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숭배와 광기 - 개정판
발트라우트 포슈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이 오늘날처럼 잘 들어맞는 시대도 없었을 듯 하다. 물론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발을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발가락을 꺾어 발을 묶는 등, 여자로 만들어지기 위한 노력은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린 매혹적인 몸매를 만들기 위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 매거나 발가락을 꺾는 등의 일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린 수술대 위에 누워 수술대 위의 불을 바라보거나, 굶고 식욕억제약을 먹고 토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겐 매혹적인 몸매와 이상적인 얼굴을 만들기 위한 너무나 다양한 방법들이 주어져 있다. 여자들은 그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여자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람같지가 않다. 때론 "저 사람들은 화장실도 안 가고 방귀도 안 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동조하게 되고, 그들이 텔리비전에 나와 "저도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면 '그랬어?' 라며 깜짝 놀라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같지 않은 사람들은 우린 어느새 美의 기준으로 삼아놓고 그들과 닮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 책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은 그런 텔레비전 속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중국의 전족이나 아프리카에서 목을 늘리는 행위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이었다. EBS에서 방영되는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전족에 대한 설명을 했고, 그 프로그램에 대한 도움서로 이 책이 자막에 소개되었다. 때 마침 그런 생각을 하던 터라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고, (평소에 여성신문사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책을 신뢰하지 않는 터였지만)이 책을 보게 되었지만 내가 기대하는 바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책이었다.

 

     내가 기대한 책의 내용은 고대로부터 여성의 美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바뀌어 왔으며, 그 관점에 부합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노력(때론 만행)을 했고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학대하고 있는지에 관한 고찰이었다. 허나, 이 책은 끊임없이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사회가 만들어 놓은 美의 기준을 쫓을 것을 강요하고 그에 미달하는 여자들을 가차없이 게으르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들은 사실이다. 몇 년전, 마광수 교수는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게으르다'라고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선 끊임없이 비정상적으로 날씬하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사람들을 비춰서 정상적인 사람들을 뭔가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더 이상 정상인 사람들이 정상처럼 생각 될 곳은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뭔가 모자라다고 보는 것은 책의 내용과 결론이 조금은 부합되지 않고, 지나치게 여성들을 '희생양'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책에선 끊임없이 세상의 시선과 광고가 여성들을 굶게 만들고 수술을 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에 와선 그 시선을 제일 먼저 바꿔야 할 것들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라고 말한다. 살이 빠진 친구를 축하해 주지 말고,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전반적으론 사회의 과도한 반응 탓을 해 놓고 '여자들이여, 각성하라.'의 멘트를 날린다니, 조금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더 이상 美라는 것은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젠 남자들도 끊임없이 가꾸어야 하고,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우기 위해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름철 소매가 없는 티를 입기도, 해변에서 수영복차림으로 활보하기도 부끄럽게 된다. 책에선 이런 남성들은 파워가 넘치고 뭔가 능동적인 사람으로 보이는데 반해, 날씬한 몸매를 가진 여자들은 뭔가 선정적이고 가벼워 보인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美가 과도한 것은 사실이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독일권 작가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행해지는 어린아이들의 성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있다) 우린 능동적인 신체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찍어내는 신체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론 가학적이고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가학적인 행위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 전체가 만들어진 美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광기어린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외면적 아름다움보다 내면적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허울좋은 거짓말이 된지 오래인 것이다.

     하지만 美의 기준은 변화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계속 보고 있으면 질리기 마련이듯 현재 우리가 정해놓은 美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것의 상실 탓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누구의 탓도 아니다. 자신에게 당당해지자.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