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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침대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박현욱, 하면 그렇다. 우선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오른다. 나 역시 그 작품을 통해 이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후 그의 다른 장편소설들, <새는>과 <동정없는 세상>을 읽게 되었다. 작가가 써 낸 책의 순서를 뒤바꾸어 읽었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가 그의 대표작 <아내가 결혼했다> 이전에 써 낸 소설들이 더 만족스러웠다. 그런 느낌들이 그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게 했다. 다음 소설을 읽는다면 그가 가진 것들이 조금은 명확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기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펴낸 다음 책인 <그 여자의 침대>는 소설집이었다. 난 숨이 막힐 것 같아도 그것을 참아내며 한 템포로 읽어내는 재미가 있는 장편소설이 그립던 참이었다. 하지만 원하지 않을 때도 숨을 쉬어가며 읽어야 하는 단편소설이 그다지 반갑진 않았지만 이 단편을 통해 박현욱의 또 다른 재미를 알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세상과 단절되어 보이는 인물들, 그의 소설 속 모든 주인공들은 이런 느낌을 준다. 옆에 누군가가 있거나 없거나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이 크게 나빠보이지는 않지만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 어쩌면 현대인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그 모습들을 단편 속 주인공들은 여지없이 보여준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피곤한 세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없이 살아가려 해도 생각이라는 것은 의지와는 별개로 자기 멋대로 자기 반복, 자기 증식을 끝도 없이 해대면서 머리 속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그런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수면제도 소용이 없다. 수면제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오래가지 않아 중독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 번 중독되면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부작용만 커진다. 일상생활을 하기 곤란할 정도로 멍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항우울제도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던가. 가만히 있어도, 발버둥을 쳐 봐도 삶은 조금씩 나빠지기만 한다.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우리는 그 밑바닥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p.73)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확산 된 생각의 숲에서 길을 잃는다. 그 곳에서 길을 찾아내기 위해 잠은 또 오질 않는다. 이런 경험을 해 본자들은 안다. 그 생각의 숲이 의미하는 것들을, 현대 사회 안에 내재되어 있는 소외와 이 소외의 범주 안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 같은 불안들. 이것들은 수면제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박현욱의 소설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그래서 느끼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평범하면서도 뭔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고.
옆에 아무도 없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누군가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보다 훨씬 더 힘겨운 거라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옆에 누가 있나 없나 지금 당장 느끼는 외로움이, 고립감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다. (p.90)
통신수단이 발달되며 이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우린 누군가와 교류할 수 있다. 물론 교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핸드폰엔 수십명, 혹은 수백명의 사람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지만 외로움을 느낄 때, 그 곳엔 아무도 없다. 이런 모순감 속에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소설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반갑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보여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다가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면 또 그에 따른 무기력함이 따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단 말인가. 그럼에도 이런 소설이 매력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하나,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단지 나 뿐만은 아니다 라는 안도감 탓이 아닐까. 어쨋든 우리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