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을 위한 한국은행의 알기쉬운 경제이야기 - 2판
김진영 외 지음 / 한국은행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경제원론 한권 안 읽고 이런저런 경제학 서적을 읽는 것에 대해 뭔가 알수없는 죄책감(?)이 들어서 조순외 3인공저 경제학 원론을 읽다가 이게 무슨 시험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존재론적 회의에 빠져 미시편만 읽고 집어 치운 후, 우연히 책꽂이에 꽃혀있는 것을 발견하여 읽게 된 책이다. (즉, 이 책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나도 잘 모른다는 소리다.)

사실 본서를 굳이 읽게 된 데에는, 물론 원론적 지식을 간편하게(!) 알고 싶다는 심뽀도 없진 않았지만, 그보다 한국은행은 도대체 '일반인'이 어떻게 경제를 이해했으면 하는지가 역으로 궁금해서 읽은 면도 없지 않다.(여기서 갑자기 면접관을 면접하고 왔다는 취업준비생의 유머섞인 자조가 떠오르는건 왜인지.) 크게 미시-거시-국제경제에 그 사이 주식투자나 펀드가입등에 대한 자기계발서틱한 목차가 양념격으로 포함된 본서는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한국은행에서 나왔구나'싶은 생각이 드는 내용이다. 다소 보수적인 내용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경제용어나 시사적인 개념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라던지, 다소 딱딱할 수도 있을법한 경제원론의 내용을 알기쉽게 풀어써가며 사이사이 신문 기사를 발췌해 첨가하는 등으로 독자의 지루함을 달래는 구성은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보수적이라 할지라도 '치우치지 않은' 내용 구성은 칭찬할만 한 것 같다.

사회는 온통 경제경제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 다들 관심없어 하는것이 바로 경제인 것만 같다. (하다못해 대통령 선거 TV토론을 봐도 언제나 가장 낮은 시청율을 자랑하는 것은 바로 '경제부문'토론이다. 확인해보라!) 물론 경제학 자체의 난해함에 이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는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기실 여기에는, 상당부분 경제학에 대한 어느정도 쉬우면서도 진지한 입문서가 없다는 현실도 한몫하는 듯 싶다.

적어도 한 국가가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반대파가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여기에 시민들이 입장을 정하는 데에는 경제에 대한 '공통된 인식기반'과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헌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야기하기가, 즉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이는 사회구성원들 상당수가 경제에 관한 기본적 인식과 공통된 언어가 결여되어 있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듯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경제에 대한 공통의 언어와 기본적인 상식을 이야기해줄만한, 지금은 품절인 저렴한 가격의 본서가 다시금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사실 이런 책을 한국은행말고 어디서 출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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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20 16:29   좋아요 0 | URL
경제학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도 경제입문류 책은 체면상 안읽는 이들도 있어요.공부하는 데 체면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경제용어 사전 옆에 놓고 모르는 단어 나오면 찾으면서 읽으면 되지요.잘 하셨습니다.

率路 2008-10-21 07:28   좋아요 0 | URL
경제학이건 뭐건 입문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드네요ㅠㅠ

노이에자이트 2008-10-21 16:1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시작이 반이니까 힘을 냅시다.

率路 2008-10-29 17:33   좋아요 0 | URL
^^;;;;

가시장미 2008-10-29 04:35   좋아요 0 | URL
컥- 사람 찔리게 하는 리뷰네요. ㅋㅋ 경제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과 공통된 언어가 결여된 사람인데.. 이 책 읽으면 되나요? 더 좋은 책 있으면 추천해 줘도 좋구요. 요건 별이 세개라 좀 망설여진다는 ㅋㅋ 저 님 리뷰 읽고 지난 주에 책 두 권이나 주문했어요- 착하죠?

率路 2008-10-29 17:46   좋아요 0 | URL
어쩌죠? 저도 추천하기가 민망한 상황인데..^^;;;

주류경제학 입문서로는 걍 시간날때 멘큐 보는게 제일 낫다는게 대세인것 같던데 지금 제 상황엔 아무리 생각해도 오바같아서요ㅋ이 책은 지금 절판이라 구하기는 조금 어려우실듯.-_-;;;; 여담입니다만, 경제'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랑 '세속의 철학자들'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일단 재밌거덩요ㅋㅎ

경제 상식에 관한 책은, 찾아보면 정말 많은데,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가 기대 이상이더군요. 아울러 소위 '비주류' 경제학에 대해서는 걍 김수행 교수의 '알기쉬운 정치경제학'이 입문서로는 가장 무난한거 같아요.

가시장미 2008-10-29 19:43   좋아요 0 | URL
우아!! 전혀 민망한 상황이 아니신 것 같은데요? ^^ ㅋㅋ
세속의 철학자들은 읽었는데, 내용이 잘 생각이 안나요. 다시 읽어봐야 겠네요.

음.. 경제학 카페는 기대 이상이라고 하시니 꼭 봐야겠네요. 김수행 교수의 책은 그 후에 봐야하지 않을까 하네요.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으흐

노이에자이트 2008-10-31 16:34   좋아요 0 | URL
하일브로너나 유시민은 대중 눈높이에 맞춰 글을 잘 쓰죠? 그런 저술가가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세속의 철학자들 중 제일 흥미로운 학자는 베블렌이었어요.괴짜랄까...유한 계급론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경제학 책이 아니잖아요.

率路 2008-11-01 00:16   좋아요 0 | URL
예, 특히나 제 입장에선 그런 저술가가 더더욱 간절합니다ㅋ 여담입니다만, 베블런은 서른 되도록 뭐하나 제대로 해 놓은게 아무것도 없는 저같은 사람들이 용기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사실 백수시절(?)을 통해 체화된 씨니컬함 덕분에 유한계급론같은 책도 가능하게 된 것 아닐까요오오오오ㅋㅎ

노이에자이트 2008-11-01 15:07   좋아요 0 | URL
베블렌의 처지였다면 유한계급보다는 룸펜 계급론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여하튼 그는 그 기간 동안 독서를 통해 훗날 학식의 기초를 닦았으니 나름대로 여가?활용을 했다고 봐야죠.

率路 2008-11-05 00:12   좋아요 0 | URL
으음..저도 보람있는 여가활용을 해야 할텐데, 빈둥대는걸 너무 좋아하다보니 말이죠ㅎㅎㅎ-_-;;;;;
 
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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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천신만고' 끝에 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가 완간 되었다. 애초 출판사를 찾지 못해 '레디앙'이라는 새로운 출판사를 만들어가며(?!) 출판한 '88만원 세대'의 예상치 못한 성공 이후, 뒤의 세권은 그럭저럭 짧은 텀을 두고 무난하게 출판된 듯 싶지만, 최근의 2권 개정판 출간에서보듯, 그 또한 다소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어찌되었거나 한국경제 대안시리즈의 네번째이자 마지막 편인 본서는, 앞의 세권이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이 땅을 떠나지 않는 한)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중점적으로 설명한 것에 반해, 주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극히 '수학적'이라는 그의 사고체계가 무색하지 않게 부제부터 수학 공식으로 이루어진 흔치 않은 책인 본서는 크게 세계경제사-한국경제사-대안제시를 다루는 세 파트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무게중심은 역시나 마지막 편에 실려 있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나 그의 '무협지스런(?)'문제제기는 여전하고, 이는 이번에도 역시나 '호들갑스럽다'(혹은 과장되었다)는 류의 비판을 받을 여지는 있겠지만 역시나 논리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날카롭다. 무엇보다 지극히 사소한 사회현상의 원인을 분석하여 우리가 얼마나 황당한 세상을 살고 있는지 고발하는 그의 재기발랄한 지적은 이번에도 역시나 가슴에 와 닿는다. 대학 학부생이나 심지어 대학원생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하는 본서지만, 사실 고등학생이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쉽게 쓰여져 있는 것 또한 이전 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본서는 이전의 세권에 비해 비교적 정통(?) 정치경제학적 서술이랄까 그런 냄새가 조금 많이 난다는 점에서 시리즈의 책 중 가장 '교과서스럽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적 흐름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추잡하게 진행된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도입 과정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믿음'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보여준 듯 싶다. 여기저기서 문제는 경제임을 역설하지만, 사실 그때마다 한국 경제, 그리고 한국의 경제학은 대한민국 극소수의 부당한 부의 유지를 위한 주술적 교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서 굳이 급진적이거나 혁명적인 이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데에서 시작하여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으려는 저자의 의도는, 유럽에서도 가장 우편향된 사회인 스위스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점에서 드러나듯 굉장히 '실용적'이다. 믿음으로 질식한 경제학을 이성의 힘으로 살려내기, 사실 우석훈의 작업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오늘의 우리에겐 외려 신선하게 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만.

저자의 대안은 결국 '교육 정상화', '지방분권', '국가와 기업의 중간영역이라 할 수 있는 생협 등 제3의 영역 구축'으로 요약된다. 사실 교육정상화나 지방분권은 역대 어느 정부도 심심하면 하던 이야기라 크게 신선할 것은 없어보이지만, 본서의 대안제시는 오늘 우리의 언어로부터 소외되어버린 듯한, 일종의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로 전락해버린듯한 문제의 본질을 잘 잡아내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여담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생각과도 거의 일치해 너무 반가웠다.) 특이한 것은 '제3의 영역'에 대한 강조인데, 이는 결국 저자가 '생활로서의 경제학'이라는 기본중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내린 결론이기에 오늘의 우리 사회에 더욱 참신하면서도 적절하게 다가온다.

'국민소득 만달러만 되면..', '국민소득 이만달러만 되면..'류의 말장난이 난무하는 시대, 우리가 이만달러가 못되는 것은 다 노조때문이다! 혹은 기업때문이다!라는 단순한 정치적 공세가 신문 경제면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시대, 경제학은 실종되고 경제 신학만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우석훈의 '기본적인 것을 쉽게 써내는'전략은 정말이지 평가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이야 말로 많은 대중에게 읽혀질 수 있고, 읽혀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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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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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간의 한국사회를 돌아볼 때, 하나의 흐름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콕집어 무엇이라 명명하기 어려운 어떠한 특이한 현상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흐름은 황우석 사건이나 디워 논쟁에서 극대화된 바 있는 흐름으로, 이 사건이 남긴 충격은 진보세력으로 하여금 결국 이전의 탄핵열풍이라던지 2002년 월드컵 열기의 실체가 무엇인가마저 다시한번 고민해보게 만들 지경에 이르렀다. 이 흐름을 누군가는 쇼비니즘이라 했고 누군가는 파시즘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그렇게 단순히 파악하기에는 그 사건이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괴이했으며, 황우석의 논문조작 사실이 드러나고 디워가 미국에서 참패하는 등 따지고 보면 파국으로 끝났음에도 여전히 잔존할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지닌 흐름이란 점에서 그러한 간단명확한 설명에 다소간의 석연찮은 점이 있었음은 사실이다.

본서는 이러한 흐름을 정치경제학적 견지에서 비교적 명확하고 일관된 논리로 해석한 거의 첫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는 듯 하다. 사실 책에서 주장하는 논리라는 것이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과도한 수출지향적 경제구조라던지, 건설산업이 과부하 상태에 있는 산업구조의 극단적인 불균형 속에서 우리 경제는 어느덧 내외부의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적 단계의 초입에 들어섰지만, 우리는 사실 식민지를 경영해본 경험도, 경영할 수 있는 능력도 존재하지 않기에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역시나 비슷하게 생존을 위해서는 팽창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는 일본과 중국과 얽혀져 향후 동북아의 긴장을 불러일으킬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러한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적 경제체제라는 화두로 불안정하더라도 최대한 도모해야하는(그리고 할 수 밖에 없는)평화적 경제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경제 대안시리즈의 세번째로 그의 이전의 두 저서('88만원 세대'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법한 마지막 1%(?!)마저도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발전을 도모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본서는 결국 우리의 공격적이고 천박한 자본주의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방증하는 듯하다. 다른 책과는 달리 비교적 장기적인 문제를 논하고 있는 터라, 본서는 많은 부분 그 대상을 지금의 10대에 집중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의도는 그 내용과 문체와도 엮어져 사실 중고등학생이 읽더라도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우석훈의 문체는 단순히 쉬움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본서는 다른 사회과학 서적들과 그 궤를 달리한다.

대북 지원의 내용상의 변화과정이라던가 이라크 파병결정 과정에서의 명분과 논리들, '경제영토'라던지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수사학, 거기에 황우석 사태와 디워 논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현상에 대한 것이 우석훈의 잡담하는 듯한 화법에 걸려 들어가면, 뭐랄까 굉장히 색다르면서도 날카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한 비판과 분석의 적절성은 단순히 정치경제학 뿐 아닌 심리학, 미학, 철학등 제반학문들과 최신 이론에 의해 우리에게 굉장히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는데, 단순히 서구 누구누구 학자의 학설을 늘어놓으며 우리의 현실을 꿰어맞추기 급급한 학계의 현실에서 이러한 분석을 접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신선할 지경이었다. 솔직히 이 땅에 살고있는 시민이라면 단순히 넘어가기 어려운 황우석 사태라던가 월드컵 쇼비니즘에 대해 칼럼수준을 넘어서는 분석을 해낸 사회과학 서적이 얼마나 있을까? 이 점은 다시금 해외로 해외로 팽창을 도모하면서도 정작 팽창을 할만한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촌놈스러움'을 떠올리게 만든다.

저자는 '평화의 조건은 평화로울 때 만들어야 한다'며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의외로 굉장히 현실적이고 예상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는데, 평화로 인해 이득을 볼 '평화산업'의 비중을 전쟁과 관련한 산업에 비해 늘이는 것이라던지, 한중일 3국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이라던지 등이 그것이다. '평화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많아질 때 평화는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이는 명제는 역설적으로 지극히 이념적이고 이상적인 대안과도 연결되는 면이 있다. 사실 '평화산업'이라는 모호한 대상을 명확히하는 과정 속에서 평화적 삶의 양태, 평화적 삶의 가치관등을 정립하는 것이 가능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의 이 '촌놈들의 제국주의'적 흐름은 생태적이고 평화적인 흐름을 도모하는 세력의 현실적인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외려 생태적이고 평화적인 '삶의 양태'가 정립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어느정도 맹아가 형성되는 단계에서 판판히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저자의 문제제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으로 다가온다.

어찌보면 저자의 예상과 달리 하느님이 보우하사 한반도에 향후 30년안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전쟁은 고사하고 저자가 말한만큼의 유의미할 정도로 극단적인 긴장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팽창주의적이면서도 천박하게 공격적인 한국의 자본주의적 특성은 그러한 대외적 팽창이 억압(?!)된만큼 다른 부분에서 사고를 칠 수 있을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그것은 내부의 소수자를 강도높게 억압하는 것으로 발현될 수도 있고,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 아름다운 자연을 극단적으로 폐허로 만드는 것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또 그러한 발현과정이 진행중에 있음을 우리는 곳곳에서 어렵잖게 목도할 수 있다.) 때문에 본서의 논리를 단순히 '전쟁에 대한 몽상적일 정도로 과도한 위협론'정도로 일축하는 것은 누구보다 그 말을 하고있는 자신 스스로를 속이는 일일 것이다.

국민소득 이만불만 되면 행복할 줄 알았던 우리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경제는 나름대로 돌아간다고 하긴 하는데 그게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해도 결코 아름다워보이지는 않는다. 경제활동이란 우리가 좀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서로 돕고 평화롭게 살기위해 하는 것이고 해야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실적으로건 단순히 논리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건 심지어 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마저 있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 우리의 경제생활은 '목적전치'라는 말을 붙히는 것마저 감지덕지할 정도로 가히 정신분열증적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이 적어도 좀더 나은 가치를 지향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전환을 함에 있어 우석훈의 문제제기는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또다른 근작인 '직선들의 대한민국'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은데,(저자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두책은 여러부분에서 묘하게 엮인다.) 아무튼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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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사회 카이로스총서 1
김만수 지음 / 갈무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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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어떠한 논점으로 보느냐, 혹은 어떠한 맥락 안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석은 매우 상이해진다. 맑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거래관계를 C-M-C'가 아닌 M-C-M'로 놓는 순간 그의 정치경제학이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듯,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그 내용상의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만큼의 간단한 의미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본서의 저자 또한 굳이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즉, 책에 나와있는 내용 또한 정치경제학적 기본 지식이 있다면 충분히 추론 가능한 내용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라던지, 그에 따른 이윤율 저하 경향성을 '실업'의 프리즘으로 해석한다. 한마디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실업률의 증가 경향성을 만든다는 것인데, 책은 이처럼 지금과는 살짝 틀어진(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절박한) 부분에 방점을 찍어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전개해 나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사회학적 상상을 가능케 하는 것 같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우선 저자는 그간의 실업률 통계를 분석하며, 국제기준에 맞추어진 우리의 실업률 통계가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논한다. 단순히 1주일에 1시간만을 일한 사람들을 그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활동인구'라는 표본대상에서 제외한 채 집계되는 실업률은, 어찌보면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산업예비군들의 불만을 억누르고자 하는 기만책으로 보일 지경인데, 저자는 이러한 실업률 통계에 관한 논쟁의 소모성을 감안해서인지 이후로 줄곳 '실업률'대신 '가변자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즉, 실업률이 몇퍼센트인지를 떠나서 산업구조 속에서 근로자들의 몫이 얼마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듯 한데, 이는 상당부분 비정규직 등 불완전노동이나 '나쁜직장'을 통해 실업률을 낮추려하는 국가정책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고려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저자는 지난 30년간 주요 기업의 재무제표 등을 분석하여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 및 실업률 증가 경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내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을 참신하게 하는 요소일 뿐 아니라 논쟁의 여지가 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결정적으로 재무제표라던가 기타 기업 통계들을 통해 가변자본을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매우 난망하다는 점에 있는데, 아무튼-개인적으로 회계학적 지식이 일천한바-이러한 분석은 일단, 우리의 상식에 부합하는 '추정'정도로 감안해서 읽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러한 실업사회에서 '상대적 과소인구'와 '상대적 과잉인구'의 삶이 어떠한지, 그리고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저자의 '격정토로'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구직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채워진 마지막 부록은 어느정도 연결되어 읽히는 부분도 있다.

사실 대략의 내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 본서는 매우 모호한 성격의 책이다.(이는 저자 또한 서두에서 밝힌 바 있다.) 대략 통계학-회계학-사회학이 각 장의 중심축을 잡는 듯 하며, 거기에는 정치경제학적 마인드가 곳곳에 스며있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알 수 있는것은 실업이란 것이 숫자 몇퍼센트에 '국민성공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여러부운~'이라는 단순한 수사로 커버될 수 있을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경제학을 포함한)경제학은 차디찬 숫자로 인간의 그 복잡다단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해석하여 우리를 냉소하게 만들고, 사회학은 그 강렬함이 지나쳐서 숫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강요하는듯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의 제안-한편으론 살아남기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며, 다른한편으론 서로간의 연대를 도모하자로 요약하면 될라나?-는 저자 스스로도 의문부호를 붙히긴 했지만(마지막 장 목차의 제목은 무려 '대안?' 이다)은 다소 미흡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일런지도 모른다.

자신을 파괴해야 자신을 증식해 나갈수 있도록 운명지워진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이 고도화 되면 될수록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거대한 산업예비군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이 사회가, 그러한 필요에 의해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다수의 청년들에게 그러한 실업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적 문제로 돌려 그들 자신의 삶의 희망과 나아가 인간적 존엄성까지 앗아가 버린다는 점에 있다. 대외적으로는 틈만나면 젊은이들의 사회의 희망이라고 외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 사회가 언제나 청년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청년들이 현실을 바로보게 되는 것, 그리하여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기득권 유지에 불안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처럼 주기적으로 파괴되고 수습되는 자본주의의 싸이클은 그만큼 '비경제적'이고 그러하기에 '비영구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세상을 바로보는 것, 그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것. 어떠한 좌절에도 자신감을 잃지않고 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되, 우리가 발딛고 있는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 것, 그리하여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연대하는 것이 아닐런지. 너무 추상적이라고?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글쎄, 그에 대해서는 루쉰의 그 유명한 희망에 대한 잠언으로 답하는 수밖에.

 '희망이란/본래 있다고도 할수 없고/없다고도 할 수 없다/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

해서, 우리의 연대가 희망을 향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힘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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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23 17:39   좋아요 0 | URL
경제학 책이라서 저자가 강만수인줄 알았어요.마르크스 경제학의 범주로 실업을 분석했군요.경제학 서적도 많이 보시나 봐요.

率路 2008-08-23 20:13   좋아요 0 | URL
앗, 이렇게 방문해주시니 영광(?^^;;)인걸요. 체계없이 누군가 추천해주는건 그때그때 읽는 편이라 어찌하다보니 이런책들도 적지 않게 읽은 셈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4 00:23   좋아요 0 | URL
하하하...영광은 법성포의 굴비가 유명한데요.이거 군사정권 때 우스개인가요?

率路 2008-08-24 17:24   좋아요 0 | URL
시대를 초월한 유머 아닐까요?? 으흐흐흐흐^^;;;;;

노이에자이트 2008-08-24 20:37   좋아요 0 | URL
요즘 분위기가 군사정권 같아서 우스개도 그 당시 것으로....좀 서글프네요.

率路 2008-08-31 19:4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조금 웃기잖아요?-_-;;;(맑스를 염두에 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ㅋㅎ)
 
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때는 바야흐로 경제공화국의 시대란다. 이승엽의 홈런공을 줍겠다고 야구장이 잠자리채로 가득 매워지던 시대, 국가의 목표가 'GDP 20000불'이라는 수치로 제시되는 시대, 각자의 추억이 서린 삶이 터전이 헐리는 것을 박수치며 반기는 시대는 결국 '국민성공시대'라는 무슨 자기계발서적 광고문구 같은 슬로건을 내건 정부의 출범으로 귀결된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제공화국의 시대에 정작 '경제적 인간의 합리적 행동'같은 것은 눈씻고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이 뻔히 손해볼 일들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행하고 있다. 도시 재개발로 인한 집값 상승이나 한미FTA 체결, 혹은 각종 공공부문 민영화 등의 정책으로 인해 정작 극심한 피해를 보는 것은 대다수 서민들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러한 정책에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오늘날이 과연 경제공화국의 시대라 할 수 있을까?

혹자는 이를두고 경제'이성'이 아닌 경제'신앙'의 시대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도 이상하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어떠한 정부정책이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인지 조금만 노력하면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국민들은 자기 발등을 찍는 결정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경제라는 담론을 믿음으로라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애초 문제는 경제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이 어처구니 없는 현상에 대해 정치적 어법(혹은 프레임)의 문제라는 둥, 문화적 헤게모니의 문제라는 둥 여러 각도에서의 분석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조금씩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는데, 이러한 오늘의 난맥상이 다름아닌 '미학'의 문제라는 대담한 주장을 하고 나온 '경제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C급 경제학자'라는 우석훈이다.

애초 '대운하 책'으로 쓰여졌다는 본서는 단순히 대운하의 문제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본서가 단순히 대운하를 비판하려는 책이었다면 나 또한 굳이 만 얼마씩 써가며 본서를 구입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운하에 대한 어지간한 비판 논거는 인터넷에 널려있고 어렵게 생각 안해도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대운하 건설이 얼마나 우스운 '짓'인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점은 대운하 '그 자체'가 아니다. 대운하를 위시하여 그와 비슷한 일련의 국책사업들이 추진되고 시행될 수 있는 그 배경 자체에 저자는 줄곳 관심을 둔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거의 '재앙적인' 건설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데에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미학'이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의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를 두고 '왜 이 좋은걸 안하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거대한 어항이랄법한 청계천이나 환기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주상복합 아파트를 보고 '멋지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이야기하고 파해쳐지는 국토를 보며 가슴아파하지만 돌아서서 하는 행동은 매우 다르다. 나무 몇그루 심어놓고 키치스런 건축물 한두개 세워 이것이 생태공원입네하는 도시 미학에서 생태적 함의란 눈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 없는게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온통 개발개발개발로 귀결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어느덧 돈과 경제성장의 문제를 넘어섰다. 부동산 거품은 커져만가고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비경제성이 극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그러한 '문제'들에 한몫 기여(?)해보려고 안달들이다. 여기에 경제학적인 측면에서의 반대논거를 들이대는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재앙'이라고 여겨지는 라인강 운하를 보고 한반도 대운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복잡한 수식의 경제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그야말로 남의 다리 긁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서, 문제는 외려 우리의 미적 감수성에 있었고, 따라서 대안은 경제가 아닌 미학의 측면에서 나와야 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경제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데에야 유용하지만, 세상을 바꾸는데는 무기력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자 또한 이러한 미학적 대안으로서 '생태미학'을 제시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생태미학이라는 것 또한-미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자체에서 배태되는 난점이기도 하다만-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안의 모호함에 있는 것 같다. 생태미학의 모호함은 역설적으로 그 생태미학의 급진적인 민주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딱딱한 경제학적 서술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사회심리학적, 미학적 논거들을 친근한 어조로 들이대며, 맞는 이야기기는 하지만 대놓고 이야기하기에는 학자적 근엄성을 훼손하게 될 것 같아 다들 기피하는 이야기들을 마치 잡담하듯 천연덕스럽게 서술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도 책의 서술과 그 목적-생태미학이라는 대안의 창출?!-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본서의 그 산만함을 매우고도 남을 미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국토를 파해치고, 건물을 높게높게 올리고, '자연'이란 영역을 절멸시키는 방식으로의 성장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임은, 아울러 그러한 성장이 우리 삶에 궁극적으로 전혀 이롭지 않을 것임은 우리 스스로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대운하 반대의 압도적인 여론과 지난 몇달간 이어진 촛불집회는 수십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그러한 건설미학의 균열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불도저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되고 나아가 삶의 양식이 되어버린 시대, 불도저의 것을 불도저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라도, 그리하여 우리의 살림살이-즉, 경제-가 좀더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대안이 절실한 오늘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저자가 제시한 '생태미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모두가 한번쯤 고민해 볼만한 화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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