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어록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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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면, 할 일이 없을때면 24시간 뉴~스 방송, 97.3 KBS1FM을 즐겨듣는다는 흔치않은 친구C군이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나한테 한 얘기.

C : 야, 너 혹시 마키아벨리 책 중에 뭐 읽은거 있냐?
나 : 군주론을 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하도 옛날 일들을 써놓은거라 뭔소린지 잘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 읽어본적은 한번 있어.
C : 근데 그 사람은 도데체 뭐하던 사람이야??
나 :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C : 토론프로 듣다보면 그 사람 인용을 굉장히 많이 하걸랑. 개나소나 걸핏하면 마키아벨리야.

아마도, 그 '개나소'는 이 책을 보지 않았을까.-_-;;;; 이 책은 일전에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 시오노 나나미 아주머니가 엮으신 마키아벨리의 어록 모음이다. 사실 군주론을 읽어본 내 경험상, 마키아벨리는 그 책을 통해 당시 자신의 조국-피렌체-가 처한 국가적 위기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이런저런 정치적 조언들을 엮어 낸 것이라 이해도 잘 안갔고, 뭔소리를 하려는지 맥락을 잡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다소간 덜어준다. 시오노 나나미 아줌마의 적당한 편집은 참으로 '인용하기 좋은 마키아벨리'를 만들어냈다. 확실히 마키아벨리가 그의 저작에서 보여주는 사시나무 떨리듯(?)날카로운, 그리고 그만큼이나 냉정한 인간에 대한 고찰, 사회에 대한 고찰은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탄성을 자아내게한다.

하지만 주의할 점!! 이 책이 '마키아벨리즘'을 이해하는 첩경일 수 있겠지만, '마키아벨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썩 좋은 책은 아니라는것, 아니 외려 이 책은 '마키아벨리'를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책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마치 '마키아벨리즘'이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사조(?)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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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영구 옮김 / 푸른숲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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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에 쫓기던 '젊은 관료'괴테가 생일을 맞아 지인들의 눈을 피해 칼스바트를 떠나는, 흥미진진한 도입부를 지나, 마지막까지 읽고 난 후의 감상 : '내가 컴퓨터 및 TV와 필연적으로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을까'

이 책이 오늘날까지 읽혀지는 이유는 아마도 괴테가 살던 시대의 독일 교양시민계층의 정서를 잘 대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 시절의 교양시민계층은 너무도 다방면에-대부분은 내가 관심없는 분야에까지-관심이 많았다는 것. 후반부에는 어찌나 지루해지던지 원. 더군다나 이 책은 괴테가 짧은 여행을 통해 쓴 책이 아닌 자그마치 2년 조금 안되는 기나긴 시간동안의 여행을 통해 써낸 책이라,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는 현대인에겐 참으로 격세지감(?)처럼 느껴지는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변혁의 시기, 새로운 것들에 대한 괴테의 정열적인 호기심과, 여행도중의 일화들을 통해 가끔씩 보여지는 괴테의 인간과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들은 그나마 이 책을 본전생각까지는 안나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분량에 너무 지루한 내용이 많았다는. 그럼에도 2개월 동안 9쇄씩이나 찍어내다니, 우리나라 독자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구나라는 생각을 할수밖에. '나만 빼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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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
크리스 하먼 지음, 심인숙 옮김 / 책갈피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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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크리스 하먼은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중앙위원이다. 이 사회주의 노동자 당에는 이젠 우리에게도 어느정도 잘 알려져있는(?)알렉스 캘리니코스나, 존 몰리뉴도 가입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우리에게 알려진 몇몇 유명당원(?)의 면모를 볼 때 이 정당이 트로츠키주의적 색체를 띠고 있음을 어렵잖게 알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신자유주의나 개량주의의 약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 만큼이나, 맑스주의, 그 중에서도 특히 트로츠키주의의 강점과 약점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단순히 신자유주의만을 비판하고 있지 않다. 케인스주의 및 다양한 수정주의경향, 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마저도 비판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비판에 역사적 실례와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수치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개인적으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기아문제가 현재에도 이렇게 심각한지는 정말 몰랐다)

난점은 그 이후이다. 과연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의 답변은 '민주적으로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것' 바로 그것이랜다. 이런 교과서적인 해결책에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그것의 실현가능성, 그리고 실현이후의 성공가능성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대안' 부분에 있어서는, 이전까지는 굉장히 의욕적인 문체로, 가차없이 수정주의와 주류적 경제학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던 저자마저도 굉장히 조심스러워 보인다. 그저 암울할 따름. 과연 우리의 대안은 이것 밖에 없는 것인가.

비판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현실적으로 벗어나기 어려워보이는 어떠한 야만과 폭력, 그리고 모순을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 동의하며 행하는 것과 비판하면서 행하는 것은 그 태도에서부터 차이가 있기에 이러한 비판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대안만 생각하면 굉장히 암울하고 안타깝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오래 전 '사회주의냐 야만이냐'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쯤 이 야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야만에 대한 거부, 언제까지 우리는 그 출발점에서 헤매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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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사는 하나다
이학영.조주현.현승윤 지음 / 거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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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경제기사는 어떻게 쓰여지는지, 잘못된 경제기사가 쓰여지는 원인은 무엇인지, 그러한 잘못된 정보를 피하고 올바른 정보를 얻어내는 비결은 무엇인지, 뭐 이런것을 알려주는 책 정도로 생각하고 구입했었다. 그런데 이건 웬걸.

책은 전체적으로 최근 경제신문을 찾아보면 나오는 기사들 즉, 경제 이슈에 대한 분석들을 주로 담고 있다. 경제기사 독법도 어느정도 나오기는 하는데, 한마디로 경제면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체육 등등 다른 분야의 기사와 경제기사를 연결해야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식. 즉, 우리도 모두 아는 사실들만 나열할 따름이다. 장점을 굳이 찾는다면, 국제 경제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몇몇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정도인데, 그 또한 그렇게 엄청나게 참신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수많은 '설명'을 제외한 주장이라 해봐야 '금산법 철폐', '출자총액제한'정도인데 이 또한 '가진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이슈인걸 보면, 개인적인 생각으론 특별히 얻을만한 무엇이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굳이 이 책이 의의를 찾는다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추천사에서 언급했듯, '신문을 활용한 경제교육의 텍스트'로서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참신함은 없지만 설명도 깔끔하고 국제적인 경제관계를 연관지어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ps.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책과 연관지어 별개로 흥미를 갖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위 개혁세력이라 불리우는 자유주의자들이 도모하고 있는 '주주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것이다. 주주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는 노동자의 그것과 비슷하기보다 차라리 대립적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은 단숨에 '주주'자본주의사회에서는 '공공의 적'처럼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은, 이 책의 사고과정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때문에 참여연대를 위시한 개혁진영이 해나가고 있는 '개혁'에 노동자, 농민에 대한 고려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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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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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동안 한학기 다니던 대학에서 본서를 읽고 리포트를 써낸 적이 있다. 물론, 당시의 나는 대학을 다니는 것보다는 다시 치르게 될 입시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고,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 책에 대한 기억은 뙤약볕 속에서 총을 쏘는 뫼르소의 모습과 이방인을 '레뜩항제(?)'라고 하시던 교수님의 발음 뿐이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그 때 본 이방인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계속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시험때문에, 혹은 리포트 때문에 하는 독서는 오래 갈수도, 의미있을 수도 없다.

이 소설의 일반적인 감상이야,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감상을 쓴다면 :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울지 않았다. 왜? 슬프지 않았으니까. 아랍인을 총으로 살해한다. 왜? 뙤약볕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어쨌건, 외견상 나름 친절하고 나름 평범한 소시민이던 뫼르소는 이러한 살해사건 때문에 법정에 선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뫼르소의 살인행위 자체와 그에 응분한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않다. 타인들, 즉 사회가 관심 있는 것은 그저 뫼르소가 '착한놈이냐 나쁜놈이냐'하는 것이다. 법정에서 수많은 증인들-뫼르소도 이전에 만난적이 있는 사람인지 기억을 할똥말똥한-이 뫼르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어느것도 진짜 뫼르소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그냥 평범한 살인자(이거 말이 좀 이상하군)일 따름이고, 행위에 따른 책임만 지면 될 사람이다. 하지만 '슬프지 않아서' 장례식날 울지 않았던 그는 이 이유로 희대의 악마가 되고 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서 사르트르의 유명한 한마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타인을 자신의 기준에서 규정지으려는 습성이 있다. 때문에 인간은 타인을 종종 괴물로 만든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타인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미워할 구석만큼 좋아할 구석도 충분히 있음을, 우리 모두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그것을 진심으로 느끼는 것이 지옥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세상을 맞을 수 있는 시작이 아닐까.

ps.카뮈는 스스로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을 굉장히 꺼렸다고는 하지만, 본 작품만 놓고봤을 때 그는 실존주의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든다. 허기사, 실존주의자로 '규정'되는 것마저 꺼렸다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진정한 실존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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