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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목받는 작가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이 작가는 호불호가 뚜렷한 것 같아요." 같은 작가가 출산한 그의 산물들은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들처럼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한 작가에 매혹당하면 그의 어떤 작품을 읽어도 다 마음에 들기 마련이고, 한 작가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의 어떤 작품을 읽어도 뭔가 텁텁한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대부분이기에 한 작가가 내어놓은 작품들 사이에서 큰 차이를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 이 사람, 뭔가 특별하다. 이사카 코타로를 처음 만난 것은 <사신 치바>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가볍지만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었지만 꽤나 가볍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의 그 가벼움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었다. 그렇게 이사카 코타로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지만 간혹 보게 되는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이 내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것은 <오듀본의 기도>나 <중력 피에로> 혹은 <칠드런>을 읽은 사람들의 평이 가히 환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쩌면 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최근 번역판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만나보게 되었다. 그리고 책과의 만남을 끝내며 앞으로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어졌다.
밤새 이 책을 손에서 놓지않을 정도의 각오가 없다면 이 책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밤의 어두움은 사람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든다. 이모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은 인간을 잔혹하게도 만들고, 정직하게도 만들고, 센티멘탈하게도 만들어. 결국 경솔하게 만드는 거야' (p.172)
이 책은 여름 밤과 매우 잘 어울리는 책이다. 더위를 너무 많이 타 여름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에게도 선풍기를 틀어놓고 배를 훌러덩 깐 채, 수박을 한 입 먹으며 이 책을 만나보라 권해주고 싶다. 더위를 별로 타지 않아 여름 밤만 되면 집 밖으로 흘러 나가고 싶어지는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도 이 책을 한 권 들고 야외로 가 맥주 한 캔에 이 책을 만나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 책은 그렇게 여름 밤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여름 밤의 어두움이 사람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들고, 약간은 끈덕진 바람이 폐 속을 통과하면 딱 이 책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가 된다. 뭔가 미스테리 하면서도 우리의 감성을 끈덕지게 잡고 놓지 않는, 그런 분위기.
"하여간 집오리는 외국 새고, 들오리는 일본 새라고 생각하면 틀리지는 않으니까." (p. 226)
어쨋든 오리는 오리이다. 집오리든, 들오리든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두 똑같은 오리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우리가 오리라면, 어쩐지 거부감이 생기는 외국인들은 닭이라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우리는 모두 오리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오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코인라커가 삐그덕 문을 열었다.
아쉽겠지만,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한다면 이 책의 재미는 반감, 아니 거의 사라져 버릴 것 같다. 그래도 줄거리가 궁금하다면 집오리와 들오리가 만나 서로가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만남을 현재의 만남으로, 과거의 기쁨과 슬픔이 현재의 기쁨과 슬픔으로 바뀌어 가는 아주 절묘한 이야기라고 이야기 하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이야기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머리가 아프게 집중하지 않아도 눈은 고정된다. 이제 할 일은 여름 밤 바람이 몸에 달라붙는 것 처럼 우리도 한 마리의 들오리가 되어 집오리에게 달라붙는 것 뿐이다. 코인라커 속 이야기에 숨을 죽이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는 타인의 과거에 익숙해 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시간이며 우리가 겪어낼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귀를 기울이려 애써 보지만 그것 역시도 헛된 노력일 뿐이다. 우리의 귀에 과거의 그 느낌이 들릴리가 없으니까. 단지 우리는 그들의 과거 이야기에 뒷 문을 툭툭 차주면 그만일 뿐이다. 뒷 문을 툭툭 차주며 함께 밥딜런을 흥얼거리면서 지금의 시간은 내가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위안감, 지금의 시간은 당신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지금의 시간일 뿐이라는 안도감을 심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밥딜런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에 눈 감아 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에 눈을 감은 채 우리의 현재와 함께 해주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보자, 집오리 답게 우렁차게 꽥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