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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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수위 아저씨를 생각해 보자, 이 책에 대한 감상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일 년여 전, 나는 지금 살고 있던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난 그 전에 살고 있던 곳의 수위 아저씨를 매우 좋아했다. 아저씨는 언제나 웃었으며 언제나 정다웠고 언제나 친절했다. 난 가끔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간 후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저씨는 좋은 아버지일 것이며 좋은 남편일 것이라 생각했다. 난 그 아파트에서 6년 정도를 살았고, 아저씨는 6년간 나의 아파트의 수위였다. 일 년여 전,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내가 제일 낯설었던 것은 지금의 수위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늘 퉁명스러웠고,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수위아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툴툴거렸고, 가끔은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흠칫 놀라게 된 것은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던 한 장의 종이 탓이었다. '비가 오니 불리수거는 하지 안겟읍니다. 경비' 난 그 종이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저씨가 이 아파트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을 감정, 학교를 간다고 토스트를 입에 물고 뛰어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느꼈을 감정, 하루가 멀다하고 막 일어난 모습으로 택배를 찾으러 오는 백수인 것 같은 여자애를 보는 감정. 물론 내가 사는 아파트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도 아니고, 그저 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지만 아저씨는 여기서도 얼마나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난 그 종이 한 장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저씨는 정말 괴리감을 느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범주화 시킨 '수위'라는 이미지에 고정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취향'을 감추려 한껏 보호막을 치고 살아가는 그르넬 가 7번지 아파트의 수위 르네. 그녀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수위'같지만 사실 톨스토이를 읽고 모차르트를 읽고 철학에 밝은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소화해 내기 위해 그녀는 철저히 '보통'의 수위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천재 소녀라는 것은 피곤한 일임을, 삶이란 모순 투성이에서 존재하는 것임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열두살 팔로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영리함을 감추려 한껏 보호막을 치고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녀의 눈에 어른들은 다 교만하고 허풍덩어리이며 별 볼일 없는 존재이다. 르네라는 영혼의 자매와 유일하게 존경할만한 어른인 오주를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그들의 삶에 오주라는 동양인(일본인)남자가 등장하고 그 남자는 르네의 가시를, 팔로마의 가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시 속의 진실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 사람은 다르다.

 

     우리는 외관이나 그의 지위로 사람들의 지적수준에 대해 얼마나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가... (p.180)

     그렇다. 르네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성급한 결론들 때문에 그녀는 가시로 자신을 무장한 고슴도치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열두살 팔로마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다. 사회적인 지위, 외모, 나이 등은 우리가 타인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그것들을 배제하지 않아도 우리가 누군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그래, 우리는 노력해도 하지 못할 일을 오히려 편견에 쌓인 채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가. 편견에 쌓인 사람들에 순응해 주는 고슴도치, 그 속을 바라보는 일은 의외로 쉬운 일임에도 25년간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래의 문체가 그러한 것인지, 독특한 소재와 재미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정도 몰입을 하다보면 눈과 머리에 불편한 문체는 술렁술렁 넘어가 버린다. 진짜 수위 아줌마가 이 글을 쓰며, 이 글을 어려워 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에 그냥 나도 이해하는 척 해 버리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그 한 장의 종이로 모든 것을 평가해버렸던 그런 사람인걸.

     흥미롭게 넘어가던 책의 결말이 조금 아쉬운 것도 읽기 쉬운 문체가 아니라는 이 책의 단점에 한 몫은 해 준다. 하지만 이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주 상큼한 오렌지 맛이 난다. 손으로 까기엔 조금 버거운 단단한 껍질과 코를 자극하는 새콤한 향기와는 달리 상큼하고 달콤한 햇살을 머금은 오렌지의 맛. 그러고보니, 오렌지와 고슴도치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걸 그동안 눈치채지 못한 것은 과일과 동물을 구분하던 우리의 고정관념 그리고 편견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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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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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  by.아도르노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물 한잔을 마시고 요구르트를 마셨다. 빈 속에 들어가는 액체의 느낌은 묘하다. 뭔가 내 안에서 출렁대는 느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 옆에 앉아 무심코 텔레비전을 들여다 봤다. 텔레비전에선 한 가수가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병원에 가서 건강을 체크하고 있었다. 폭식으로 인한 복부비만의 위험수치, 그 가수는 그런 판단을 받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어제 마침 이 책의 앞 부분에 수록된 해제와 서문만을 읽은 터였다. 그 가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버거운 탓이었다.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어제 밤에 먹던 스낵에 손을 뻗으며 다시 이 책을 펼쳤다.

 

     초등학교 시절, '소말리아'의 참상을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소말리아'의 아이들은 삐쩍 마른 몸에 맞지 않게 배가 유독 튀어 나와 있었으며 머리는 불균형하게 컸다. 아이들은 그 큰 머리와 튀어 나온 배를 흔들며 그 연약한 팔 다리로 걸었고, 그나마 힘이 없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도 없어보였다. 파리는 아이들 주변을 붕붕거렸고 그 누구도 그 파리를 향해 귀찮다는 손짓도 하지 않았다. 그 화면을 보며 그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사실 우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 였으니까. 그저 누군가 만들어 낸 텔레비전 쇼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화면을 보여주며 세상엔 이렇게 굶어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니 밥을 남기면 안된다고 했다. 왠지 밥을 남기지 못하게 하려는 선생님들의 지도방편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 후로 아이들의 기억에서 소말리아란 기아가 극성을 부리는 구제받아야 할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를 놀리는 소재가 되는 나라였다. 기아가 지금 지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라 하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기아에 무지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마련. 기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 책 달랑 한 권으로 기아에 대해 인식한단 말인가. 분명히 이 책은 먹고 살만하고, 집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심심치 않게 방출되는 사람들에게 읽힐 터이고, 그 사람들은 나처럼 집에서 스낵을 집어 먹으며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아, 기아가 정말 심각하구나."

     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것도 사실 그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먹을 것이 풍성한 곳에서 살아가는데 지구 어딘가에서는 10초에 한명 꼴로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지, 이 모순된 삶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이 삶의 정체를 안다해서 우리가 우리 옆에 쌓여있는 음식들을 외면하지는 않겠지만, 그 음식들을 박스에 담으며 너희는 아프리카로 가 누군가를 살리거라,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진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우리들이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다가는 곧 우리도 굶주림에 허덕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쓴 장 지글러는 교수이며 기아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깊숙이서 기아의 진상을 파헤친다. 절대 어려운 인문서가 아니며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방식으로 아주 쉽게 쓰여있다. 책은 금새 읽힌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두고두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사리사욕에 물들어 있는지, 그리고 소수 몇%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그 지배층들의 피해자는 비단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그들의 희생자이고 그들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 UN에게 구걸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그들의 하극상을 파헤치며 세상에 알아달라고 말한다. 이 교수 역시 기아를 체험해 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기아를 체험하며 이런 글을 쓸 수는 없다. 누가 기아 속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정말 이상한 얘기같지만, 한 그룹의 진실은 그 그룹의 밖에서 그 그룹을 연구한 사람에 입을 통해 전달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기아에 의해 죽어가고 있고 기아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기아는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때론 경제적인 이유로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진실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불쌍하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진상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수많은 식료품들에 눈길을 돌리며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어쩌면 그것은 소수의 권력자들 때문이 아니라 다수의 무관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정말, 남녀노소 불문하고 필독도서로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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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1:3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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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갑자기 울컥하는 순간이 있다. 책 내용이 슬퍼서보다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탐이 날 때가 주로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울컥한 것은 책의 내용 탓이 아니었다. 역사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나의 '바닥'을 보며 조금 힘겹게 책을 읽은 후, 작가의 말을 봤을 때, 그 때 난 그만 울컥 해 버렸다. 이 소설을 위해 역사 소설가가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작가는 얼마나 멋지단 말인가.
 

     김탁환 작가를 좋아하는 지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책 한권으로 이 작가를 먼저 만날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난 역사를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반 년 정도가 지나 이 책을 만나며 난 또 똑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역사를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아, 내 바람은 얼마나 헛되고 무의미하냐는 말이다. 바람을 현실로 만들려는 노력이란 내게 조금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열하일기'를 완독해 봐야겠다는 바람도 헛되고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또 그것을 바랄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갈망을 이룬 듯 하다. '읽는 인간'이 아니라 온전히 '쓰는 인간'이 되는 것. 박범신의 <주름>이라는 책에서 주인공 김진영은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한 시인 천예린의 시집을 발로 밟아 버린다. 그녀가 결국 한권의 책으로 남아버렸음에 그녀의 죽음에 배신감을 느낀 후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난 이 책을 통해 이 작가가 매설가로 남아버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작가는 김탁환으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열하일기> 속 이명방으로 이 책을 쓴 것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지배했다. 자신만의 금서를 가지고, 그 책으로 인하여 또 다른 금서를 세상에 내놓는 것을 열망하는 것. 그것이 모든 매설가가 가지는 열망이라 생각한다. 그 금서로 인해 세상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또 다른 금서를 내놓고자 하는 힘. 내게도 그런 금서가 있었던가.

 

     이 책, 그리고 백탑파를 배경으로 한 <방각본 살인사건>과 <열녀문의 비밀>, 이 책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작가가 쏟아부었을 시간과 노력이 책을 읽음으로서 전해지는 듯 했다. 21세기에 살면서 그 시대에 살고자 노력했을 터이며, 소설 속 인물이 되고자 노력했을 터이며, 한 사람의 매설가가 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작가의 노력과 그 노력의 산물들이 어떤 이에게는 하나의 금서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에 작가의 말을 읽으며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글씨를 쓸 수 있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글을 써보고자 하는 이는 김탁환이란 작가의 말에 책 속 내용보다 더 울컥하게 될 것이다.

     '열하일기'라는 금서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세상의 시련을 알게 되고 그 시련을 이겨낸 한 사내의 행적이 흥미로우면서도 너무나 매설가스러웠다. 이명방이 사건을 해결하리라 굳게 믿은 내 믿음에 대한 배신은 오히려 자극적이었고 뒤로 갈 수록 책을 읽는 속도감도 부여했다. 주석이 많이 달려 책을 읽는 것을 좀 방해하긴 했지만, 어떠랴, 영어도 아닌 한글로 써 있는 이 책을 그냥 이명방과 함께 사건 속에 빠져 읽는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김탁환작가의 책을 읽으면 매설가의 꿈을 더 지독하게 꾸게 되는 것 같다. 나만의 금서를 갖고 그 금서를 통해 또 하나의 금서를 세상에 내 놓을 수 있다면 어떤 삶이 그보다 더 행복하랴.

     아름다워라, 책과의 사귐을 기억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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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북 - 젊은 독서가의 초상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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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책장만 보면 흘깃거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소장한 책으로 그 사람을 짐작해 보기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난 종종 누군가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을 하면, 다른 것보다 그 집의 책장에 먼저 눈이 가는 편이다. 어떤 책이 꽂혀있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관심, 취미등을 알 수 있어서 백마디를 나눈 것보다 그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사람의 책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족들의 책일 경우도 있어서 쉽게 단정지으면 안 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간혹 아는 사람들의 책 기록장을 살펴보며 그 기록장 안에서 내가 읽은 책들을 헤아려 본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친숙해지는 기분, 무언가 대화의 거리가 생긴 기분이 좋다.

 

     서평으로 퓰리처 상까지 받았다는 저자의 프로필을 살펴보며, 이 사람이 대단한 독서가일 것이라는 짐작은 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책장이 궁금해 지는 것이다. <Before sunset>에 나오는 헌책방 같은 분위기일까, 혹은 정돈 잘 된 고풍스러운 서가일까... 이 사람은 거기서 어떻게 앉아 책을 읽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읽는 장소는 통창이 있는 한적한 커피숍, 혹은 햇살이 가득 비추는 날의 우리집 거실 소파. 앉는 것이 아니라 소파에 몸을 맡긴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포즈로 소파에 파고 들어가 햇살 속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나른하게 책 속 세계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기분이 더 없이 좋다.

    

     사람이 책을 만나고 빠지는 시기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중독처럼 책에 빠져들었다. 책 속 내용으로 상상해 보면, 작가가 '책을 읽어야지' 혹은 '책은 재밌구나'에 의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책이 마치 저자에게 한권씩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부모가 억지로 책을 읽게 하는 아이는 책에서 되려 멀어진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또 내가 아는 한 중학생 아이만 해도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책을 읽으라는 압박을 받은 결과 현재 약간의 난독증 증세를 보이고 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저자의 어린 시절은 풍요롭지 못했고 그 결과 책을 사줄 정도로 집안이 여유롭지도 못했으며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다. 자신이 집착할 정도로 좋아하는 일에 타인이 방해를 하면 그것에 대한 열정이 더더욱 불타오르는 법. 저자 역시 더 책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저자의 일생에는 그를 책읽는 삶으로 자연스레 인도해 준 몇몇 선생님이 있다. 난 그 선생님들의 지도 방식에 감탄했고 내게도 그런 선생님이 한 분 계셨음을 떠올렸다. 단, 우리는 그들의 삶처럼 사제 관계가 친밀하지 못했을 뿐.

     마이클 더다의 이 책 속에는 그가 읽은 책들이 많이 기록 되어 있다. 이 책은 서평 책은 아니다. 그가 읽은 책에 대해서는 제목과 그의 일상에 끼친 아주 간단한 영향들이 적혀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읽은 책 리스트를 훔치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한다. 이 독서광의 리스트에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음을 반성하고 그의 독서량을 질투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책은 온통 dog-ear로 가득했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되풀이 해보고 싶은 부분이나 혹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는 페이지 끝을 접어놓고 하는 내 버릇이 책을 온통 접어두게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또 다시 만나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독서를 하는 시기는 40세까지이고 그 이후는 그동안의 독서를 되풀이 해 보는 시간이라고 저자와 더불어 옮긴이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40세까지는 그 후에 다시 읽을만한 책들을 쌓아두는 시간일 것이다. 이 책은 아마 그 시간에 함께 쌓일 것 같다. 물론 한 사람의 생을 다루고 있고, 자서전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없지만은 않다. 하지만 책이 그의 인생에 미친 영향들을 보고 있자면, 고쳐야만 하는 내 책 편식 습관과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독서의 방향들이 조금은 보이는 것도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권해보고 싶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임에는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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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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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소위 '말빨'로 이성을 공략한다는 남자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여자가 뒷 꿍꿍이가 뻔히 보이는 저런 공략에 넘어간단 말인가. 그런데 넘어가는 여자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뻔한 여자일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있었다. 청산유수같은 말로, 잘나지 못한 외모를 단단히 감추고 여자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한 선배가(아, 그러고 보니 그 선배는 돈도 많았다.). 그 선배의 화려한 여자 관계를 보며 난 절대 저런 사람에게 넘어가는 속 빈 강정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결국은 여자였구나 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나 역시 한 남자의 '말빨'에 홀딱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남자, 알랭 드 보통.

 

     보통씨의 말재간은 정말 보통이 아니다. 보통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많이 봤지만 보통을 좋아하는 남자들을 많이 보지 못한 것은 보통 아저씨의 이런 말재간이 한 몫을 할 것이다. 여자에게는 혹하고 싶은 보통의 매력이 아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런 보통 아저씨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기쁘기 그지 없었다. (물론 증정도서의 압박도 나를 자극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치 않고 가뿐히 손에 넣었다. 나의 보통씨이니 그 정도의 출혈은 감안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통씨의 신작과 마주했다.

 

     <행복의 건축> 이 얼마나 달달한 제목이란 말이냐. 그동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등의 제목으로 독자들을 현혹했던 보통씨가 이번엔 <행복의 건축>을 말한다. (물론 번역과정에서 또 출판사의 홍보전략 탓에 원제와 달라졌다해도 독자를 현혹한다는 것에는 의의를 둘 수 없다. 하지만 솔직히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제목은 심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꼭 우리가 영구히 거주하거나 우리 옷을 보관해주어야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p.111)

     보통씨에게 집은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있는 것이 아닌, 심리적이며 육체적인 피난처 역할이다. 그리고 보통씨의 이 집에 대한 개념은 건물을 향하는 태도와도 일치한다. 건물은 어떻게 보면 미(美)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건물이 창조되는 동시대의 사람들의 연약한 점을 보안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며, 그 안에 살게 될 사람들의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하는 대상이 된다. 비록 우리가 멋진 집에 산다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역시 보통씨는 그런 사람이다.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위에, 자신만의 명료한 사상과 감정을 복합시킬 수 있는. 이 책을 건축에 비유한다면 보통의 사상과 지식이라는 토대 위에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틀을 잡고 그 위에 보통 특유의 감정과 언어로 빚어놓은 세련된 모던 건물의 느낌이다. 시골 오두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동경해보고 꿈꿔봤을만한 건물. 하지만 다른 건물과 동 떨어진 이질적인 느낌이 아닌 그 어떤 것과도 맛있게 버물어질 수 있을 법한 신비한 매력. 이런 점이 보통씨를 사랑받는 작가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만나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책 내내 우리의 건축이 나와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 나라이고 내 문화여서 그런지 몰라도 난 한옥의 기와가 주는 그 유한 곡선미와 대청마루의 자연친화적인 점이 참 마음에 든다. 그런 한옥의 매력을 보통씨가 몰랐다는 것이 서운하기만 했다. 꼭 상대가 모르는 짝사랑을 하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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