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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육장쪽으로 / 편혜영 / 문학동네
편혜영이라는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전, 한 인터넷 뉴스의 기사 탓이었다. 요즘 책을 읽는다는 젊은 사람들은 일본 작가의 이름은 다 꿰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의 젊은 작가들 이름은 알지 못한다는 기사였다. 그 때 거론 된 우리의 젊은 작가 세명은 김연수, 김애란, 편혜영. 김연수야 워낙에 좋아하던 작가였고, 김애란은 온갖 매체에서 보내는 호평 속에 신작까지 구비해 놓고 있던 상태였지만 편혜영은 생소했다. 요즘 책을 읽는다는 젊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편혜영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이 책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작가의 양력을 보고나니, 그제야 나즈막한 소리가 나온다. <아오이 가든>, 이 책의 저자였다. 잔혹하다는 평 일색이었던 이 책을 난 관심도 두지 않았다. 잔혹, 세상을 핑크빛으로 보고만 싶은 내게는 너무 무서운 이야기일 것 같았으니까.
이 책 <사육장쪽으로>는 편혜영이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잔혹함이 많이 사그러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섬뜩했다. 그 섬뜩함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냈지만, 절대 피해야 될 불편함이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이었고, 우리가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 우리의 불안감에 대한 편린들을 너무나 리얼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여덟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집은 전체 페이지 수가 230쪽임(해설과 작가의 말 제외)을 고려할 때, 한 단편이 가지고 있는 분량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문체가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조로움 속에서 편혜영이 그리고 있는 일상의 섬뜩함은 배가 된다.
이 책의 표제가 되고 있는 <사육장쪽으로>나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소풍>등에서 볼 때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늘 일상 속에 공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가 현실이 될 때,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습격보다 더 두려워지고 더 끔찍하게 된다.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은 현실을 지루해하고 이상을 꿈꾸며 희망을 설계해 간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은 인간을 살게하는 힘이되는 한낱 환상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희망은 점점 현실이라는 어마어마한 적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사람은 그 속에서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던 희망이 악몽으로 변화할 때 사람은 얼마나 공포를 느낄 수 있는가.
이 책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절대 유쾌하지도 않고 희망적이지도 않다. 마치 <혹성탈출>이란 영화를 보고 난 찜찜함처럼 마음을 무겁게 눌러 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지만 눈을 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세상을 핑크빛으로 보고만 싶기 때문에.
주목해야 할 작가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아직 <아오이 가든>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 뒤 쪽에 수록된 작품해설 속에서 상당비율 다루고 있는 그녀의 전작 이야기는 이 책보다 더 섬뜩하고 잔혹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 책을 만나보고 싶게끔 한다. 또한 이 단편을 하나씩 만나다 보면 세상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묘하게 동조하게 된다. 최근에 만나 본 젊은 작가들과는 뭔가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을 풍기고 있는 작가 편혜영의 행보를 주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