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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서커스
천운영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잘 써진 소설 한 편을 만나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물론 그 '잘'이라는 것이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라서 한 소설에는 다양한 평가가 따르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는 기쁨은 또 다른 책을 탐하게 하는 묘한 중독성을 제공해 주는 듯 하다. 그 중독감은 마치 <잘 가라, 서커스>(천운영, 문학동네, 2005)라는 소설 속에서 나온 따이공들의 심정 같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소설은 역시 독자의 중독성에 기여를 해 줄만한 아주 괜찮은 작품이다.
천운영이란 작가가 이 책을 발표하기 전, 주목할만한 단편들로 문단에 바람을 불러 일으켰단 사실을 모를 지라도 이 장편 하나로 그 작가에 대한 기대와 신뢰감을 갖기란 충분하다고 본다. 11개의 장으로 되어있는 이 소설은 동생인 윤호의 시점과 조선족인 림해화의 시점으로 전개 된다. 이 둘은 윤호의 형이자 림해화의 나그네인 인호를 매개로 이어져 있는 사이이지만 어쩌면 몸을 섞고 눈물을 닦아준 림해화와 인호보다도 그리고 한 배를 나눈 윤호와 인호보다도 더 끈끈한 무엇으로 엮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림해화는 공주의 무덤을 함께 걷던 그 사내를 잊지 못했지만 나중엔 자신이 떠올리는 이가 그 사내인지 윤호인지 알 수 없게 되고, 윤호는 자신이 마음 속으로 열망하는 이가 림해화인지 인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들의 마음은 위험하고 아찔했기에 그들은 서로를 멀리 해야 했고 그들의 거리는 끈 하나에 의지해 바닥에서 주먹 하나 간신히 들어갈만한 거리까지 떨어져 내리는 곡예를 하는 서커스 단원의 공연과도 비슷했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서커스'라는 소재에 있다. 형의 부인을 맞으러 간 중국에서 인호와 윤호는 서커스를 보게 되고 이 서커스는 마치 그들의 파국을 예언하는 듯 하다. 또한 형 인호는 어렸을 때부터 서커스와 같은 기예로 윤호를 즐겁게 해 주었으며 그러던 와중 목소리를 잃고 자신의 목소리를 앗아간 그 선으로 자신의 아내를 도망가게 만든다. 또 윤호가 타는 배 안에는 서커스 단원들의 승선이 이어지고 그들이 바다에 버리는 병든 말 한마리는 마치 인호의 모습과도 같다. 바다가 인호를 부른 것이었던가, 혹은 윤호가 인호를 버린 것이었던가. 소설은 모두의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의 노래를 부르는 윤호의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독자의 슬픔을 극대화 시키지는 못한다. 독자는 이미 그들의 모든 행위들이 한낱 서커스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죽음을 어렵잖게 눈치채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다만, 살아남은 자의 노래를 부르는 윤호의 뒷모습에 처량한 눈빛을 보내게 됨은 어쩔 수 없다. 이는 마치 잘 숙련된 중국 기예단의 공연을 손뼉을 치고 관람한 후, 그들의 기구한(그럼에 틀림없는) 삶에 씁쓸한 눈빛을 보내주는 것과도 같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이 소설을 위해 들였을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또 다른 소설처럼 눈 앞에 펼쳐질 때가 있다. 이 소설 역시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신빙성을 얻게 된다. 조선족의 생생한 말투와 한국에서의 삶, 그리고 따이공들의 이야기는 단지 지면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얻어낸 간접 체험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이는 작가가 그들 속에 융화되어 살아 낸 또 하나의 인생 이야기처럼 보여진다. 소설은 허구라고 이야기 하지만, 진정한 허구는 소설 속 사람들의 삶에 독자를 온전히 들여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을 열어주는 것은 미리 그 삶을 순회해 본 작가의 몫이다. 그럼에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해야 하는 몫을 완벽하게 해 내고 있다.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있을까, 가슴 속에 열정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다 풀어내지 못하는 그 열정은 어떻게 사그러트려야 하는 걸까. 검은 물길 속으로 인호가 사라져가고, 검은 세상 속으로 해화는 사라져 간다. 그리고 우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윤호처럼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우리는 또 다시 외로워지고 또 다시 가슴 속에 애환을 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그 애환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