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이상한 일이다. 두꺼운 책은 겁부터 내는 내가 박범신의 책은 두꺼울 수록 두근거리며 마주하게 된다. 저 두께 속의 이야기가 날 얼마나 텍스트 속으로 침몰시킬지 첫장이 펴지기도 전에 기대가 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오래 전 읽은 박범신의 다른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현재는 과거의 이야기에서 시작 된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세력과 그들이 행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도 모두 과거부터 시작 된 것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가 될 것이다.'라고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지금과 과거에 관한 허구의 기록이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다. 모두에게 폭력을 당해 온 한 남자에게 어느 날 말굽이 찾아온다. 그 말굽은 그가 부른 그의 욕망의 발현이자 과거에서 넘어 온 폭력의 잔해이기도 하다. 출생, 신분, 외모, 모든 것이 미천하였던 것이 그가 맞아야 했던 죄였으며 그 죄를 감내했던 시간동안 사라져간 슬픔이 그의 폭력의 근원이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맞닿아 있으며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도 이어져간다. 말굽은 점점 그를 정복하고 하나의 주체가 된다. 그가 원치 않았던 폭력이 어느 날 그의 안에 자리잡고 그것을 이용하여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굽은 점점 그의 안에 자리잡고 그의 내면에 자리한 폭력의 기억들을 되살려가며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결론은 완벽하지 않았다. 과거부터 이어 온 폭력의 근원이 너무 쉽게 한 사람의 양심으로 인해 붕괴되는 모습은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 글을 극단적인 허구로 이끈다. 이미 세상에 폭력에 익숙해 진 나는 더 큰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짓눌렀던 힘에 대한 잔혹한 보복을 해 주길 바랐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 힘이 나타난대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희망을 보여주는 이유는 어쩌면 보랏빛 점을 가진 그 소녀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진정한 폭력을 확인한 후, 그의 유일한 구원이었던 그 소녀를 영원히 깨끗하게 지키고 싶었던 그가 택한 또 다른 희망의 모습. 그 모습은 완벽하지 않은 결론조차 괜찮게 만들만큼 희미했다. 모든 것은 끝이 났다. 하지만 저 깊숙한 어느 곳에서 말굽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가만히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디뎌 본다. 내 발 밑 어딘가에서 말이 땅을 박차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끝이 났지만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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