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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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대중매체들이 실시간으로 국내외의 소식을 전해온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반가운 소식부터 몸서리 쳐지는 소식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귀에 들어온다. 인터넷을 켜면 포털사이트 메인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할만한 헤드라인들이 단 한 번의 클릭을 기다리고 있다. 넘치는 정보 속에 살아가며 우리는 점점 무뎌진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말했듯 노출 되는 수많은 잔혹한 영상과 사진 그리고 뉴스들은 끔찍한 사건들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서 우리를 덤덤하게 만들어 간다. 무뎌진 우리는 사건의 경중에 따라 몸서리 치는 정도를 달리해가며 쉽게 사건을 받아들이고 또 잊는다. 하지만 여기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여행하는 한 사람이 있다.

    한 남자가 땅을 보며 아주 느릿느릿 걷는다. 그러다 잠시 길을 멈추고 그 옆을 지나가던 나에게 묻는다. 이 곳에서 죽은 누군가를 아느냐고. 수많은 죽음과 간접적으로 마주했던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제야 기억한다.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는 내게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식으로 사랑받고 감사 받았는지를 묻는다. 난 깨닫는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사람을 그렇게 다시 기억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며 우리는 그것들을 예방하고 방지하는 법이 아니라 빨리 쉽게 잊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듯 하다. 크고 작은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지만 그것은 곧 얼마 가지 않아 잊혀져 버린다. 또 다른 사건이 기존의 사건을 덮어가는 순환고리 속에서 어쩌면 우린 더 큰 사건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순간들이다. 시즈토가 손을 올리고 모아 애도하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이 있다면 우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일들과 그 일에 엮인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에 관해. 우리에게 온 순간은 과거의 순간순간을 불러낼 것이며 그 순간순간을 기억한다면 우린 조금 더 고운 사회에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시즈토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이해하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여유조차 잊어버린 사람이 결국 알지 못하는 모두를 위해 하게 된 그 행동을 말이다.

    그의 여정이 길어질 수록 그를 스치고 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그와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밀접해진다. 그 길 위에는 사랑이 숨쉬었고 그 사랑 안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의 모습이 되어갔다.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즉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 기억의 의미 속에는 다양한 삶의 선과 악이 있었고, 다양한 삶은 모두가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우린 결국 마지막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셈이기도 하니까.

    시즈토를 둘러 싼 세 사람의 이야기는 시즈토의 애도에 담긴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악은 선이 되기도 하고 선은 악이 되기도 하고,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고, 그리고 삶과 죽음은 일직선상에 있다는 그 모든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이 인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텔링의 기술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어머니의 죽음을 챙기지 못하는 시즈토의 모습은 모순적이다. 하긴 뭐 어떤가, 우리 삶의 어떤 모습이 모순적이지 않던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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