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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 아슬하게 이어지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던 드라마가 있었다. 2001년 이경영, 이요원이 주인공을 맡았던 <푸른안개>라는 드라마였다. 당시 이경영은 부인의 덕으로 대기업의 충수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요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의 나이 차이는 상당했고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통념상 '불륜'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드라마에서 그린 그들의 사랑은 결코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성공과 부를 거머쥐었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자리에 있던 한 중년남자의 욕망은 젊은 여성의 육체 혹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었다는 점이 강조되었기에 '불륜'으로 치부될 수 있는 그들의 사랑은 자아를 찾는데 도움이 된 하나의 방법적인 것일 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아직 그 욕망을 이해하기 어린 나이였던 나는 이상하게 그 드라마에 끌렸었고 이경영을 안쓰럽게 여기며 이해하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요원을 떠나보내고 시골에서 홀로 헌책방을 꾸려가며 행복해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라는 말은 '스스로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데에서 온 말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경영은 사랑, 이별, 독립 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세상이 정해 놓은 수많은 규범을 깨트려야만 했지만,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때로 그런 선택을 하기도 해야한다고, 어린 나는 그렇게 그 드라마를 이해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그 드라마를 떠올렸다,
이 책에는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 다른 모습으로 사랑을 지키려 하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부인에게 기생하며 소소한 번역일을 하며 사는 루이와 유능한 증권중개인 머피, 이 두 남자는 한 여자 노라를 사랑한다. 입센의 '노라', 베케트의 '머피' 그리고 프랑스의 '루이'왕들, 이들을 연상시키는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범상치는 않다. 노라는 머피와 루이 사이를 오가며, 자유 연애를 즐기지만 기다리는 머피와 루이에게 그녀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상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애 방식은 다소 다르다. 루이는 부인을 속이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이성(노라)을 향한 욕망, 동성(추상적으로 나타나있기는 하다.)을 향한 욕망, 규범(아내)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 이 세가지 욕망에 충실하게 따르며 가장 큰 노라라는 욕망을 위해 다른 두 욕망을 이용할 줄 안다. 하지만 그는 알고있다. 자신의 마지막은 노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머피는 그렇지 않다. 그는 노라를 사랑하지만 노라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때론 사랑이 그것을 뒤흔들지만, 그는 사랑에 그 모든 것을 포기할만한 용기를 갖지는 못한다. 결국 그는 규범 앞에 무너지고, 자신보다 더 열정적인 움직임 앞에 노라를 내어놓는다. 그리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노라 역시 안정적인 삶에 약하고 그러면서도 격렬한 사랑을 원하는 그런 나약한 여자일 뿐이다. 이런 세 사람의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 복잡한 관계를 아름답게 그려놓는다. 그리고 그들보다 한 세대 위에 그런 사랑을 이미 결심했을 듯한 루이의 부모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했을테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테지만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규범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그들에게서 이 세 젊은이들의 사랑은 어느정도 타당성을 인정받는다.
결국 머피는 성공적인 길을 선택하고, 결국 루이는 혼자인 삶을 택하고, 결국 노라는 루이를 찾아오는 것처럼 결말은 제공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라면, 이 제목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은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이들의 욕망이 끝이 없으려면,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또다른 욕망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머피는 계속해서 노라에게 돈을 주며 노라를 자신의 곁에 두어야 하고, 루이는 자신을 찾아 온 노라를 거부하며 또 다른 여자에게서 그 욕망을 풀어야 하고, 노라는 그런 루이를 잡아야 한다. 그것을 알기에 작가는 마지막을 모호하게,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으로 장식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 그것은 규범 앞에서 너무 딱딱해진다. 가장 말랑말랑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좋을 감상적인 것이 한없이 길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것은 세상이 그리고 우리가 정해놓은 감정의 한계선 때문이다. 사랑에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인지를 정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결국 더 강하게 노라를 잡은 것은 루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때론 우리가 규범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