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양장)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로렌 차일드 그림 / 시공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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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소보다 조금 서두른 덕에 남는 시간이 생겼을 때, 서점에 들러 책 구경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오늘은 목표를 가지고 조금 서둘렀다. 동화책을 구경하고 싶었던 탓이다. 나이를 훌쩍 먹고도 동화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난 오늘도 동화책 코너에서 아이들 사이를 맴맴 돌았다. 내 허리만큼도 오지 않는 아이 옆에 서서 그림책을 읽기도 하다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곤 멋적게 웃어도 보았다. 아주 가끔 내가 어린 나이에 겉모습은 늙어보이는 병에 걸린 사람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데, 물론 내 자신은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쿡쿡 웃으며 동화책 코너를 둘러보다 삐삐 롱스타킹을 만났다.
 

     "어머, 삐삐!" 내가 삐삐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음은 당연하다. 어린 시절, 외화를 통해 삐삐는 내게 동화 속 사람이 아닌 실존 인물처럼 인식되어 있었으며 그 후 동화책을 몇 번이고 봤지만 삐삐는 동화 속 사람이라기 보다 텔레비전 속에서 웃고 떠드는 실존 인물이었다. 그리고 꽤 오래, 삐삐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서점에서 우연히도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냉큼 삐삐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삐삐와 대화를 나눴다.

     "어쩜 넌 하나도 안 변했니?" 억세기만 한 빨간 머리를 꼭꼭 눌러 따고, 빨간 천을 덧덴 파란 옷을 입고 짝짝이 양말을 길게 올려 신은채 자신의 발의 두 배 크기인 검은 구두를 신고 말을 번쩍 들고 있는 삐삐에게 나는 웃으며 말을 건냈다. 하지만 삐삐는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네가 늙은 거라구. 시간은 날 피해가는 걸? 내가 말 안했어? 우리 엄마는 천사고, 아빠는 식인종의 왕이라고. 그런 내가 늙을 수 있겠어?" 
     여전한 삐삐의 모습에 내게만 흘러버린 시간이 야속하면서도 다시 삐삐를 처음 만나던 그 나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천방지축 같아 보이는 삐삐지만 사실은 속도 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주 착한 아이였음을 삐삐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도 삐삐를 천방지축으로 보던 어른의 시선이 되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꾸러기인 아이들에게 눈을 흘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삐삐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정말 재미있었다. 집으로 삐삐를 데리고 와 함께 뛰어 놀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홀딱 삐삐에 빠져 버렸다. 어린 시절보다 더 흥겹고 재미난 시간이었다. 역시 삐삐 말대로 내가 늙은 것이었다. 삐삐에겐 시간도 피해가는 걸. 속속 삐삐와 함께 하던 시간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린드그렌 아줌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들도 하나하나 생각이 났다. 삐삐, 그리고 로냐. 아, 어린 시절 친구들이 이렇게도 많이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지낸 기분에 내게 흐른 시간들이 조금 서운했다. 내일은 또 다시 삐삐와 또 다른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지금 내 머리 속엔 온통 내일은 삐삐와 어떤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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