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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생각해 보면 관심 외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들과도 우린 꽤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 숫자는 보기만 해도 머리에서 쥐가 난다고 하는 사람도 매일 돈을 주고 받으며 살고, 영어는 듣기만 해도 울렁거린다고 하는 사람도 일상 생활에서 텔레비전이나 케이스 같은 자잘한 영어단어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학자들의 전유물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고고학이란 분야도 우리와 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너무 흔히들 써먹는 표현이라 식상할 법도 하지만 다시 한번 써먹자면 '교통이 발전해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가는 지금' 고고학이란 이 지구촌을 더 즐겁게 해 주고 있는 요소가 아닌가 한다.
영국에 가면 대영박물관을 가 보아야 하고, 프랑스에 가면 루브르박물관을 가 보아야 한다는 등 어떤 나라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필수코스에는 박물관이 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이란 것은 사실 옛것을 찾아 현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곳이 아니던가. 과거와 현재의 소개팅 장소, 그것이 바로 박물관임을 생각하면 이제 우린 꽤 쉽게 옛 것과 조우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즉 시간을 뛰어넘는 일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그것들이 다 고고학이란 학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딱딱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해 보면 꽤 친숙하게 우리의 옆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이 고고학이란 학문은 우리의 선입견에 비해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이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은 고고학이란 학문을 한층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얼핏 보면 전문적인 지식의 나열일 것 같아 선뜻 다가가기 어렵지만 한 장 한 장 책을 넘길 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어 마치 모험을 늦출 수 없는 열띤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을 준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허나 고고학이란 학문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물이나 문명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것들이 발견되기까지의 일화를 들려주니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다.
난 이집트나 그리스의 유물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중앙 아메리카의 고고학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는데, 이젠 쉽게 그 복제품을 볼 수 있는 이집트나 그리스의 유물보다는 뭔가 미지의 세계라는 점에서 흥미가 동한 듯 싶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는 무엇보다는 아직 잘 알 수 없는 어딘가에 마음이 더 끌리는 법. 그리고 고고학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 된 것 아니었던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가면 유럽인들의 약탈행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리스의 신전을 통째로 가져올 수가 없어서 기둥을 토막토막 잘라 내어 박물관의 한 쪽 벽에 세워둔 것은 왠지 신전이란 느낌보다는 허섭쓰레기의 느낌이 더 강렬하다. 그들이 시작한 발굴이란 행위는 많은 모험가들을 그 땅으로 이끌었고 고고학이란 학문을 세워 현재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했지만 씁쓸한 부분이 많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박물관 내의 전시물보다는 전체가 남은 폼페이나 피라미드가 더 감동적인데, 사실 폼페이에 있는 많은 시신들도 그리고 피라미드 안에 있던 부장품들은 대부분 다 전 세계 어딘가에 흩어져 있으니 과거 사람들은 현대인들을 매혹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얼마나 많은 죽음을 흘렸는지 생각해 보면 '학문' 그리고 '발견'이란 이름 하에 행하고 있는 우리의 이런 행위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책은 다 좋았다. 고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법 했고, 여건이 되지 않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를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체험할 수 있는 멋진 사진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 물론 한 번 직접 봄만 못하는 것들이지만, 이렇게라도 흥미를 갖고 관심을 갖다가 우연한 기회에 직접 보게 된다면 그 감동은 더 크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중앙 아메리카의 밀림에는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신비가 숨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인간의 노력에 의해 하나씩 베일이 벗겨지게 될 것이다. 지중해 문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큼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쓰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p.327)
나 역시도 위에서 말했듯 이 책의 중앙아메리카 부분에 관심이 더 갔다. 그것은 아직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우리가 훼손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 말들이 꼭 인간의 노력에 의해 중앙 아메리카의 밀림도 훼손할 것이다, 라고 삐딱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과학과 자연의 조화. 그것은 멀고도 불가능한 말일까? 이 책을 읽으며 깊어진 고고학에의 관심만큼 착잡한 마음도 한결 깊어짐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