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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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올 때면 늘 곤란했었다. 딱히 한 작가한테 꽂혀 그 작가의 책을 다 읽는 습성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난 늘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 중 가장 마음이 움직였던 책의 작가를 이야기 하곤 했다. 하지만 김연수라는 작가를 알고 난 후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는 작가의 한 책에 마음을 허락하고 난 후,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 질문엔 여지없이 김연수를 꼽았다. 그리고 그 책 이후 김연수의 책을 한권한권 만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김연수의 책들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김연수 책 중에서 난 이 책을 감히 최고로 꼽고 싶다. 그동안 내가 만나보길 원하던 책은 바로 이런 책이었다.

     만약 이 책을 읽었다면 반드시 서평을 쓸 것을 당부하고 싶다. 작가는 작가로서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만났다면 반드시 자신의 목소리로 서평을 쓰기를. 서평을 쓸 수 없다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 번 써보기를. 

 

     작가의 바람대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어우러지는 이야기는 꼭 한 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듣는 기분이다. 마치 한 번 듣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같다고나 할까. 이 엄청난 이야기 속에 푹 빠지고 나면 이 이야기 속에 우리 인생이 깃들어 버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다양하고 깊은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쩐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p. 378)

    

     할아버지가 태우지 못한 입체 누드사진과 대 서사시, 자살해 버린 정민의 삼촌의 과거,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이란 비디오, 그 비디오의 주인공인 이길용 그리고 강시우, 이길용과 정을 나눈 한기복과 이상희, 강시우와 정을 나눈 레이,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아버지와 아버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베르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은 우주가 만들어 놓은 운명에 이끌리듯 하나로 연결되고 마치 이 지구가 탄생될 때부터 만나야 할 것을 정해놓은 것처럼 서로에게 흘러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은 서로에게 묶여있지만 혼자이고, 혼자이지만 절대 혼자일 수 없는 그 어떤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인생은 이 처럼 모순인 것을, 이들에게 인생은 더한 모순을 안겨주고 그 의미는 절대 그들 혼자서는 풀 수 없다. 그것은 시대와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지 못한 채 보여지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다. 마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기억 왜곡 연구같이 사람들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도 모르는 새 진실에서 멀어지고 왜곡된다. 하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이다. 어차피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p.384) 이니까.

 

     존재에 대한 질문부터 여러 세대에 걸친 다양한 시대사를 보여주는 이 책은 작가의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 소설을 시작하며 작가가 했을 치열한 준비과정을 입증하는 것이다. 시대 사실과 더불어 음악에서부터 도서, 영화 심지어는 히로뽕의 제작과정까지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왠지 음울하고 어두울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요소들과는 달리 책은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세상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고, 우리 자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우리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희망은 존재하고 그 희망의 한 가운데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작가는 놓지 않고 있다. 사랑은 모든 인류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고, 또 그러므로 이 우주는 유한할 수 밖에 없다.(p.65) 그렇기에 유한한 우주 안에서 사람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혼자일 수 없고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한다. 정민과 나와의 사랑, 이길용과 이상희의 사랑, 강시우와 레이의 사랑, 베르크와 안나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낳아준 또 누군가의 사랑... 이 모든 것은 사랑으로 연결되었고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 사랑 덕에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과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데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우는 존재이고 그 울음 조차 사랑이 다시 웃게 해주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모든 열망은 결국 우리의 열망이고 나의 열망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열망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간을 보낸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가 겪은 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정민의 할머니가 겪어보지도 못한 성경 속 이야기를 너무 실감나게 했듯 이 이야기들은 결코 남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의 재능과 노력에 새삼 질투가 났다. 나보다 13살 많은 작가의 이런 고뇌를 13년 후에 내가 가질 수 있길 이렇게 바라보긴 처음이었다. 책은 덮어졌지만 아직 내 마음은 책을 따라 덮여지지 못하고 책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기분이다. 힘들게 이십대를 보내던 날 위로했던 김연수의 전 책처럼 이 책 역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결국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사람은 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거라고 힘을 준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이야기를 읽은 내가 언젠가 나의 이야기를 멋지게 펼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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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5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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