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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때론 그런 책들이 있다. 내용도 몰라요 작가도 몰라, 허나 한 번 본 제목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머리 속을 맴도는 책.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김영헌 지음, 작가, 2007)이라는 책은 내게 그런 책이다. 난 그 책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했지만 작년 하반기, 우연히 보게 된 그 책의 제목은 오래오래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한 작가가 낸 산문집에 또 다른 작가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고 '읽는 밤'이라는 말 자체가 왠지 로맨틱 했다. 하지만 그 것이 그 책에 대한 관심보다는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니 이를 보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고 했던가.
소세키의 책은 (소세키보다 후대의 작가이지만)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게 했고, (소세키와 전혀 다른 언어권의 작기이지만) 카뮈를 떠올리게 했다. 소세키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카뮈.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을 생각 해 낸 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 탓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은 후, 난 일본문학이란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아주 자주 범하는 내가 또 한 번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그 책을 읽었을 때 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에 매료됐고, 그 책을 오래오래 다시 읽을 책 중 하나로 꼽아버렸다. 아직도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 일본문학은 내게 깊은 맛을 끌어내는 그런 종류는 아니지만, 제외되는 그 몇몇 작가들 때문이라도 일본문학은 아직 더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소세키의 '그 후'가 내게 하루키를 연상시킨 까닭은 이 책도 그리고 2년 후,가 내게 필요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다이스케의 생활과 행동,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절대 과하거나 인상적인 것이 없다. 마치 우리 입맛엔 조금 싱겁게 느껴지는 일본 음식처럼 조용하고 단조롭다. 이런 단조로운 일상으론 장편은 무리, 라고 생각이 될 무렵 느끼게 된다. 그게 벌써 300페이지를 넘게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그건 이 책이 주는 가장 강한 충격이 된다. 별거 없는 사건들이 뭔가 색다른 분위기를 뿜으며 독자를 이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그 힘에 이끌려 버렸다는 것.
그럼에도 2년 후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내가 일본문학을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아 하는 까닭은 조금 단조로운 그 문체 탓이기도 한데, 소세키의 이 책 역시 단조로운 문체가 이어져 난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붕붕 뜨는 듯한 기분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뭔가 은근한 흐름이 있었고, 그것을 느꼈기에 이 책에게 2년 후, 라는 약속을 기하고 싶다.
그리고 카뮈를 떠올린 까닭은 마지막 부분 탓이었는데, 이 책은 결말이 없다. 즉, '그 후'의 이야기를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있는데, 대신 그 마지막을 빨간색이라는 시각적인 감각으로 대체한다. 마치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뫼르소가 느낀 태양을 체험하는 기분같았다. 왜 소세키를 심미주의 작가라 칭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책 안에는 다양한 시각적 감각과 후각, 청각적 감각이 흐르고 있지만 마지막의 빨간색만큼 강렬할 수는 없었다. 뫼르소가 느낀 태양 같은 강렬한 빨강. 그 빨강이 다이스케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고 독자 나름대로 만들어 갈 그 후의 이야기를 전개 하게 해 주는 듯 했다.
소세키의 <그 후>는 내게 2년 후를 기약하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이스케와 히라오카가 오랜만에 만나서 한 대화 중 한 구절이 책을 읽은 후 내 마음을 대신해 줄 것만 같다.
다이스케는 말없이 궐련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후 어떻게 지냈나?"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