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 by.아도르노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물 한잔을 마시고 요구르트를 마셨다. 빈 속에 들어가는 액체의 느낌은 묘하다. 뭔가 내 안에서 출렁대는 느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 옆에 앉아 무심코 텔레비전을 들여다 봤다. 텔레비전에선 한 가수가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병원에 가서 건강을 체크하고 있었다. 폭식으로 인한 복부비만의 위험수치, 그 가수는 그런 판단을 받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어제 마침 이 책의 앞 부분에 수록된 해제와 서문만을 읽은 터였다. 그 가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버거운 탓이었다.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어제 밤에 먹던 스낵에 손을 뻗으며 다시 이 책을 펼쳤다.
초등학교 시절, '소말리아'의 참상을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소말리아'의 아이들은 삐쩍 마른 몸에 맞지 않게 배가 유독 튀어 나와 있었으며 머리는 불균형하게 컸다. 아이들은 그 큰 머리와 튀어 나온 배를 흔들며 그 연약한 팔 다리로 걸었고, 그나마 힘이 없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도 없어보였다. 파리는 아이들 주변을 붕붕거렸고 그 누구도 그 파리를 향해 귀찮다는 손짓도 하지 않았다. 그 화면을 보며 그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사실 우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 였으니까. 그저 누군가 만들어 낸 텔레비전 쇼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화면을 보여주며 세상엔 이렇게 굶어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니 밥을 남기면 안된다고 했다. 왠지 밥을 남기지 못하게 하려는 선생님들의 지도방편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 후로 아이들의 기억에서 소말리아란 기아가 극성을 부리는 구제받아야 할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를 놀리는 소재가 되는 나라였다. 기아가 지금 지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라 하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기아에 무지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마련. 기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 책 달랑 한 권으로 기아에 대해 인식한단 말인가. 분명히 이 책은 먹고 살만하고, 집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심심치 않게 방출되는 사람들에게 읽힐 터이고, 그 사람들은 나처럼 집에서 스낵을 집어 먹으며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아, 기아가 정말 심각하구나."
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것도 사실 그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먹을 것이 풍성한 곳에서 살아가는데 지구 어딘가에서는 10초에 한명 꼴로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지, 이 모순된 삶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이 삶의 정체를 안다해서 우리가 우리 옆에 쌓여있는 음식들을 외면하지는 않겠지만, 그 음식들을 박스에 담으며 너희는 아프리카로 가 누군가를 살리거라,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진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우리들이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다가는 곧 우리도 굶주림에 허덕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쓴 장 지글러는 교수이며 기아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깊숙이서 기아의 진상을 파헤친다. 절대 어려운 인문서가 아니며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방식으로 아주 쉽게 쓰여있다. 책은 금새 읽힌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두고두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사리사욕에 물들어 있는지, 그리고 소수 몇%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그 지배층들의 피해자는 비단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그들의 희생자이고 그들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 UN에게 구걸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그들의 하극상을 파헤치며 세상에 알아달라고 말한다. 이 교수 역시 기아를 체험해 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기아를 체험하며 이런 글을 쓸 수는 없다. 누가 기아 속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정말 이상한 얘기같지만, 한 그룹의 진실은 그 그룹의 밖에서 그 그룹을 연구한 사람에 입을 통해 전달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기아에 의해 죽어가고 있고 기아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기아는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때론 경제적인 이유로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진실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불쌍하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진상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수많은 식료품들에 눈길을 돌리며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어쩌면 그것은 소수의 권력자들 때문이 아니라 다수의 무관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정말, 남녀노소 불문하고 필독도서로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