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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까요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사실 며칠 전부터 이 책의 리뷰를 써 보려고 인터넷 창을 계속 띄워둔 상태였다. 어느 책이야 리뷰 쓰는 것이 쉽겠냐만은, 이건 좀 곤란했다. 이별의 아픔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쿨하다'는 말의 사용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이 떠올랐다. 이거구나. 이별의 아픔, 알 것도 같다. 누군가를 깊이 좋아해 본 기억도 없고, 만나는 이성에게 모든 걸 바쳐본 기억도 없고, 그렇기에 이별 역시 늘 미적지근했고 그런 내게 누군가는 쿨하다고 했으나 나는 그건 쿨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왜 마음이 아프지 않겠나. 깊이 빠져들지 않았다고 해도 그와 내가 보낸 시간이 있고, 장소가 있고, 우리가 나눈 대화가 있는데, 그것들을 함께 한 상대를 현재로부터 분리해 낸다는 것이 어떻게 쉽겠나. 그저 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을 뿐이다. 마음이 아프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 내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괜찮은 척, 이쯤이야 누구나 겪는 흔한 청춘의 한 퍼즐조각인 척 그냥 그랬던 것이다. 누군가와 헤어진 후, 누구보다 오랫동안 혼자서 미안해하고 혼자서 속상해하고 그에 대한 배려로 한동안 마음의 문을 닫아놓는 주제에.
이런 것을 떠올렸다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한 셈이다. 이 책은 소수의 이별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별 이야기이다. 이별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흔한 것이라 누구나 경험을 하지만 모두의 대처법은 다르다. 하지만 그 다양한 대처법 속에는 상실의 아픔과 슬픔이 공통적으로 존재하기에 어쩌면, 그 다양함은 결국 하나를 바라보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상실의 회복.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이 소설집 속 9개의 단편을 이끄는 주인공들도 다들 그런 시간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이별 이야기의 정점은 이 책의 첫번째 단편 <이별의 과정>이 찍는다.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이별'을 이야기하는 이 단편에서 서른 다섯의 '나'는 나의 지난 이별을 회상하며 아빠의 이별을 언급한다. 아빠의 이별 상대는 한 때 내 피아노 선생님이었지만, '나'도 그녀와 이별했고 어느새 그녀를 잊고 살았음을 떠올리며 결국 우리는 연애의 끝으로서의 이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의 이별을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다른 단편들도 마찬가지다. 연애, 혹은 결혼의 끝을 경험하거나 혹은 떠올리며 우리가 잊고 살았던 '기억'과의 이별을 포괄한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말하는 이별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반복하는 망각이라는 것에 대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지속되는 현상이고, 그 지속되는 현상이 우리에게 때로는 권태감을, 때로는 상실감을 제공하는 것일테다.
그러니 절대 쿨할 수 없는 것이고, 쿨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별이라는 것 앞에서 말이다. 그 앞에서 쿨해지는 것은 지금의 권태감이나 상실감마저 부인하는 것이고, 그것은 내 감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어쩌면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부정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얘기하건데, 나는 쿨하지 않고 쿨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쿨해지려고 노력하지 말자. 마음껏 아프고 속상해 하자. 물론 이 마지막 말은 쿨할 생각도 없으면서 쿨하게 보여지는 내게 하는 쓴 충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