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먼 여행 아시아 문학선 2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을 기억한다. 카스트 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인도인들이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려 아둥거리는 모습은 적절한 균형이라는 역설적인 제목 앞에서 서글펐고, 카스트 제도만큼이나 엄격한 부의 지배논리 하에서 아둥거리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져 지금의 우리를 더욱 안쓰럽게 했었다. 그 느낌을 기억하기에 이 작가의 또 다른 책과 마주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때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 되는지를 이미 경험한 까닭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감정의 깊이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전달할 줄 아는 글, 그 맛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그럼에도 용기를 내게 했다. 그렇게 인도의 가족을 통한 우리 모두의 가족 이야기는 시작 되었다.

손홍규 작가는 이 책의 발문에서 이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건 제발트를 읽은 후 자신이 바뀌었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과도 비슷했고, 개인을 변화시키는 글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책이 넘어갔고 세대는 변화해도 가치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가장 굵은 뼈대가 만만치 않은 책의 두께 위로 불쑥 솟아나왔다.

세대가 바뀌는 동안 한 가정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떨어지기는 쉬웠지만 올라가기는 어려워서 한 번 오줌 냄새로 뒤덥힌 그들의 삶은 나아질 줄 몰랐다.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너무나 거대해서 그 크기에 압도 된 희망은 또 다시 도망갔다. 멀어진 희망을 바라보며 그들은 다시 희망을 쫓는다. 각자 여러 종류의 희망을 여러 곳에서 기대하지만 그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삶을 지속시키는 것은 절망 뒤에 찾아 올 희망에 대한 기대니까. 그 기대를 가지고 저마다의 능력치로 우리는 또 버텨낸다. 세상은 바뀌고 시간은 흐르며 삶의 가치 역시 변하지만 그 기본은 같기에 결국 다양하게도 같은 삶이다. 아버지의 기대를 부정하며 자신의 인생을 찾는다던 소랍이 마지막에 아버지를 다시 존경하게 되고 그 옆에 서는 장면은 그 모든 의미를 담는다. 삶은 여행이라던 그 말이 떠오른다. 그 여행에 우린 모두 동참하고 있지만, 그토록 먼 여행을 하기엔 너무나 힘든 세월이다. 하지만 언제 힘든 시절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너무나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하는 작가의 재주는 이번에도 빛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를 보고 우리를 보고 세계가 보여진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소설이 몰입도를 흐리지 않는 것은 나, 너, 우리가 공감할 모든 이야기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까닭일 것이다. 그럼에 또 읽을 것이다. 그 힘든 세월을 글을 읽으며 느꼈고 또 다시 힘들어졌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 것처럼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은 계속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무언가를 던져줄 것이다. 그것을 얼마나 높은 점수로 잘 받아먹느냐는 이제 독자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