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목받는 작가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이 작가는 호불호가 뚜렷한 것 같아요." 같은 작가가 출산한 그의 산물들은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들처럼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한 작가에 매혹당하면 그의 어떤 작품을 읽어도 다 마음에 들기 마련이고, 한 작가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의 어떤 작품을 읽어도 뭔가 텁텁한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대부분이기에 한 작가가 내어놓은 작품들 사이에서 큰 차이를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 이 사람, 뭔가 특별하다. 이사카 코타로를 처음 만난 것은 <사신 치바>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가볍지만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었지만 꽤나 가볍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의 그 가벼움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었다. 그렇게 이사카 코타로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지만 간혹 보게 되는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이 내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것은 <오듀본의 기도>나 <중력 피에로> 혹은 <칠드런>을 읽은 사람들의 평이 가히 환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쩌면 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최근 번역판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만나보게 되었다. 그리고 책과의 만남을 끝내며 앞으로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어졌다.
     밤새 이 책을 손에서 놓지않을 정도의 각오가 없다면 이 책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밤의 어두움은 사람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든다. 이모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은 인간을 잔혹하게도 만들고, 정직하게도 만들고, 센티멘탈하게도 만들어. 결국 경솔하게 만드는 거야' (p.172)
     이 책은 여름 밤과 매우 잘 어울리는 책이다. 더위를 너무 많이 타 여름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에게도 선풍기를 틀어놓고 배를 훌러덩 깐 채, 수박을 한 입 먹으며 이 책을 만나보라 권해주고 싶다. 더위를 별로 타지 않아 여름 밤만 되면 집 밖으로 흘러 나가고 싶어지는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도 이 책을 한 권 들고 야외로 가 맥주 한 캔에 이 책을 만나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 책은 그렇게 여름 밤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여름 밤의 어두움이 사람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들고, 약간은 끈덕진 바람이 폐 속을 통과하면 딱 이 책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가 된다. 뭔가 미스테리 하면서도 우리의 감성을 끈덕지게 잡고 놓지 않는, 그런 분위기.
 
     "하여간 집오리는 외국 새고, 들오리는 일본 새라고 생각하면 틀리지는 않으니까." (p. 226)
     어쨋든 오리는 오리이다. 집오리든, 들오리든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두 똑같은 오리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우리가 오리라면, 어쩐지 거부감이 생기는 외국인들은 닭이라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우리는 모두 오리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오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코인라커가 삐그덕 문을 열었다.
     아쉽겠지만,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한다면 이 책의 재미는 반감, 아니 거의 사라져 버릴 것 같다. 그래도 줄거리가 궁금하다면 집오리와 들오리가 만나 서로가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만남을 현재의 만남으로, 과거의 기쁨과 슬픔이 현재의 기쁨과 슬픔으로 바뀌어 가는 아주 절묘한 이야기라고 이야기 하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이야기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머리가 아프게 집중하지 않아도 눈은 고정된다. 이제 할 일은 여름 밤 바람이 몸에 달라붙는 것 처럼 우리도 한 마리의 들오리가 되어 집오리에게 달라붙는 것 뿐이다. 코인라커 속 이야기에 숨을 죽이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는 타인의 과거에 익숙해 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시간이며 우리가 겪어낼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귀를 기울이려 애써 보지만 그것 역시도 헛된 노력일 뿐이다. 우리의 귀에 과거의 그 느낌이 들릴리가 없으니까. 단지 우리는 그들의 과거 이야기에 뒷 문을 툭툭 차주면 그만일 뿐이다. 뒷 문을 툭툭 차주며 함께 밥딜런을 흥얼거리면서 지금의 시간은 내가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위안감, 지금의 시간은 당신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지금의 시간일 뿐이라는 안도감을 심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밥딜런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에 눈 감아 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에 눈을 감은 채 우리의 현재와 함께 해주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보자, 집오리 답게 우렁차게 꽥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게 마음 속 말을 들켜버린 것 같은 때가 있다. 들키기 싫었던 마음을 어찌 알고 책이 답을 해 주는 순간,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가도 이내 안정이 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저 쪽도 내게 마음이 있는 건지 모르지만, 아무리 허둥대도, 걱정해도, 기대해도, 어차피 다 제 갈 데로 흘러가겠지. (p.188)

 

     사실 가을바람에 마음이 흔들리던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내주지 않던 마음이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에 휩쓸린 기분이었다. 제목부터 나를 위한 책 같았던 이 책에게 그렇게 마음을 들켜버렸다. 의외로 혼자있기 좋아하는 내게 '혼자 있기 좋은 날'이 찾아 온다면 아마도 그건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후후 웃어보았다.

     기차길 역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자듯♪ 이란 우리의 노래가 떠오를 것 같은 지하철 역 부근 깅코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된 치즈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도 뭔가 불편했던 치즈에게 먼 친척 할머니이자 50살이나 차이 나는 깅코와의 동거는 반가울리 없다. 거기다 그동안 키우던 고양이들에게 모두 키로키라는 이름을 붙여서 방에 붙여놓는 할머니 취향도, 그 나이에도 치즈의 화장품을 노리고 사교댄스를 즐기고 연애도 하는 것 같은 할머니의 행동도 처음엔 다 불가사의였다. 하지만 역시 정이란 무섭다. 사계절을 그 기차길 역 오막살이에서 아기아기 잘도 자듯 보내던 치즈는 그 일년간 어딘가 모르게 성숙해 진다. 사랑도, 이별도, 첫 아르바이트도, 첫 직장도 다 경험해 내며 조금씩 사회의 한 사람으로 자라난다.

 

     혼자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치즈는 참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은근히 심술 궂고 되바라졌지만 외로움에 쉽게 마음을 내주고 마는 성격, 기억을 두고두고 꺼내보며 그 기억 속에서 위안을 찾는 습성들.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것을 미리 두려워 하고 속은 여리면서도 강한 척 온갖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은 사람들이 내게 말하던 내 모습들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런 치즈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싶었다. 괜찮아, 나도 그런 걸 뭐.

     

     하지만 책을 덮으며 위로를 해 주고 싶었던 내 마음과 달리
 왠지 내가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괜찮아,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어. 그러니 니 힘껏 살아봐도 돼. 하는 따뜻한 마음의 위로. 젊었을 때 무엇이든 다 해보아도 된다는 것은 젊기에 상처를 회복하는 힘도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시기에 원하는 것을 다 해 보아야 나이 먹어서 세상에 미련을 갖고 아둥바둥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다. 나이가 먹어서도 깅코 할머니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남기 위해 지금 아프고 힘들어도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며칠 째 마음 속으로 끙끙 앓던 고민들이 조금은 날아간 기분이다. 힘이 들고 슬퍼도 지금의 내 나이라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가 cool병에 걸린 것 같아.' 김애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읽으며 난 중얼거렸었다. 우리는 cool이라는 뜻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단어에 목을 메고 있었으며 '모두가 cool병에 걸린 것 같아'라는 한 소설가의 말인지, 드라마 작가의 말인지를 유행처럼 내 뱉고 있었다. 이 젊은 작가에게 매혹되었다는 문구가 야광 분홍 팬티를 입은 숭숭 난 털다리의 표지를 선전하고 있을 때 난 그 젊은 작가의 책을 보며 '신선'하되 차갑다,고 말 했다. 이게 마치 요즘 문학의 트랜드라도 되는 냥 모두가 쿨한 척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게 싫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 젊은 작가에 대한 내 질투어린 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김애란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땐 '다시'라는 말이 주는 얄미움을 새삼 깨달아 버렸다. 난 '아직' 그대로인데 누군가는 '다시'의 시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 얄미웠다. 그리고 <침이 고인다>라는 얌전치 못한 제목에 콧방귀를 날리며 '어디 한 번 훑어보기라도 해줄게'라는 심정으로 책을 펴 첫 단편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도한 생활'이라는 제목의 첫 단편에서 난 '다시' 김애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름이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작가 자체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훨씬 따뜻해 진 분위기와 훨씬 섬세해진 감성에서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첫 책을 낸 후 가졌을 고뇌의 시간들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녀의 책을 사들고 읽는 내내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책에 수록 된 여덟개의 단편을 보며 김애란의 장편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단편을 읽어가며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무엇이 머리 속에 하나씩 자리잡히기 시작했다. <달려라 아비>에 수록된 단편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던 '방', '가족' 그리고 '길'. 이 것들이 각각의 단편에 새로운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에 다뤄지지 않은 소재는 없지만 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던 말이 생각났다. 김애란에게 소재는 공통되지만 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무궁무진하다는 느낌, 바로 이 작가가 가진 힘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취업, 사랑, 성장, 변화 등 현대를 살아가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이 끊임 없이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담담하고도 애정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젊은 작가들밖에 쓸 수 없는 문제이며 이 작가들이 해 줘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집이 아닌 '방', 그것도 내 사적인 공간이 아닌 사회로 나가야 하는 초조함이 반영된 듯한 좁고 음습한 기운이 서려있는 방에서 취업을 준비하거나 별볼 일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나가는 비정규 사회인들은 꿈을 꾸고 좌절한다. 그리고 그런 비정규 사회인들의 주변엔 삶을 위해 '투쟁'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안티테제를 제공하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다. 하지만 지구 속에서 모든 것은 돌고 돌듯 이 비정규 사회인들의 삶조차 결국 그런 '투쟁'을 쫓는 것처럼 보여진다.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어쩌면 이 책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조금은 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내가 투쟁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닮은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하지만 나와 다르게 더 치열하게 사회에 적응해 나가려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자들의 아픔이 슬퍼보이면서도 빛나 보이기 때문이었지도. 과연 이 시대엔 몇%의 승자들이 존재하는 걸까. 개개인의 삶을 승자와 패자로 나눠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누군가를 나눠놓는 사회의 제도 속에서 과연 몇 %나 승리했다고 보여질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 제도 속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애쓰고 좌절하는 청춘들이 더 많음을 승자의 역사가 역사로 남는 시대의 우리들은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역시 사회의 제도 속에서 패자로 나뉘어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40대의 어떤 분이 작가를 꿈꾸던 20대의 여성이 쓴 습작을 보고 "글에 나 20대에요,라고 씌여있는 것 같아서 공감하기 힘들었어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난 그 나이여서 그런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나이가 지난다면 그런 글 역시 시간 속에 사라져 버릴 거라고. 김애란의 책 역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소설가로서 더욱 발전해 갈 것이고 더욱 원숙해 질 것이다. 그런 그녀의 역사 속에 그 나이여서 쓸 수 있는 이런 소설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모두의 20대에 대한 기록임과 동시에 그녀의 20대에 대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그녀와 함께 20대를 겪고 있는 나이라서 그녀의 책에 묘하게 위로가 되고 공감을 받은 독자들에 대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나 역시도 후에 이 책을 다시 펴보며 지금의 느낌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올 때면 늘 곤란했었다. 딱히 한 작가한테 꽂혀 그 작가의 책을 다 읽는 습성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난 늘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 중 가장 마음이 움직였던 책의 작가를 이야기 하곤 했다. 하지만 김연수라는 작가를 알고 난 후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는 작가의 한 책에 마음을 허락하고 난 후,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 질문엔 여지없이 김연수를 꼽았다. 그리고 그 책 이후 김연수의 책을 한권한권 만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김연수의 책들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김연수 책 중에서 난 이 책을 감히 최고로 꼽고 싶다. 그동안 내가 만나보길 원하던 책은 바로 이런 책이었다.

     만약 이 책을 읽었다면 반드시 서평을 쓸 것을 당부하고 싶다. 작가는 작가로서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만났다면 반드시 자신의 목소리로 서평을 쓰기를. 서평을 쓸 수 없다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 번 써보기를. 

 

     작가의 바람대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어우러지는 이야기는 꼭 한 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듣는 기분이다. 마치 한 번 듣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같다고나 할까. 이 엄청난 이야기 속에 푹 빠지고 나면 이 이야기 속에 우리 인생이 깃들어 버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다양하고 깊은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쩐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p. 378)

    

     할아버지가 태우지 못한 입체 누드사진과 대 서사시, 자살해 버린 정민의 삼촌의 과거,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이란 비디오, 그 비디오의 주인공인 이길용 그리고 강시우, 이길용과 정을 나눈 한기복과 이상희, 강시우와 정을 나눈 레이,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아버지와 아버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베르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은 우주가 만들어 놓은 운명에 이끌리듯 하나로 연결되고 마치 이 지구가 탄생될 때부터 만나야 할 것을 정해놓은 것처럼 서로에게 흘러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은 서로에게 묶여있지만 혼자이고, 혼자이지만 절대 혼자일 수 없는 그 어떤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인생은 이 처럼 모순인 것을, 이들에게 인생은 더한 모순을 안겨주고 그 의미는 절대 그들 혼자서는 풀 수 없다. 그것은 시대와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지 못한 채 보여지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다. 마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기억 왜곡 연구같이 사람들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도 모르는 새 진실에서 멀어지고 왜곡된다. 하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이다. 어차피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p.384) 이니까.

 

     존재에 대한 질문부터 여러 세대에 걸친 다양한 시대사를 보여주는 이 책은 작가의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 소설을 시작하며 작가가 했을 치열한 준비과정을 입증하는 것이다. 시대 사실과 더불어 음악에서부터 도서, 영화 심지어는 히로뽕의 제작과정까지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왠지 음울하고 어두울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요소들과는 달리 책은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세상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고, 우리 자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우리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희망은 존재하고 그 희망의 한 가운데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작가는 놓지 않고 있다.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 밖에 없다.(p.65) 그렇기에 유한한 우주 안에서 사람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혼자일 수 없고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한다. 정민과 나와의 사랑, 이길용과 이상희의 사랑, 강시우와 레이의 사랑, 베르크와 안나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낳아준 또 누군가의 사랑... 이 모든 것은 사랑으로 연결되었고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 사랑 덕에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과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데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우는 존재이고 그 울음 조차 사랑이 다시 웃게 해주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모든 열망은 결국 우리의 열망이고 나의 열망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열망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간을 보낸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가 겪은 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정민의 할머니가 겪어보지도 못한 성경 속 이야기를 너무 실감나게 했듯 이 이야기들은 결코 남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의 재능과 노력에 새삼 질투가 났다. 나보다 13살 많은 작가의 이런 고뇌를 13년 후에 내가 가질 수 있길 이렇게 바라보긴 처음이었다. 책은 덮어졌지만 아직 내 마음은 책을 따라 덮여지지 못하고 책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기분이다. 힘들게 이십대를 보내던 날 위로했던 김연수의 전 책처럼 이 책 역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결국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사람은 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거라고 힘을 준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이야기를 읽은 내가 언젠가 나의 이야기를 멋지게 펼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7-25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건 상자가 아니야 - 2007년 닥터 수스 상 수상작 베틀북 그림책 89
앙트아네트 포티스 글 그림, 김정희 옮김 / 베틀북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기토끼야, 상자 안에서 뭐해?

 

     이건 상자가 아니야! 상자가 아니라구!

     어렸을 땐 왜 그랬잖아요, 작은 것 하나에 너무너무 신났잖아요. 내 한 몸 들어갈 상자만 있으면 그건 집도 됐었고, 자동차도 됐었고 작은 동산도 됐었잖아요. 어른들한텐 단지 상자였던 그 조그만 종이가 내겐 얼마나 큰 상상도구였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살짝 웃음도 나면서 그립고 그러잖아요.

     내게 작은 상자가 생긴다면 지금은 어떻게 할까요? 착착 접어 재활용박스에 척 넣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 박스를 들고 들어가고 올라가고 씨름을 한다면 아이들 몰래 치워버릴지도 몰라요. 집이 지저분해진다고요. 하지만 우리도 그랬잖아요 그 땐.

 

     사실 더 많은 것들이 될 수 있었어요. 그 상자는 집이었고 차였고 동산이었지만 사실 더 많은 것들이 될 수 있었을 거에요. 날 로보트로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테고 비행기가 될 수도 있었을테고 내 책을 정리해두는 정리함이 될 수도 있었을 거에요. 그리고 어쩌면 그 모두였을지도 몰라요, 지금 우리에겐 잘 기억나진 않지만.

     조금 오래 된 얘기이긴 하지만 한 개그맨이 사물흉내개그라는 걸 했던 것, 기억 나요? 난 그 사람이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그 사람은 우리가 사물을 가지고 온갖 것을 표현하려 했던 것 처럼 우리의 몸을 가지고 온갖 사물을 흉내내려 했었어요. 난 웃으면서도 그 사람의 기발한 생각에 무릎을 쳤더랬죠. 어쩌면 그 사람은 어렸을 때 꽤나 장난꾸러기라서 작은 상자 하나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올렸을 수도 있죠. 그런 친구와 놀았다면 내 어린 시절이 좀 더 유쾌해 졌을 것 같기도 해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손을 움직이는 것이 두뇌 개발에 좋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좋은 재료, 비싼 재료로 놀게끔 하려고 하죠. 하지만 이렇게 작은 상자 하나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것, 그게 정말 재미있는 놀이이자 개발 학습이 아닐까요? 우리 어린 시절엔 정말 그런 것에 행복하지 않았나요?

     어른이 되어가며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자주 날 슬프게 해요. 하지만 난 이 책을 보며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작은 충만감을 다시 한 번 깨우칠 수 있었어요. 어른이 되어 만나는 그림책은 참 행복해요. 현실의 고된 마음을 잠시 지나간 시간으로 여행시켜 주거든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당장 옆에 있는 작은 소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상자에 들어가 함께 뒹굴며 더 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주는 건 어떨까요? 그 어떤 비싼 장난감보다, 어떤 좋은 장난감보다 훨씬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에요.

     말했잖아요. 이건 상자가 아니야! 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