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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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의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책 뒤에 있는 이광호의 해설을 볼 것을 권유한다. 그 해설은 내가 이 책을 보며 느꼈던 정확한 감정을 활자화 해 놓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듯 백가흠이란 작가의 매력은 친절함이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게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날카롭게 까발리는데 있었다. 가학적인 장면도 가감없이 활자화 해 버리는 그의 글쓰기는 때론 읽기 불편했지만 쉽게 외면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남자 편혜영(물론 편혜영은 여자 백가흠)이라며 난 종종 그와 편혜영의 글을 비교하곤 했었다. 친절하지 않은 작가임을 증명하듯 백가흠은 너무 오래 독자를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의 세번째 소설집을 만났다. 
 

    그의 새 책이 나오지 않은 4년동안 정권은 교체되었고 수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사라졌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듯 첫 단편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에서는 달라진 백가흠이 보였다. 조금은 유연해지고 따뜻해진 작가의 변화가 그의 전작들의 분위기를 기대하며 긴장하고 있던 독자에겐 약간의 당혹감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말과 현실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의 모순 된 현실이었고 그릇된 현실 생산방식이었다. 이 불편한 진실, 백가흠의 매력은 첫 작품부터 이렇게 살짝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글쓰기의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간 백가흠을 읽어 온 모든 독자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간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전작들을 읽지 못한 독자들은 그가 하는 이 모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정재형이 그의 예능감을 토대로 그의 음악인생을 대중들에게 다시 회상시켰듯 백가흠도 이 책을 통해 그의 전작들을 새로이 읽게 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그래서」에서부터 이번 소설집 내내 들어나는 작가로서의 백가흠의 이야기는 두드러진다. 책을 탐닉하다 못해 책에 침몰 된 한 노인 앞에 옛 제자이자 죽은 소설가 '백'이 나타난다. 그 성에서 알 수 있듯 작가 본인을 투영한 이 인물은 묻는다. "언젠가는 글자가 날아가지 않고 새겨지는 날도 있겠지요?" 그 안에서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그의 근원적 고민들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고민들은 뒤에 이어지는 표제작 「힌트는 도련님」과 「P」에서 더 구체적이 된다. 평론가가 해설에서 말했듯 이 소설집의 제목인 힌트는 도련님은 곧 힌트는 백가흠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여기서 느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린 백가흠을 알아야 그 힌트조차 알아챌 수가 있는 법. 그래서 준비한 것같은 「쁘이거나 쯔이거나」는 기존의 백가흠에 대해 눈치챌 수 있는 단편이다. 그 힌트를 쥐고 앞의 단편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즐거움은 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누구나 이야기를 하는 세상 속에서 작가의 역할은 때론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아슬거린다. 그 경계에 서서 소설가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고민을 시작한 이 멋진 작가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그의 전작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책 때문이다. 힌트는 백가흠, 이제 그 힌트를 쥐고 그의 이야기들을 기대할 준비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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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 소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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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에 국민의 25%가 해외여행을 떠나는 나라, 여행시 지출 규모가 세계 10위인 나라, 우린 지금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여행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버린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나기 전 숙소를 예약하고 면세점에서 살 물건의 목록을 정리하고 반드시 가보아야 할 관광명소들을 떠올려 볼 것이다. 낯선 곳, 낯선 문화로의 진입이 아닌 잠시 자리를 옮기는 편리함. 어쩌면 그 편리함은 집에서 쇼파에 앉아 세계 관광 명소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관광산업은 날로 규모가 커지고 번창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번창 속에는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나라가 있다. 이 모순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여행' 혹은 '책임여행'이 제시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버린 이 공정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는 않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길을 알려 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만남' 임을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임을 '소비'가 아니라 '관계'임을 믿는다면 이 책은 당신이 떠날 새로운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책을 여는 글 속 이 문장은 이 책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인권,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배움의 여섯 파트로 구성 된 이 책은 이 여섯가지들이 여행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여행 속에서 우리가 이 문제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다시 생각해보는 올바른 접근법을 제시한다. 호텔 체인망이 아니라 현지 숙소를,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현지 식당을 이용하는 아주 작은 실천부터 우린 누군가를 죽이는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가 외면했던 포터들의 인권과 가난한 나라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경제 순환 고리, 환경을 죽이는 여행법 등에 대한 진실을 아는 순간 부끄러워 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열린 마음으로 올바른 시선을 가지고 우리의 여행을 계획한다면 세계가 바뀔 희망은 충분히 있다.

     여행을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아주 작은 실천만으로 우린 공정한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다. 집을 나선다.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세븐일레븐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며 편안해진 소비의 습관을 답습한다.  하지만 잠시 문 앞에서 멈춰 생각을 해 보자. 우리에게 생활의 일부가 된 이것들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떤 경로로 우리에게 왔는지에 관해, 그리고 이것들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관해. 그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동네의 숨겨진 맛집으로, 동네의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집으로,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공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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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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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나만의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 책은 절대 권해주지 않겠다.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능력이 닿지 않는 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직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보다 훨씬 좌절스럽고 슬픈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언니가 내게 물었다. "넌 런던아이 봤겠네?" 난 그 질문이 후에 내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 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자랑스레 대답했다. "나 런던아이 바로 옆에 살았어요! 걸어서 10분 거리!" 난 반 년 정도를 런던아이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았고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런던아이 앞 잔디밭에 앉아 테이크아웃 음식을 먹곤 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런던아이를 쳐다보며 런던의 흉물이자 관광산업품이라고 생각도 했고 저 줄을 서서 굳이 저걸 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도 가졌었지만 런던아이가 가진 캡슐이 몇 개인지, 저것은 누가 움직이고 대체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나와 이 작가의 차이이자 내 상상력의 한계였고 그것은 곧 나는 글 쓰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바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언니의 질문, 나의 대답을 떠올리게 하며 좌절감 열 스푼과 재미 열 한 스푼과 자괴감 열다섯 스푼 정도를 수시로 내게 떠먹여 주었다.

   귀 한 쪽이 잘 들리지 않아 모노, 모노가 만든 게임 모노레일, 모노레일을 만들었으니 미스터 모노레일. 제목에서 오는 이런 순환은 볼(ball)의 움직임 즉 원의 움직임과도 상통한다. 게임의 마지막 칸을 향해 언제나 주사위는 굴러가고 어느순간 게임은 끝이나고 다시 주사위를 굴리면 게임은 시작되듯, 우리도 삶도 지구도 우주도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다. 데굴데굴, 그러다 한 번 충격이 오면 통 하고 튀기고 다시 데굴데굴. 모노의 인생도 그랬을 것이다. 상아 주사위를 줘 버리고 인생이 꼬였다 했지만 그건 한 순간의 통일 뿐 다시 데굴데굴 굴러 갈 것이다. 게임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나야하듯 우리도 우리의 종착역까진 그렇게 굴러가야 하니까.

   소설의 내용과 더불어 작가가 자기 자신을 위해 썼다는 이 이야기의 창작 배경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인생이 던져준 우연에 맞춰 나아갔고 그 안에서 나름의 사건을 부딪히며 자신만의 게임 세계를 창조한 모노는 '기업열전' 등의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성공신화를 보여주고 있고 나 하나를 위한 세상을 창조하며 자신의 대표작을 바꾸어 놓은 것 같은 작가는 '역시 김중혁'이라는 찬사를 아깝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세상이 던져 놓은 우연을 두려워 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진짜 모습은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뭐 어쨌든, 삶이 어떻고 우연이 어떻고 세상이 어떻든 간에 말이다. 이 책이 미치도록 재미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상상력이 안드로메다까지 통통 거리며 나아갔다는 건 백번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솔직히 '좀비들'을 읽으며 조금 실망하면서도 난 김중혁 작가가 분명 일을 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 내 뺨을 철썩 철썩 때리며 보았느냐, 들었느냐, 느꼈느냐, 믿느냐 라고 물으신대도 난 믿습니다! 라고 엄청 크게 외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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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댕 2011-09-0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문학동네 카페에 요 리뷰 살짝 소개했습니다.
(http://cafe.naver.com/mhdn/29669)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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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대중매체들이 실시간으로 국내외의 소식을 전해온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반가운 소식부터 몸서리 쳐지는 소식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귀에 들어온다. 인터넷을 켜면 포털사이트 메인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할만한 헤드라인들이 단 한 번의 클릭을 기다리고 있다. 넘치는 정보 속에 살아가며 우리는 점점 무뎌진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말했듯 노출 되는 수많은 잔혹한 영상과 사진 그리고 뉴스들은 끔찍한 사건들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서 우리를 덤덤하게 만들어 간다. 무뎌진 우리는 사건의 경중에 따라 몸서리 치는 정도를 달리해가며 쉽게 사건을 받아들이고 또 잊는다. 하지만 여기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여행하는 한 사람이 있다.

    한 남자가 땅을 보며 아주 느릿느릿 걷는다. 그러다 잠시 길을 멈추고 그 옆을 지나가던 나에게 묻는다. 이 곳에서 죽은 누군가를 아느냐고. 수많은 죽음과 간접적으로 마주했던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제야 기억한다.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는 내게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식으로 사랑받고 감사 받았는지를 묻는다. 난 깨닫는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사람을 그렇게 다시 기억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며 우리는 그것들을 예방하고 방지하는 법이 아니라 빨리 쉽게 잊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듯 하다. 크고 작은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지만 그것은 곧 얼마 가지 않아 잊혀져 버린다. 또 다른 사건이 기존의 사건을 덮어가는 순환고리 속에서 어쩌면 우린 더 큰 사건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순간들이다. 시즈토가 손을 올리고 모아 애도하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이 있다면 우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일들과 그 일에 엮인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에 관해. 우리에게 온 순간은 과거의 순간순간을 불러낼 것이며 그 순간순간을 기억한다면 우린 조금 더 고운 사회에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시즈토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이해하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여유조차 잊어버린 사람이 결국 알지 못하는 모두를 위해 하게 된 그 행동을 말이다.

    그의 여정이 길어질 수록 그를 스치고 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그와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밀접해진다. 그 길 위에는 사랑이 숨쉬었고 그 사랑 안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의 모습이 되어갔다.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즉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 기억의 의미 속에는 다양한 삶의 선과 악이 있었고, 다양한 삶은 모두가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우린 결국 마지막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셈이기도 하니까.

    시즈토를 둘러 싼 세 사람의 이야기는 시즈토의 애도에 담긴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악은 선이 되기도 하고 선은 악이 되기도 하고,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고, 그리고 삶과 죽음은 일직선상에 있다는 그 모든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이 인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텔링의 기술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어머니의 죽음을 챙기지 못하는 시즈토의 모습은 모순적이다. 하긴 뭐 어떤가, 우리 삶의 어떤 모습이 모순적이지 않던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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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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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일이다. 두꺼운 책은 겁부터 내는 내가 박범신의 책은 두꺼울 수록 두근거리며 마주하게 된다. 저 두께 속의 이야기가 날 얼마나 텍스트 속으로 침몰시킬지 첫장이 펴지기도 전에 기대가 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오래 전 읽은 박범신의 다른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현재는 과거의 이야기에서 시작 된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세력과 그들이 행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도 모두 과거부터 시작 된 것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가 될 것이다.'라고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지금과 과거에 관한 허구의 기록이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다. 모두에게 폭력을 당해 온 한 남자에게 어느 날 말굽이 찾아온다. 그 말굽은 그가 부른 그의 욕망의 발현이자 과거에서 넘어 온 폭력의 잔해이기도 하다. 출생, 신분, 외모, 모든 것이 미천하였던 것이 그가 맞아야 했던 죄였으며 그 죄를 감내했던 시간동안 사라져간 슬픔이 그의 폭력의 근원이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맞닿아 있으며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도 이어져간다. 말굽은 점점 그를 정복하고 하나의 주체가 된다. 그가 원치 않았던 폭력이 어느 날 그의 안에 자리잡고 그것을 이용하여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굽은 점점 그의 안에 자리잡고 그의 내면에 자리한 폭력의 기억들을 되살려가며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결론은 완벽하지 않았다. 과거부터 이어 온 폭력의 근원이 너무 쉽게 한 사람의 양심으로 인해 붕괴되는 모습은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 글을 극단적인 허구로 이끈다. 이미 세상에 폭력에 익숙해 진 나는 더 큰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짓눌렀던 힘에 대한 잔혹한 보복을 해 주길 바랐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 힘이 나타난대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희망을 보여주는 이유는 어쩌면 보랏빛 점을 가진 그 소녀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진정한 폭력을 확인한 후, 그의 유일한 구원이었던 그 소녀를 영원히 깨끗하게 지키고 싶었던 그가 택한 또 다른 희망의 모습. 그 모습은 완벽하지 않은 결론조차 괜찮게 만들만큼 희미했다. 모든 것은 끝이 났다. 하지만 저 깊숙한 어느 곳에서 말굽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가만히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디뎌 본다. 내 발 밑 어딘가에서 말이 땅을 박차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끝이 났지만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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