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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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거짓말은 언제까지나 거짓말로 머물러 있지 않아. 거짓은 어느새 그 힘으로 진실이 되어 버리고, 우리는 함정에 빠지고 말아.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해. (p.152)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라는 섬뜩한 부제가 다가온다. 두 번째의 의미를 떠올린다. 단순한 순서의 의미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등수로 채점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아둥바둥 애를 써도 늘 2등 밖에 못하는 불운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찌되었던 좋다. 선택 된 아이는 마법 같은 힘에 의해 세상이라는 판에서 밀려나거나 거대한 힘에 의해 먹히고 만다. 표지에서 보여지는 그 이야기들이 이 책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 것만 같다. 자, 이제 이야기의 괴담 속으로 빠질 차례이다.

학교의 연못이 배경이 되는 괴담이 있다. '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을 찍으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괴담의 주인공들은 형제에서 1등, 2등 사이로 때론 세 명의 아이로 변화하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한 아이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완전히 제거 된다. 그 아이를 기억하는 것은 그 곳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과 그 사진을 찍어준 사람 뿐이다.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으로 그들은 공범자가 되고 그들의 죄는 나눠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죄는 줄어드는 것일까? 두 번째 아이가 없어지면 두 번째 라는 자리 역시 사라지는 것일까?

한 편의 영화같이 흘러가는 이 이야기가 주는 소름의 근원을 아주 금새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것은 이 것이 허구를 가장한 우리의 실화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죽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피해자는 한 명이지만 가해자는 여럿이라 그 누구도 자신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신경전을 보며 외면한 아이들 역시 가해자지만 눈물 한 방울 떨구는 것으로 자신이 가해자였음을 부인한다. 아이의 죽음은 화제가 되지만 빨리 잊혀지기도 한다. 결국 죽은 아이는 따돌림으로 한 번, 잊혀짐으로 한 번, 그렇게 두 번의 그림자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가 죽은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따돌림의 대상으로 자리잡는다. 뉴스에서 너무나 흔하게 보이는 이야기들, 그래서 이제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그것이 이 책의 저변에 깔려 있어서 우리의 소름은 그 아이들이 잊혀져 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올라온다.

결국 우리 역시 그들을 빨아들인 연못의 괴담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이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 준 사진사이며, 그들 옆에 서 있었던 첫 번째 아이이기도 하다. 첫 번째 아이였기에 우리는 살아남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엔 허전함이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반전은 경민이라는 선생의 시각에서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경험하고 공감했던 이유없는 악의가 서늘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악의는 이유가 없어보이지만, 자신을 외면한 세상에 대한 경멸과도 같다. 하지만 그 세상이 그녀에게 마지막 조소를 던지 듯, 그녀의 악의가 닿았던 곳은 수많은 아이들이 잊혀지는 가운데에서도 강렬히 버티고 있다. 그 밑바닥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을진 몰라도 외면상 여전히 굳건하다. 그것이 부의 논리임을 주장하고 있는 듯 하다.

아주 조금은 이야기의 헛점이 눈에 띄지만, 그것은 작가의 욕심 탓이 아닐까 한다. 너무 많은 걸 한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려다 보니 이야기의 구석구석은 조금씩 엉성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이 세상을 함축시켰다는 것, 그것은 분명히 작가의 파워이다. 어쩌면 작가 역시 첫 번째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가 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야기는 남을 테니 그녀의 노력은 이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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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메랄다 산에서 인디고 섬까지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2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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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기 전, 사이드 스탠드의 불빛에 의지 해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을 넘긴다. 이 책을 읽다 잠이 들면 신기한 꿈들을 꾸게 될 것만 같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몽환적인 기분이 책장을 따라 넘어온다. 몽글몽글한 기운이 글자를 읽는 눈에서 부터 시작 해 온 몸으로 전이 된다. 기분이 붕 뜨다보면 어느 새 에스메랄다 산에서 부터 인디고 섬까지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 전의 책 『아마조네스의 나라에서 북소리 사막까지』가 환상적인 서사로 음독의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면, 이 책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면이 많아서 최대한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 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얼음나라는 북극 툰드라 지방이 떠오르고 거인섬은 이스터 섬이 연상 된다. 그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들과 연관시키다 보면 이 이야기가 지명만 바꾼 실화인지 정말 허구의 이야기인지 혼동이 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 순간이 즐거운 것이다. 어쨌든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그 곳을 마음껏 상상할 자유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프랑수아 플라스도 같은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장소에 대한 강한 인상 탓에 그 곳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이어갔고 그것이 하나의 매력적인 이야기로 탄생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작가와 나의 시공간이 분리 된 공감은 꽤나 짜릿하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이야기 책으로 남지 않고 하나의 특별한 책이 되어 버린다. '특별'이라는 그 두 단어는 어째서 이렇게 좋은 것일까.

독자를 즐겁게 하는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치는 지난 이야기로의 회귀이다. 이 책 속에서는 지난 책 속에서 찾았던 캉다아 만을 언급한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활용될 지는 모르겠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이 허구의 세계에 실체감을 더욱 불어 넣는다. 또한 오르배 섬에 대한 언급도 존재한다. 그것이 가장 큰 덩어리이자 허구로 존재하던 오르배 섬을 회자 시키며 그것도 하나의 실재가 된다. 허구 속의 허구가 맞물리는 그 시점에 모든 것이 생기를 띄고 그것을 목격하는 독자는 즐겁기만 하다.

알파벳이 하나씩 지워져 간다. 하나의 알파벳에 흥분하던 어린 시절 나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각자의 알파벳은 사라지고 하나의 큰 이야기가 남는다. 마치 알파벳이 하나의 단어가 되고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문장이 되는 것을 발견하던 그 때의 희열, 그것이 찾아온다.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을 두 권째 보고 있다. 두 권을 읽는 내내 찾아온 것은 환희였고 남은 것은 짜릿한 모험을 한 경험이다. 그러니 나머지 책도 궁금해 지는 것이다. 내 알파벳은 하나씩 더 지워질테고 어쩌면 그것이 아쉽겠지만 완성의 순간은 늘 기다려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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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조네스의 나라에서 북소리 사막까지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1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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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때, 찢어질 듯 날카로운 여전사들의 고함이 하늘을 찔렀어. 이어 셀 수 없이 많은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사가낙스 족 군사들한테 쏟아졌다네. 여전사들의 화살은 굵은 빗줄기가 되어 갑옷으로 무장한 적들의 가슴팍을 후벼팠어. 방패를 뚫고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지. 쉭쉭 소리를 내며 마치 줄무늬처럼 하늘을 온통 매웠어. 이어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화살촉보다 더 날카로운 여전사들의 함성이 허공을 찢어놓았다네. 그 소리는 창과 방패가 부딪히는 소리를 무색케 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어.

책을 받아들었을 때의 촉감. 적당한 묵직함과 기분좋은 책 등의 느낌.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이라는 설레게 하는 큰 제목. 때론 그런 감정들이 책을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첫 느낌에 당장 책을 펴보지 않고는 못 버티게 된다. 적당히 밀고 당기기도 하고 알아볼 시간도 천천히 갖고 나서 깊게 들여다 보는 게 사람과의 관계라면, 책과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마음에 들었다면 그냥 딱 펴고 읽으면 된다. 그리고 미소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 만남이 꽤나 만족스럽다는 몸의 신호이다.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이라는 이 시리즈의 큰 제목을 봤을 때, 그리고 삽화를 한 장 봤을 때, 어쩌면 그 때 이미 이 책에 빠져든 지도 모르겠다. 어마어마한 상상력이 펼쳐질 것이고 나는 그 속으로 빠질 것이라는 걸 예감이라도 한 듯 그 제목과 삽화 한 장에 이미 매혹되었었다. 그리고 책이 한 장 펴졌을 때 나도 모르게 나는 음독을 즐기고 있었다. 홀로 씌여진 그의 글이 혼자서 소리 없이 읽어 내리는 나의 목소리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되살아 난다고 하던 다니엘 페낙의 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이야기가 계속 되는 동안, 나는 아마조네스의 여전사가 되었고, 바일라바이칼의 무당이 되었고, 캉다아 만의 해적이 되었고, 북소리 사막을 건넜다. 그 여정 속에서 지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 수 있다던 오르배 섬의 지리학자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환상적인 그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지혜는 번득였고 그 이야기를 도와주는 그림들 속에서 세상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말의 움직임이 이야기의 움직임 못지 않게 아름답다. 음독을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 한 단어, 한 단어 소리를 내 읽다보면 어느 새 내 목소리가 유포네스의 류트가 된다. 그러니 꼭 소리내 읽어 보자. 이런 책을 만나는 순간엔 늘 읽어 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아쉬워 진다.

A부터 Z까지 24개의 이야기가 6권을 통해 이뤄진다. 각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사람들은 작가의 그림으로 다시 한 번 실체를 얻는다. 음악적 언어로 한 번의 실체성을 얻었던 것들이 선과 색을 입어 뚜렷해진다. 그 기분이 마치 영화화 된 해리포터를 보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순간과도 비슷하게 다가온다. 이 정도 된다면, 남녀노소 누구에게 소개해도 아깝지 않다. 이 멋진 이야기를 나 혼자 알고 싶은 욕심도 들지만 욕심도 자연과 그것을 존중하는 인간 앞에선 무력하다는 것을 이 이야기들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유포네스의 류트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이야기는 욕심을 감추고 모두에게 전해주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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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먼 여행 아시아 문학선 2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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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을 기억한다. 카스트 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인도인들이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려 아둥거리는 모습은 적절한 균형이라는 역설적인 제목 앞에서 서글펐고, 카스트 제도만큼이나 엄격한 부의 지배논리 하에서 아둥거리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져 지금의 우리를 더욱 안쓰럽게 했었다. 그 느낌을 기억하기에 이 작가의 또 다른 책과 마주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때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 되는지를 이미 경험한 까닭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감정의 깊이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전달할 줄 아는 글, 그 맛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그럼에도 용기를 내게 했다. 그렇게 인도의 가족을 통한 우리 모두의 가족 이야기는 시작 되었다.

손홍규 작가는 이 책의 발문에서 이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건 제발트를 읽은 후 자신이 바뀌었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과도 비슷했고, 개인을 변화시키는 글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책이 넘어갔고 세대는 변화해도 가치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가장 굵은 뼈대가 만만치 않은 책의 두께 위로 불쑥 솟아나왔다.

세대가 바뀌는 동안 한 가정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떨어지기는 쉬웠지만 올라가기는 어려워서 한 번 오줌 냄새로 뒤덥힌 그들의 삶은 나아질 줄 몰랐다.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너무나 거대해서 그 크기에 압도 된 희망은 또 다시 도망갔다. 멀어진 희망을 바라보며 그들은 다시 희망을 쫓는다. 각자 여러 종류의 희망을 여러 곳에서 기대하지만 그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삶을 지속시키는 것은 절망 뒤에 찾아 올 희망에 대한 기대니까. 그 기대를 가지고 저마다의 능력치로 우리는 또 버텨낸다. 세상은 바뀌고 시간은 흐르며 삶의 가치 역시 변하지만 그 기본은 같기에 결국 다양하게도 같은 삶이다. 아버지의 기대를 부정하며 자신의 인생을 찾는다던 소랍이 마지막에 아버지를 다시 존경하게 되고 그 옆에 서는 장면은 그 모든 의미를 담는다. 삶은 여행이라던 그 말이 떠오른다. 그 여행에 우린 모두 동참하고 있지만, 그토록 먼 여행을 하기엔 너무나 힘든 세월이다. 하지만 언제 힘든 시절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너무나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하는 작가의 재주는 이번에도 빛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를 보고 우리를 보고 세계가 보여진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소설이 몰입도를 흐리지 않는 것은 나, 너, 우리가 공감할 모든 이야기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까닭일 것이다. 그럼에 또 읽을 것이다. 그 힘든 세월을 글을 읽으며 느꼈고 또 다시 힘들어졌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 것처럼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은 계속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무언가를 던져줄 것이다. 그것을 얼마나 높은 점수로 잘 받아먹느냐는 이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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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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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영향력이 커 지면서, 독자와 소통하게 되는 건 작가 뿐만의 일은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출판사 역시 독자와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에도 내가 유난히 애정하는 건 북스피어의 블로그(http://www.booksfear.com) 이다. - 직원 아님. 북스피어의 블로그를 꾸려가는 건 북스피어의 대표이다. 북스피어는 소규모 출판사임을, 소위 말하는 장르문학 출판사임을 숨기지 않는다. (얼마 전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기자와 김중혁 작가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 '장르문학'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편의상 써 보도록 하자.) 그러면서 북펀드를 모집하고 독자 교정을 모집하고 독자와 출판사 직원들간의 만남을 끊임없이 주선한다.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이고, 요즘 많이 하는 추세와 다름 없어 보이지만 그 과정에는 북스피어 만의 재기와 북스피어 대표만의 고집이 숨어 있다. 그 재기와 고집에 반한 독자는 한 작가의 전작주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출판사에서 내는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모비딕 출판사의 책을 놓고, 왠 북스피어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다 이 책의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 등단을 하고, 마흔 일곱 나이에 전업 작가로 들어서선 늦은 만큼 일분 일초의 허비 없이 글을 썼다는 문학에의 애정을 보여준 일본 추리 소설계의 거장. 이 거장의 책은 두 출판사, '모비딕'과 '북스피어'에서 판형과 디자인을 통일하여 출간 되고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하나의 숙원 사업처럼 되어 프로젝트 형식으로 두 출판사가 힘을 합쳐 출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직원 아닌데 자꾸 직원처럼 흘러가네;;) 자신의 신념이 닿아있는 책들을 소신껏 출판하는 모습이 낭만따윈 없어야 한다는 출판계에 마지막 남아있는 낭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분야의 마니아들이 말하는 스릴을 온전히 느끼기엔 그 쪽 감성이 모 나 있는지라, 추리소설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내게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을 준 건, 마쓰모토 세이초가 아니라(사실 누군지 몰랐으니까) 순전히 이 두 출판사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잠복>을 읽은 후엔, 이제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선택할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1955년에서 1957년 사이에 발표 된 단편들이라는 이 작품들은 지금 쓰여지는 작품들과 비교해도 결코 촌스럽다거나 색이 바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전의 느낌이 없는 고전, 그것이 내가 이 책에 붙인 또 하나의 이름이다. 악을 행한 자가 갖는 불안감, 욕망이 현실을 지배할 때 생기는 균열, 타인의 삶에 대한 집착 등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성격은 그 시절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작품은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동시대라는 것을 무색하게 만든다. 책에 수록 된 단편 중 <일년 반만 기다려>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남자가 등을 돌릴 것이란 걸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는 남자의 독백은 선과 악을 넘어서 용인될 수 있는 거짓이 어디까지일지 생각하게 했다.

마지막 단편으로 향하는 속도가 아쉬웠고, 『밑줄 긋는 남자』에서 로맹가리의 책을 일년에 하나씩 아껴 읽는 여자 주인공의 심정이 내게 왔다. 하지만, 마츠모토 세이초를 나는 너무 늦게 만났고 그렇기에 지금부터 열심히 그의 작품을 따라가도 그가 보여준 열정 덕에 많은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은 아쉬워 할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조금 더 읽고 싶다. 조금 더,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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