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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간혹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하면, 몇몇 아이들이 책은 재미없고 졸리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난 너희들이 재미없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고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이 많이 있다고 말을 해주며 내 독서습관에 대해 말을 한다. 난 사실 동화책을 좋아해, 그 말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는다. 저렇게 다 큰 어른이 동화책이라니. 그럼 난 한 술 더 떠 말을 한다. 난 아기들이 보는 그림책도 종종 보는걸? 아이들은 그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왜요? 라고 이유를 묻는다.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 책은 내가 재미있으면 됐지, 이 나이에 어떤 책을 봐야하고 이런 건 절대 정해있지 않거든. 그 말에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질문이 나온다. 그럼 어떤 책이 재미있어요? 그런 질문에 늘 꼽아주는 책 중 한권은 '톰소여의 모험'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책에 조금 관심을 갖고있는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전 그 책이 대체 뭘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별로 재미도 없었고요." 이런 조숙한 녀석. 뭔가 큰 메세지를 가슴에 박아주는 걸 좋아한단 말이냐, 라고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난 그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왜 그런 신나는 책에서 뭔가를 배우려고만 해?" 그리고 다음번에 이 아이와 만날 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가장 처음에 있는 경고문을 베껴와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경고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G
톰소여의 모험에 대한 네 이야기에 한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이제 좀 이해가 가니?
군사령관 G.G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책 안엔 동기와 교훈과 플롯이 있다. 허클베리 핀이 짐과 허투루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간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크트웨인이 톰 소여보다는 허클베리 핀에게 더 애정을 갖고 있었겠다는 느낌을 받는데, (난 톰 소여라는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지만) 작가에게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 속 인물들은 자식과도 같아서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을테지만 이 허클베리라는 녀석은 특히나 아픈 손가락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크트웨인의 생애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생계를 위해 미시시피강의 수로 안내인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것이고, 그의 그런 경험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엔 이 책을 '허클베리 핀의 자서전'이라고 이름 붙일 생각이었다니, 이것은 단순히 이 책이 허클베리의 고백적 어조를 띠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 책을 쓰며 마크트웨인은 수로 안내인을 할 때 미시시피강을 보며 하던 자신의 공상을 하나하나 불러오지 않았을까.
이 책은 말 그대로 모험기이다. 기본 틀은 톰소여의 모험의 뒷 이야기의 형식이지만, 시점이 허클베리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부자가 된 허클베리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무인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왓츤 아줌마에게서 도망친 흑인 노예 짐을 만나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여행한다. 허클베리와 짐은 많은 일을 겪고, 때론 큰 사건 속에 휘말리지만 특유의 재치와 거짓말로 아슬아슬하게 모면해 나간다. 허클베리는 윤리적인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에 능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면서도 훔치는 게 아니라 '빌린다'고 하는 악동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고통에 무디지 못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현실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또 자신을 제약하는 일종의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투쟁자로서의 모습도 보이고 있는데, 이 사회적 구속이라는 것은 정해진 도덕적 규범이나 행동양식 뿐만이 아니라 금화로 정해지는 가치도 포함한다. 또 허클베리 핀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 시대의 노예제도에 대한 모습인데, 짐이 자유를 갈망하고 또 짐에게 자유를 주려 애쓰는 허클베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 그 나라의 모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흔히 마크트웨인을 유머작가라고 하며,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고 한다. 하지만 난 마크트웨인을 가장 현실적이고 세계적인 작가라고 칭하고 싶다. -ism이라는 것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그의 문학을 -ism을 붙여 정의해야 한다면 그를 진정한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자라고 할 것이다. 톰소여의 모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고 읽혀진다. 반면에 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소여의 모험보다는 조금 지루한 감이 있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유일한 종합판 번역'을 추구하고 있기에) 분량도 상당하다. 하지만 허클베리 핀, 그리고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내려간다면 이 책이 마크트웨인 문학의 정수로 꼽히고 있는 까닭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