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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
정세영 글.그림.사진 / 이숲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스페인, 1년 전이라면 단지 호기심만 가득했을 이 나라가 지금은 추억이 가득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나를 스페인으로 이끈 것은 화려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블로그에서 본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밤의 그라나다' 그 글을 읽자마자 난 스페인의 안델루시아 지방을 꿈꾸게 되었고 2009년 4월의 시작을 스페인에서 보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스페인 내 영국령인 Gibralta, 그 곳에서 걸어서 국경을 넘어 스페인 영토로 들어갔고 Malaga에서 Granada로, Granada에서 Madrid와 Barcelona로 가는 루트로 11일을 보냈다. 그런데... Granada에서부터 내 체력은 급격히 소진되기 시작했고 난 그 작가가 왜 이곳을 그토록 아름답다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은 상태라 걸어서 그라나다의 곳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는데 그 때 내 눈앞에 기적처럼 펼쳐졌다. '밤의 그라나다'가.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는 이 책의 저자역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소개하고 있고, 그 곳에서 먹은 음식을 떠올려 스페인 음식점을 한국에 차렸고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 이 책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히 그의 추억 가운데는 그라나다에서의 것들이 많았다. 작가가 떠올리는 추억과 함께 내 추억도 살아났다. 그라나다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라나다에서 먹은 음식들, 그라나다에서 읽은 책 -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

알함브라에서 찍은 그라나다 시가지 풍경
저자는 나름 만들기 쉽고 한국인의 입맛에 적용하기 쉽게 변형한 스페인 음식 13개를 소개하며 자신이 찍은 사진과 함께 짧은 일화들을 늘어놓는다. 그 사진과 함께 하는 그의 일화가 음식과 함께 어우러져 그 맛이 그려진다. 특히 7번째로 소개 된 또띠아는 나도 현지인에게 조리법을 배웠던 터라 더더욱 반가웠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 밤, 체력은 바닥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감기까지 걸렸었다. 그간 식비를 아끼느라 식사도 많이 건너뛰었기 때문에 그 날만큼은 무언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밖에 나갈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 호스텔 주인이 와서 오늘 저녁은 우리가 전통 음식을 만들테니 참여하고 싶으면 해도 좋다고 했고, 난 한 방을 쓰던 독일 남자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때 나왔던 것이 이 또띠아. 도톰한 오믈렛이 너무 신기해서 음식을 만들어준 호스텔 주인에게 조리법을 물어봤고 그는 친절하게 내게 그 맛의 비결을 알려줬었다. 그리고 상그리아.
그 때의 일정이 너무 힘들었던 터라 한동안은 가난한 여행이 하기 싫었다. 그리고 그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혹여나 후에 조금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색색의 과일들이 가득하던 바르셀로나의 시장이 그리울 지언정 그 외의 곳들은 한동안 그립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그런 고생들이 더 기억에 남았고 그 곳을 더 그립게 했다. 이 책은 스페인에 대한 내 그리움을 한껏 고양시켰다.
낯선 문화를 접하고, 그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나 깨닫게 된다.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던 스페인어와 그곳에 대한 얇디 얇은 지식은 내 스페인 여행을 더 힘들게 만들었겠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따스한 사람들과 따뜻한 음식들은 지금에와서 그런 여행마저도 그립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이 저자도 스페인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이 살고 있었고 똑같이 뜨겁게 뛰는 심장을 가졌음을 스페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알게 해 주었고 이 책이 그 때의 그 기분을 꺼내놓았다. 아, 스페인. 아, 그라나다.

밤의 그라나다가 눈 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