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수위 아저씨를 생각해 보자, 이 책에 대한 감상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일 년여 전, 나는 지금 살고 있던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난 그 전에 살고 있던 곳의 수위 아저씨를 매우 좋아했다. 아저씨는 언제나 웃었으며 언제나 정다웠고 언제나 친절했다. 난 가끔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간 후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저씨는 좋은 아버지일 것이며 좋은 남편일 것이라 생각했다. 난 그 아파트에서 6년 정도를 살았고, 아저씨는 6년간 나의 아파트의 수위였다. 일 년여 전,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내가 제일 낯설었던 것은 지금의 수위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늘 퉁명스러웠고,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수위아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툴툴거렸고, 가끔은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흠칫 놀라게 된 것은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던 한 장의 종이 탓이었다. '비가 오니 불리수거는 하지 안겟읍니다. 경비' 난 그 종이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저씨가 이 아파트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을 감정, 학교를 간다고 토스트를 입에 물고 뛰어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느꼈을 감정, 하루가 멀다하고 막 일어난 모습으로 택배를 찾으러 오는 백수인 것 같은 여자애를 보는 감정. 물론 내가 사는 아파트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도 아니고, 그저 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지만 아저씨는 여기서도 얼마나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난 그 종이 한 장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저씨는 정말 괴리감을 느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범주화 시킨 '수위'라는 이미지에 고정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취향'을 감추려 한껏 보호막을 치고 살아가는 그르넬 가 7번지 아파트의 수위 르네. 그녀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수위'같지만 사실 톨스토이를 읽고 모차르트를 읽고 철학에 밝은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소화해 내기 위해 그녀는 철저히 '보통'의 수위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천재 소녀라는 것은 피곤한 일임을, 삶이란 모순 투성이에서 존재하는 것임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열두살 팔로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영리함을 감추려 한껏 보호막을 치고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녀의 눈에 어른들은 다 교만하고 허풍덩어리이며 별 볼일 없는 존재이다. 르네라는 영혼의 자매와 유일하게 존경할만한 어른인 오주를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그들의 삶에 오주라는 동양인(일본인)남자가 등장하고 그 남자는 르네의 가시를, 팔로마의 가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시 속의 진실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 사람은 다르다.

 

     우리는 외관이나 그의 지위로 사람들의 지적수준에 대해 얼마나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가... (p.180)

     그렇다. 르네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성급한 결론들 때문에 그녀는 가시로 자신을 무장한 고슴도치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열두살 팔로마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다. 사회적인 지위, 외모, 나이 등은 우리가 타인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그것들을 배제하지 않아도 우리가 누군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그래, 우리는 노력해도 하지 못할 일을 오히려 편견에 쌓인 채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가. 편견에 쌓인 사람들에 순응해 주는 고슴도치, 그 속을 바라보는 일은 의외로 쉬운 일임에도 25년간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래의 문체가 그러한 것인지, 독특한 소재와 재미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정도 몰입을 하다보면 눈과 머리에 불편한 문체는 술렁술렁 넘어가 버린다. 진짜 수위 아줌마가 이 글을 쓰며, 이 글을 어려워 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에 그냥 나도 이해하는 척 해 버리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그 한 장의 종이로 모든 것을 평가해버렸던 그런 사람인걸.

     흥미롭게 넘어가던 책의 결말이 조금 아쉬운 것도 읽기 쉬운 문체가 아니라는 이 책의 단점에 한 몫은 해 준다. 하지만 이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주 상큼한 오렌지 맛이 난다. 손으로 까기엔 조금 버거운 단단한 껍질과 코를 자극하는 새콤한 향기와는 달리 상큼하고 달콤한 햇살을 머금은 오렌지의 맛. 그러고보니, 오렌지와 고슴도치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걸 그동안 눈치채지 못한 것은 과일과 동물을 구분하던 우리의 고정관념 그리고 편견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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