키 오토는 어느새 3월이면 굴지의 중견기업이 되어 있고, 류노스케가 우연히 데려와 함께 살게 된 준노스케는 이야기와 애니메이션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짧은 이야기 같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인생이다. 어쩜 이리 우리와 닮았을까, 그리고 카와시마는 오랜만에 그 때 그 도시로 가 그 모든 것을 되돌아본다. 불과 몇년 전 이야기 같지만 이젠 커다란 고층 빌딩이 생기고, 그 맛있던 라면 집이 아닌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빼곡하게 들어선 그 때의 그 곳. 어떤 기분일까. 너무도 변해버린 추억의 장소와 만나는 기분은.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면서도 애틋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생각이 든다. 역시 가장 따뜻한 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중앙난방이 나오고 한 겨울에도 반팔로만 살 수 있는 아파트도 좋지만 찬 바람이 휙휙 몰아치는 단칸방에서 가족이 서로의 체온을 난로삼아 따스히 끌어안고 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오히려 더 따뜻할 수 있지 않을까. 살을 빼야 한다고 굶고 요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모두가 탄력있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나 소형 게임기가 없어도 재미있었고 웃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내가 꿈꾸었던 과거의 삶들이 이 책에 온전히 묻어난다. 확실히 지금의 우리는 행복하지는 않다라는 막연한 추측이 마음을 휘감는다. 사람과 사람, 그 사이가 가장 따뜻하다는 것을 알고 그 때를 그리워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에 익숙해져 돌아갈 수 없는 우리가 왠지 마약 중독자같다는 생각이 이 더운 여름, 더위와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마음 먹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에어콘으로 눈이가는 내 마음이 하고 있었다.

     이런 잿빛 도시에 사는 난, 그런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도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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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게임 도코노 이야기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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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다리쿠와의 첫 만남은 생각대로 갑작스러웠다. 온다리쿠라는 이름이 화제가 되고 있을 때도 그저 언젠가 만날 날이 생기겠거니 했을 뿐이었다. 거기다 굉장한 다작을 하는 작가라니, 왠지 로맹가리의 작품을 모으던  '콩스탕' 같은 삶을 꿈꾸던 내게 다작하는 작가는 왠지 호기심이 감소했다. 하지만 왠지 갑작스레 온다리쿠를 만나게 될 거라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처럼 한 인터넷 서점의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온다리쿠 3종 세트를 받게 되었다.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도코노 이야기_세번째, 엔드 게임]. 이 책을 만나고 나서 왠지 모를 의무감에 도코노 이야기_첫번째, 두번째도 구입하게 되었다. 세일러의 전략이라면 이건 아주 탁월하다.

 

     도코노 이야기_첫번째, 두번째도 구입해 놓고 세번째를 덥썩 먼저 읽게 되었지만 왠지 온다리쿠의 저력을 벌써 확인한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사람, 굉장한 이야기 꾼이다.

     전혀 무서운 내용이 아닌데도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불편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왠지 마음 한 구석을 서늘하게 해 내 존재를 다시끔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사실 내게는 호러나 스릴러 물의 책 보다 이런 책이 훨씬 더 무섭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는 내내 난 이유 모를 공포감에 시달렸다.

 

     자신의 존재가 뒤집히고 뒤집히고 빨아지고, 그 기묘하고 축복만은 아닐 듯한 능력들이 이 세상을 더 정지 된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 나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 기억 역시 도키코와 에이코의 기억처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이유모를 두려움. 이 책은 지나치게 도시를 닮았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빌딩 숲에 나 홀로 떨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결국 도키코와 에이코의 기억은 사랑에 의해 만들어졌고, 사랑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다. 그녀들이 일족으로서 혹은 일족이 아닌 사람으로서 받은 능력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을만큼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 그러고 보니, 회색 도시 한 가운데 피어난 작은 희망을 본 듯한 기분도 든다.

 

     뒤집히고 뒤집히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저마다 자신이 쌓아 온 시간 속에서 좋은 기억만, 자신이 유리한 기억을 모아 사실과는 조금 왜곡 된 자신의 과거를 창조해 놓고 내 것은 '진짜'라고 이야기 하며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가지 않는가.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을 더 빨리 끌어내며, 그 나쁜 기억의 나열 속에서 난 상처 입은 가련한 짐승이며, 나름대로 강인해지기 위해 세상과 투쟁해 왔고 그렇게 세상이 이기적으로 만든 난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임을 스스로 주입시키고 있지 않은가.

     참 환상적인 이야기이고, 참 풍성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은 작가의 세계관이 담긴 허구의 세상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작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왠지 우리의 세상과 많이 닮았다는 이유 모를 씁쓸함, 그리고 작은 희망이 보여주는 안도감이 든다.

 

     온다리쿠와의 첫 만남, 작가의 저력을 확인했다. 책꽂이에 꽂힌 나머지 책들에도 눈이 감은 어쩔 수 없다. 이젠 온다리쿠를 만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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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케 2007-08-1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가 된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한동안 온다 리쿠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었죠.. 아마..꽤나 오랫동안 온다리쿠 홀릭 상태가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논개 1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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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 속의 논개를 더듬어 본다. 국사시간에 배웠던 듯한 그녀의 이름, 그리고 문학시간에 한번쯤 더 들었을만한 그녀의 이름, 그녀는 내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었던가. 하나의 여인이었던가. 그동안 난 그녀를 기생으로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만나며 내가 그렇게 무지하지는 않았음을, 단순히 그녀를 기생으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음을 주장해보려 했지만 [기억은 요망하고 야릇하다. 그것은 결코 정직하지 않다. 사실의 진위나 의미의 경중을 떠나 앞뒤가 바뀌고 때로 가당찮이 변질되기까지 한다. 그 모든 요사가 그것을 지닌 자의 마음의 경로를 따르기 때문이다. 간사하고 기묘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이다. 기억은 죄가 없다.]라는 본문 속 말처럼, 간사한 내가 그녀를 기억하던 내 방식을 왜곡시킨 것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라도 그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다.

 

     황진이나 장희빈등 몇몇 여자들이 문학작품이나 TV 드라마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는데에 반해, 그리고 또 다른 몇몇 여자들이 교과서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여성이라면 존경해야 할 인물로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꼽히고 있지만 논개라는 인물은 그러지는 못하였다. 어쩌면, 황진이나 장희빈처럼 이야기가 될만한 요소가 충분치 못한 까닭도 있고 신사임당이나 여왕이나 황후들 혹은 독립운동가들처럼 굵직한 요소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녀를 기억하는 건 단지 적군의 대장을 껴안고 물 속으로 사라진 그 일화 단 하나 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단지 그 장면 때문에 그녀를 '기생'으로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녀도 이야기거리가 충분히 많은 여자였으며, 어떤 역사 속 여자들보다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에 대해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그런 그녀를 현대 사람들에게 재조명하고, 참 된 그녀를 알려주는 데에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많았던 책임은 부인할 수 없다. 작가는 모두가 다 아는 듯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여인, 논개를 재조명하고 재발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재조명과 재발견은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 보지 않았던 논개의 삶에 대한 서술'이기에 빛났던 것이지 '이야기가 재미있고, 그에 따라 논개의 삶이 흥미로워 진 탓'은 확실히 아니다. 역사물을 쓸 때는 자신이 쓰려고 하는 인물과 사건의 삶에 주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들었다. 자신이 쓰려고 하는 인물이 되어 그 사건을 서술해 나가다 보면, 그 사건들에 꼭 필요한 주변 정세나 상황들이 부수적으로 들러붙게 되고 그 시대적 상황들이 자신이 표현하기를 원하는 인물을 넘나들지 않을 때 좋은 역사물이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어찌보면 논개의 삶보다는 그 시대적 상황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싶다. 논개의 이야기와 최경희의 이야기보다 그 시대 묘사가 지나치게 생생한 것, 우리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원했던 것이지 세세한 역사 지침서를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많이 아쉽고 실망감이 남는다.

 

     그러나 한 가지라도 얻는 것이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라고 했다. 분명 작가가 시도한 논개에 대한 재조명은 훌륭했고 참신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꼭 한 번은 부각시켜야 했을 문제였다고 본다. 아쉬움과 실망감도 많이 있었지만 역사 속에서 잊혀갔던 한 여자, 강인하고 사랑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던 아름다운 논개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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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의 알약
슈테피 폰 볼프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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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2학년 현이는 1학기 기말고사 공부를 하다가 입이 삐죽 나온다. 평소 사회 과목을 좋아하던 현이지만, 이번 사회 시험은 너무 어렵게만 느껴진다. 바로 세계사 부분. 국사까지는 재미있고 좋았는데 세계사로 넘어가니 한숨만 나온다. 도대체 이 길고 긴 역사를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하고, 도무지 이 많은 것을 왜 다 배워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영어 선생님은 학문은 궁금증을 갖는 데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했다. 이건 왜 배워야 할까의 의문이 바로 그 시작이라고. 한 번 물어볼까? 세계사는 왜 배워야 하는 거냐고?
 

     교무실로 살금살금 들어간다. 빼꼼 고개를 내밀고 선생님을 찾으니, 아! 저기 있다. 내가 좋아하는 미모의 우리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이 뭔가를 읽고 계신다. 와, 우리 선생님은 역시 지적이다. 책 읽는 모습도 남다르다. 사춘기 어린 애의 장난이라고 할까봐 아무 말 못하고 있지만 난 꼭 선생님 같은 여자를 만날 거다. 어? 그런데 선생님이 책을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뭐가 그렇게 재미 있으신 걸까?
 

     선생님, 뭐 읽고 계셨어요?

     선생님이 고개를 드시고, 현이 왔구나 하고 웃으신다. 그리고 책을 살짝 덮어놓으신다. 제목이 <릴리안의 알약>이다. 무슨 책일까? 선생님이 읽고 계시니 괜히 그 내용이 궁금해 진다. 선생님, 세계사는 왜 배우는 거에요? 라고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니까 선생님이 글쎄, 하고 곰곰히 생각을 하신다.

     우리 같이 생각 좀 해 볼까? 세계사는 왜 배울까? 참, 현이는 국사를 잘 한다고 했었지? 현이는 국사가 왜 좋아?

     그야 물론 우리 민족이 살아 온 모습이니까요. 지금의 나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변화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럼 세계사를 공부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우리 역사는 세계 속의 일부분이고,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세계사도 알 필요가 있다고 말이야. 좋은 것은 앞으로도 쭉 이어나가고 잘못 된 역사는 우리가 바로 잡기 위해서 앞장 서야겠지. 안 그러니?

     역시 선생님은 뭔가 다르다. 이렇게 명쾌한 답을 내려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세계사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걸요. 선생님.

     선생님이 웃으신다. 재미있게 공부를 해 보는 게 어떨까? 예를 들면 <트로이>라는 영화를 찾아보고 내가 그 시대에 있는 장군이라고 생각해 보는 거야. 아, 선생님은 <글레디 에이터>라는 영화도 재미있게 봤는데. 그런 걸 시작으로 세계사에 대한 흥미를 갖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아, 진짜 그럴 거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 지금 읽고 계신 책은 뭐에요?

     이거? 이것도 아주 재미있는 세계의 역사에 관한 책이야. 이렇게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면 현이의 고민도 다 해결할 수 있을텐데 말이야.

     정말요? 그럼 저 그 책 한 번 읽어보면 안되요?

     이 책은 현이가 조금 크면 읽도록 해. 지금은 제대로 된 역사를 공부하고 거기에 맞춰서 조금 큰 후에 읽으면 재미있을 거야.
 

     크면 읽으라니, 선생님은 역시 날 애로 밖에 보지 않으시나 보다. 하지만 나도 어엿한 어른이라고 뭐. 릴리안의 알약. 릴리안의 알약... 흥. 나도 읽을 거다 뭐.

     살금살금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신 틈을 타 선생님 자리로 가서 책을 들춰본다. 아악! 이게 뭐야. 피임약? 그럼 임신을 막는 약? 그런 게 있단 말이야? 콩닥콩닥. 선생님이 이런 것을 보실 줄이야. 그런데 뭐야, 이거. 하하하하하. 마르틴 루터라면 성서를 번역한 사람 아니야.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페스트는 역시 끔찍한 병이었구나. 헨리 8세의 아내는 손가락이 여섯개 있었다고 했는데. 진짜로는 사형을 당했지만 여기선 왕을 몰아내네? 아, 통쾌해라. 하하하. 콜롬버스 하는 짓 좀 봐. 이 책 진짜 웃기네?

     현아! 지금 뭐하는 거니?

     선생님 죄송해요. 너무 궁금해서 봤는데 이 책 너무 웃겨요. 세계 역사가 정말 흥미로운 걸요?

     너 그럼 지금 이 안에 있는 내용을 다 이해했다는 말이야?

     에이, 선생님도 참. 요새 애들은 다 빠르다구요. 그렇게 대답을 했지만 사실 내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선생님이 정말 날 이상한 애로 보시면 어떻하지?
 

     현이의 일기 끝.
 
 

     - 본 일기에 표현 된 사실은 허구이며, 일기에 쓰인 영어 선생님의 미모는 진짜일지도 모른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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