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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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에서 약 100년 전쯤 살았던 한 시인은 이런 노래를 지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너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그리고 그 시인보다 약 40년 가량 늦게 프랑스라는 먼먼 나라에서 태어 난 한 소설가는 우연히 이런 기사를 보고 한 여자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도라 브루더!
     파리

     여자아이를 찾습니다. 도라 브루더, 15세, 1미터 55센티미터, 갸름한 얼굴, 회갈색 눈, 회색 산책용 외투, 자주색 스웨터, 감청색 치마와 모자, 밤색 운동화. 모든 정보는 브루더 부부에게로 연락 바람. 오르나노 대로 41번지, 파리.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신문에 실린 이 기사 한 장을 우연히 본 소설가인지 작중화자인지 모를 사람은 조금은 스토커같은 발상을 하게 된다. 자, 이 도라 브루더라는 여자를 찾아보자. 하지만 이것이 과연 '도라 브루더'만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인가. '님'을 외쳤지만 그 님이 단순한 그 님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100년 전쯤 산 시인이 한 노래처럼 이 소설인지 기록인지 모를 책은 '도라'를 외쳤지만 그 님은 단순히 도라가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 정보는 저 짧은 기사가 전부였다. 그러니 저 기사만 가지고 기사 속의 여성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때는 나치가 유태인들을 박해하던 그 때. 그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가능한 모든 기록을 제거했다. 물론 그 기록 제거 작업에는 사람의 기억이라는 걸림돌이 있어서 완벽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정보와 최대한의 추리로 도라 브루더를 찾아가는 시간들을 더듬어 나갈 수록 그것은 단지 '도라'를 위한 시간 탐험이 아니라 '시간'을 위한, 나아가서는 '자신'을 위한 시간 탐험이 되어 간다.

     몇 장의 사진, 몇 개의 기록만으로 남은 과거의 시간은 이미 흘러가버린 잊혀진 계절일 뿐 완벽히 재생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개인이란 존재는 어쩜 이리도 힘이 없는가. 그리고 시간이란 것은 어쩜 이리도 의지적인가. 기록이라는 것은 어쩜 이리도 무의미한가. 시간은 시간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람도, 기록의 진실도 가져가 버렸고, 역사의 진실 역시 저 멀리 어딘가로 묻어버린다.

 

     프랑스 소설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문학이라는 것을 딱 어떤 것이라고 정의내릴 순 없는 것이지만 한 나라는 고유한 맛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프랑스 소설은 늘 이런 내 입맛을 즐겁게 해 준다. 물론 희뿌연 구름 속을 헤메는 것 같은 선명하지 못한 기분을 주긴 하지만 이런 기분 역시 그만의 매력이 된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런 분위기를 십분 발휘한다.

     이미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르는, 그리고 혹은 어디에선가 삶을 정리하고 있을 시기의 한 여성의 이름. 우리는 도라 브루더,라는 이름을 통해 시간을 헤집고 우리의 시간을 바라본다. 그것은 과연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 하지만 알고있지 않는가. 그 누구도 시간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그저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갱이 같은 것이기에.

     책을 다 읽은 후에 작가에게 궁금해진다. 이 작가는 그 모래알을 책이라는 하나의 기록매체에 담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그 모래알의 덧없음을 그저 한탄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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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양장)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로렌 차일드 그림 / 시공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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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보다 조금 서두른 덕에 남는 시간이 생겼을 때, 서점에 들러 책 구경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오늘은 목표를 가지고 조금 서둘렀다. 동화책을 구경하고 싶었던 탓이다. 나이를 훌쩍 먹고도 동화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난 오늘도 동화책 코너에서 아이들 사이를 맴맴 돌았다. 내 허리만큼도 오지 않는 아이 옆에 서서 그림책을 읽기도 하다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곤 멋적게 웃어도 보았다. 아주 가끔 내가 어린 나이에 겉모습은 늙어보이는 병에 걸린 사람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데, 물론 내 자신은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쿡쿡 웃으며 동화책 코너를 둘러보다 삐삐 롱스타킹을 만났다.
 

     "어머, 삐삐!" 내가 삐삐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음은 당연하다. 어린 시절, 외화를 통해 삐삐는 내게 동화 속 사람이 아닌 실존 인물처럼 인식되어 있었으며 그 후 동화책을 몇 번이고 봤지만 삐삐는 동화 속 사람이라기 보다 텔레비전 속에서 웃고 떠드는 실존 인물이었다. 그리고 꽤 오래, 삐삐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서점에서 우연히도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냉큼 삐삐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삐삐와 대화를 나눴다.

     "어쩜 넌 하나도 안 변했니?" 억세기만 한 빨간 머리를 꼭꼭 눌러 따고, 빨간 천을 덧덴 파란 옷을 입고 짝짝이 양말을 길게 올려 신은채 자신의 발의 두 배 크기인 검은 구두를 신고 말을 번쩍 들고 있는 삐삐에게 나는 웃으며 말을 건냈다. 하지만 삐삐는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네가 늙은 거라구. 시간은 날 피해가는 걸? 내가 말 안했어? 우리 엄마는 천사고, 아빠는 식인종의 왕이라고. 그런 내가 늙을 수 있겠어?" 
     여전한 삐삐의 모습에 내게만 흘러버린 시간이 야속하면서도 다시 삐삐를 처음 만나던 그 나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천방지축 같아 보이는 삐삐지만 사실은 속도 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주 착한 아이였음을 삐삐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도 삐삐를 천방지축으로 보던 어른의 시선이 되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꾸러기인 아이들에게 눈을 흘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삐삐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정말 재미있었다. 집으로 삐삐를 데리고 와 함께 뛰어 놀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홀딱 삐삐에 빠져 버렸다. 어린 시절보다 더 흥겹고 재미난 시간이었다. 역시 삐삐 말대로 내가 늙은 것이었다. 삐삐에겐 시간도 피해가는 걸. 속속 삐삐와 함께 하던 시간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린드그렌 아줌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생각이 났다. 삐삐, 그리고 로냐. 아, 어린 시절 친구들이 이렇게도 많이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지낸 기분에 내게 흐른 시간들이 조금 서운했다. 내일은 또 다시 삐삐와 또 다른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지금 내 머리 속엔 온통 내일은 삐삐와 어떤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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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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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하면, 몇몇 아이들이 책은 재미없고 졸리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난 너희들이 재미없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고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이 많이 있다고 말을 해주며 내 독서습관에 대해 말을 한다. 난 사실 동화책을 좋아해, 그 말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는다. 저렇게 다 큰 어른이 동화책이라니. 그럼 난 한 술 더 떠 말을 한다. 난 아기들이 보는 그림책도 종종 보는걸? 아이들은 그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왜요? 라고 이유를 묻는다.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 책은 내가 재미있으면 됐지, 이 나이에 어떤 책을 봐야하고 이런 건 절대 정해있지 않거든. 그 말에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질문이 나온다. 그럼 어떤 책이 재미있어요? 그런 질문에 늘 꼽아주는 책 중 한권은 '톰소여의 모험'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책에 조금 관심을 갖고있는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전 그 책이 대체 뭘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별로 재미도 없었고요." 이런 조숙한 녀석. 뭔가 큰 메세지를 가슴에 박아주는 걸 좋아한단 말이냐, 라고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난 그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왜 그런 신나는 책에서 뭔가를 배우려고만 해?" 그리고 다음번에 이 아이와 만날 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가장 처음에 있는 경고문을 베껴와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경고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G

 

     톰소여의 모험에 대한 네 이야기에 한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이제 좀 이해가 가니?

 

     군사령관 G.G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책 안엔 동기와 교훈과 플롯이 있다. 허클베리 핀이 짐과 허투루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간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크트웨인이 톰 소여보다는 허클베리 핀에게 더 애정을 갖고 있었겠다는 느낌을 받는데, (난 톰 소여라는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지만) 작가에게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 속 인물들은 자식과도 같아서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을테지만 이 허클베리라는 녀석은 특히나 아픈 손가락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크트웨인의 생애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생계를 위해 미시시피강의 수로 안내인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것이고, 그의 그런 경험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엔 이 책을 '허클베리 핀의 자서전'이라고 이름 붙일 생각이었다니, 이것은 단순히 이 책이 허클베리의 고백적 어조를 띠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 책을 쓰며 마크트웨인은 수로 안내인을 할 때 미시시피강을 보며 하던 자신의 공상을 하나하나 불러오지 않았을까.

     이 책은 말 그대로 모험기이다. 기본 틀은 톰소여의 모험의 뒷 이야기의 형식이지만, 시점이 허클베리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부자가 된 허클베리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무인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왓츤 아줌마에게서 도망친 흑인 노예 짐을 만나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여행한다. 허클베리와 짐은 많은 일을 겪고, 때론 큰 사건 속에 휘말리지만 특유의 재치와 거짓말로 아슬아슬하게 모면해 나간다. 허클베리는 윤리적인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에 능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면서도 훔치는 게 아니라 '빌린다'고 하는 악동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고통에 무디지 못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현실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또 자신을 제약하는 일종의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투쟁자로서의 모습도 보이고 있는데, 이 사회적 구속이라는 것은 정해진 도덕적 규범이나 행동양식 뿐만이 아니라 금화로 정해지는 가치도 포함한다. 또 허클베리 핀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 시대의 노예제도에 대한 모습인데, 짐이 자유를 갈망하고 또 짐에게 자유를 주려 애쓰는 허클베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 그 나라의 모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흔히 마크트웨인을 유머작가라고 하며,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고 한다. 하지만 난 마크트웨인을 가장 현실적이고 세계적인 작가라고 칭하고 싶다. -ism이라는 것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그의 문학을 -ism을 붙여 정의해야 한다면 그를 진정한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자라고 할 것이다. 톰소여의 모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고 읽혀진다. 반면에 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소여의 모험보다는 조금 지루한 감이 있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유일한 종합판 번역'을 추구하고 있기에) 분량도 상당하다. 하지만 허클베리 핀, 그리고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내려간다면 이 책이 마크트웨인 문학의 정수로 꼽히고 있는 까닭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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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이른아침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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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들이 있다. 엄마의 김밥엔 항상 깻잎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 같이. 그래서 엄마의 김밥을 먹을 땐 당연히 깻잎이 들어있겠지 하고 쳐다도 보지 않고 먹다가 뭔가 허전함을 느끼곤 다시 쳐다본다. '오늘은 깻잎이 안 들어갔네.'

     내겐 생텍쥐페리도 그런 사람같다. 이 사람이 쓴 책이라곤 두 권 밖에 안 읽어봤으면서, 그리고 그 중 '어린왕자'라는 것을 너무도 좋아해서 아직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산 책 그대로 한 해에 꼭 한번씩은 다시 읽어왔으면서 생텍쥐페리는 당연히 '어린왕자'로서만 기억돼서 다른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다른 작품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을 땐 깻잎빠진 김밥을 먹다가 어랏? 하는 기분에 다시 김밥을 쳐다본 그런 셈이었다. 익숙해진 것의 배신감같은 기분이랄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린왕자를 읽게 된 계기는 너무나 간단했다. 지금보다 더 책 욕심이 많았던 그 때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을 누가 읽으면 정말 배가 아팠다. 담임 선생님이 칠판에 모자 같은 그림을 그려두고 "이게 뭘까?"라고 물었을 때 내 앞에 앉아있던 얄밉게 생긴 여자애가 손을 들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요."라고 대답했다. 난 '뭔 헛소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웃으며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림이지요." 라고 했다. 정말 그 때의 질투심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이다. 난 그 날 당장 엄마를 졸라 어린왕자를 샀고 한 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그 해부터 6년 내내 다독상은 그 애가 아니라 내가 탔으니, 그 당시 내 독서욕에 그 애가 상당수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처음만난 생텍쥐페리는 날 매혹시켰고, 그 사람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려는 생각이 아닌 그 책만 읽고 또 읽고 하게 했다.

 

     인간의 대지.

     전에 만나보았던 '어린왕자'나 '야간비행'과는 달리 조금 묵직한 기분을 주는 이 책은 정말 조금은 묵직한 기분으로 만나보았다. 생텍쥐페리가 조종사로서 경험한 삶을 상세히 알 수 있어서 내가 전에 읽어본 그의 작품들이 나온 곳을 알게된 기분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책의 태생을 알게되는 기분, 그런 기분에 벅차면서 생텍쥐페리의 삶에 전율해야 했다. 우편 비행기를 조종하며 하늘과 사막 사이를 비행하고, 산과 산 사이를 탐험하며, 삶과 죽음의 사이를 넘나드는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했고 자신만의 문학의 기틀을 다잡았다. 인간의 대지 위에서 그는 너무도 많은 것을 얻고 구축해 간 사람이었다.

     특히 5일간 사막을 헤메는 부분에선 어린왕자의 배경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져서 다시 한 번 어린왕자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오래 된 나의 어린왕자 책을 또 한 번 꺼내보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길들여졌을 법한 사막여우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란.

 

     <어린왕자>를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책을 완전히 읽어보지 않았어도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어린왕자의 대목은 학교 교과서에서도 종종 발견이 된다. 그러기에 어린왕자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혹여나 읽어보지 않았대도 읽어봤음직한 느낌을 주는 책일 것이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어린왕자에 매혹 된 사람이라면 이 책도 꼭 추천해주고 싶다. 생텍쥐페리의 삶을 느껴보며 다시 한 번 어린왕자의 감흥에 빠져보기를. 그리고 그 어린왕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생텍쥐페리를 좀 더 친근하게 만나보기를. 난 아직도 사막 한가운데에서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실제로 만났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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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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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쪽으로 / 편혜영 / 문학동네

 

 

     편혜영이라는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전, 한 인터넷 뉴스의 기사 탓이었다. 요즘 책을 읽는다는 젊은 사람들은 일본 작가의 이름은 다 꿰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의 젊은 작가들 이름은 알지 못한다는 기사였다. 그 때 거론 된 우리의 젊은 작가 세명은 김연수, 김애란, 편혜영. 김연수야 워낙에 좋아하던 작가였고, 김애란은 온갖 매체에서 보내는 호평 속에 신작까지 구비해 놓고 있던 상태였지만 편혜영은 생소했다. 요즘 책을 읽는다는 젊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편혜영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이 책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작가의 양력을 보고나니, 그제야 나즈막한 소리가 나온다. <아오이 가든>, 이 책의 저자였다. 잔혹하다는 평 일색이었던 이 책을 난 관심도 두지 않았다. 잔혹, 세상을 핑크빛으로 보고만 싶은 내게는 너무 무서운 이야기일 것 같았으니까.

 

     이 책 <사육장쪽으로>는 편혜영이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잔혹함이 많이 사그러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섬뜩했다. 그 섬뜩함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냈지만, 절대 피해야 될 불편함이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이었고, 우리가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 우리의 불안감에 대한 편린들을 너무나 리얼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여덟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집은 전체 페이지 수가 230쪽임(해설과 작가의 말 제외)을 고려할 때, 한 단편이 가지고 있는 분량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문체가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조로움 속에서 편혜영이 그리고 있는 일상의 섬뜩함은 배가 된다.

     이 책의 표제가 되고 있는 <사육장쪽으로>나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소풍>등에서 볼 때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늘 일상 속에 공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가 현실이 될 때,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습격보다 더 두려워지고 더 끔찍하게 된다.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은 현실을 지루해하고 이상을 꿈꾸며 희망을 설계해 간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은 인간을 살게하는 힘이되는 한낱 환상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희망은 점점 현실이라는 어마어마한 적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사람은 그 속에서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던 희망이 악몽으로 변화할 때 사람은 얼마나 공포를 느낄 수 있는가.

 

     이 책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절대 유쾌하지도 않고 희망적이지도 않다. 마치 <혹성탈출>이란 영화를 보고 난 찜찜함처럼 마음을 무겁게 눌러 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지만 눈을 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세상을 핑크빛으로 보고만 싶기 때문에.

     주목해야 할 작가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아직 <아오이 가든>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 뒤 쪽에 수록된 작품해설 속에서 상당비율 다루고 있는 그녀의 전작 이야기는 이 책보다 더 섬뜩하고 잔혹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 책을 만나보고 싶게끔 한다. 또한 이 단편을 하나씩 만나다 보면 세상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묘하게 동조하게 된다. 최근에 만나 본 젊은 작가들과는 뭔가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을 풍기고 있는 작가 편혜영의 행보를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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