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알다시피 본서는 국방부 불온도서로 지정된 책이고, 불온도서라는 고색창연하면서도 다소 무시무시한 그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내용은 매우 발랄하면서도 온건한 책이다. 장하준 교수의 기존 주장이 가진 함정이랄법한 '박통 향수'부분에 취약한 점도 없잖을 정도로 읽히기에 따라서는 복고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 말인 즉슨 역설적으로 그만큼 정파적 색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물론 이 부분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책이라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공교롭게도 이 책을 군대에서 읽었다. (원채 초법적이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초적인 교양마저 있긴 하신지 의심스러운 국방부 장관님께서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헌법에마저 규정된 형벌 불소급 원칙상 이 책을 내가 군대에서 읽었다고 무어라 하는것은 기존의 헌정질서를 문란케하는 행위일법하니 문제될일은 없을 듯 해서 밝히는 소리다.) 아무튼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군대내에서 내 생각이 특별히 바뀌었다거나 사고를 쳤다거나 한 건 아닐 뿐더러 집권 여당부터가 본서의 저자를 데려다 놓고 강연까지 들었다하니 굳이 어떤 이유에서 본서가 불온도서인지는 과문한 필자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단다. 그 코메디같은 불온도서 지정에 대한 결과는 전혀 코메디가 아닌데 이를테면 본인의 안면없는 선배이자, 내 동기와 안면있는 교회선배는 지극히 '위헌적인' 금서지정에 대한 헌소를 자신의 권리에 따라 제기했다가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니 말이다.  

사실 그간 장하준 교수의 저작을 읽은 독자라면 본서에서 그리 특별히 센세이셔널하게 화제가 될만한 내용을 찾지는 못할 것 같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다소 아카데믹했고, '쾌도난마 한국경제'가 너무 가볍게 읽혔다면 이 책은 그 중간선 정도를 지키고 있다는게 특이하다면 특이할까. 그 외에는 저자의 기존 주장에 비추어 굳이 특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적재산권 부분이 조금 흥미롭게 읽히기는 했는데, 시장 혹은 시장주의에 관심이 있어 어느정도의 교양을 갖춘 독자라면 이 부분 또한 아주 신선할만한 이야기는 또 아닐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저자는 이런저런 위트(이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저자의 '인상'에 비하자면 조금 이례적이긴 했다. 장하준 교수님 인상이 왜 좀 많이 심심해 보이시잖나?)섞인 문체로 쉽고 지루하지 않게 설명했다는게 그간의 책에 비하자면 과격한 시장 '지상주의자'로서는 더 위험해 보일수도 있겠다만 글쎄, 그건 시장 '지상주의자'의 취향의 문제지 이 땅에 사는 건전한 젊은이들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시장이라는 순수한 기재가 사회에서 자연스레 설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하나의 '신화'에 가깝다. 상법이나 경제관련법 등 시장과 관련한 수많은 규정만 보아도 그 속에서는 시장에 대한 다채로운 입장이 뒤섞여 있다. 어떤 것이 공정한 경쟁이며 어떤것이 진정 자유로운 경쟁이며 그 자유로운 경쟁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관한 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로 여러가지다. 우리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그 시장을 '만들어'내고 '수정해'나간다. 이러한 상행위를 규정하고 조성하고 규제해 나가는 것이 대표적인 법이 상법이고, 그 명칭과는 달리 상행위에 대한 수많은 규제를 담고 있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바로 그 '상법'과 공정거래법을 위시한 '경제법'이다. 이쯤되면 몇몇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법도 하다. 아니, 이런 반시장적인 법전이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했다는 대한민국에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그런데 그거 아는가? 지구상에 상법전이 없는 나라는 체제내에 공식적인 '시장'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는 중국, 북한등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시장이란 민주사회의 사회적 합의 속에나 존재하며 순수한 시장이란 것은 관념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아니, 솔직히 존재하지조차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시장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과연 '자유방임주의'적인가? 과문한 나조차도 그건 아니라는 증거를 수십, 수백가지 될수있다.) 따라서 '좋은'시장을 만들고자 하는 논쟁은 항상 계속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해서 공정한 시장을 만들고자하는 진지한 노력조차 이념적 딱지, 나아가 '반국가적'이라는 딱지를 붙혀가며 공격해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어쩌면 진정 '민주사회의 적'이자 '시장주의의 적'은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아무튼 불온도서니 뭐니해도 발전이나 개발, 아니 그보다 먼저 시장을 고민하는 분들께 본서는 괜찮은 '입문서'역할을 할것이라 보장한다. 그만큼 재미있게 서술되어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아마도 본서가 '화제의 대상'이 된 것은 바로 그 재미 때문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재미가 없다면 그 몰교양적인 국방부 관계자가 읽을수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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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革 2009-07-23 18:1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오랜 만에 댓글로 인사 드리는 듯합니다. 종종 올려주시는 서평 재밌게 읽고 있었습니다만.. ^^;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은, 한총련 추천도서 목록을 카피&페이스트한 걸로 들었습니다. --; 재미있는 책이어도 국방부에 계신 분들이 직접 읽고 손수 고르신 거라고는 생각할 수가.. 권정생 선생 책 등이 들어가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듯 하더군요.

率路 2009-07-24 18:26   좋아요 0 | URL
앗, 오랜만이네요. 잘지내시지요?ㅋ^^;;;; 한총련 추천도서 목록 카피한거라니 의문이 해결되면서도 좀 많이 한심해 뵈긴 하네요..ㅋㅋㅋ